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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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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웨식스 지역은 햄프셔·도싯·윌트셔·서머싯 주 및 에이번 주 남부에 해당한다. 영토가 템스 강 북쪽까지 확장되기도 했으며 서쪽으로는 데번 주와 콘월 주를 포함하게 되었다. 웨식스는 2개의 정착촌을 토대로 성장했다. 그중 하나는 494년경 햄프셔에 상륙해 왕이 된 체르디치가 세운 마을이고, 또 하나는 템스 강 상류에 있었으며 북동쪽에서 온 이주민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웨스트색슨족의 왕들이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데인족에 맞서 싸워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앨프레드는 886년 런던을 되찾았고, 데인족에게 굴복하지 않은 잉글랜드인들은 그를 군주로 받아들였다. 927년 웨식스 왕은 데인족이 지배하던 영토를 모두 되찾고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이 지역은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전설의 무대로 유명하다.

웨식스 왕은 결국 잉글랜드 전체의 통치자가 되었다.

웨식스의 중심 지역은 대체로 오늘날의 햄프셔·도싯·윌트셔·서머싯 주(州) 및 에이번 주 남부에 해당한다. 때로는 영토가 템스 강 북쪽까지 확장되기도 했으며 결국에는 서쪽으로 확대되어 데번 주와 콘월 주를 포함하게 되었다. 웨식스라는 이름은 고대영어 '웨스트색슨'(West Saxon)이 낱말 음 탈락을 일으킨 형태이다.

웨식스는 2개의 정착촌을 토대로 성장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그중 하나는 494(또는 495)년 햄프셔에 상륙해 500(또는 519)년에 왕이 된 체르디치와 그의 아들(또는 손자) 킨릭이 세운 마을이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확인되는 또 하나의 정착촌은 템스 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북동쪽에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연대기에 따르면 571년 쿠스울프(웨스트색슨의 왕족으로 추정됨)가 루턴과 에일즈베리·벤싱턴(지금의 옥스퍼드셔의 벤슨)·아인셤 등을 정복했을 때(571), 이 지역들이 켈트족의 일파인 고대 브리튼족의 수중에 있었다고 되어 있지만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색슨족이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의 영토 확장에 따른 사건 가운데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530년 케르딕과 킨릭의 와이트 섬 정복, 552년 킨릭이 솔즈베리에서 치른 전투, 556년 바베리 성(윌트셔)에서 치른 전투는 기록에 남아 있다. 이들의 후계자인 케올린(560~592 재위, 연대기 작가 비드는 이 사람을 브리튼 섬의 지배권을 장악한 2번째 잉글랜드 왕으로 기록하고 있음)이 577년 글로스터셔 디럼에서 거둔 승리(이는 배스와 시렌스터 및 글로스터 점령의 발판이 되었음)와, 노스옥스퍼드셔에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페선리그라는 곳에서 치른 전투(584) 역시 기록에 남아 있다.

케올린은 568년 위밴던이라는 곳에서 켄트 왕 애설버트를 무찌르기도 했다. 케올린은 웨식스의 세력을 템스 강 북쪽으로 확장했지만 592년 조카인 케올한테 쫓겨났다. 케올은 5년 동안 웨식스를 다스렸다. 케올의 형제인 케올울프(597~611 재위)가 케올의 뒤를 이었고 다시 그뒤를 케올의 아들 키네길스(611~643 재위)가 이었다.

이 시기에 웨식스는 처음에는 노섬브리아의, 이후에는 잉글랜드 중부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던 머시아 왕국의 위협을 받았다.

키네길스와 그의 아들 퀴첼름은 글로스터셔, 우스터셔, 워릭셔 남서부를 머시아 왕 펜다에게 빼앗겼다. 키네길스의 뒤를 이어 웨식스 왕이 된 그의 아들 켄월(643~672 재위)은 펜다의 누이와 결혼했지만 곧 그녀를 버렸다. 그러자 펜다는 그를 이스트앵글리아로 추방했다(645~648). 그는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머시아인 및 웨일스인들과 싸웠고 펜다의 후계자에게 사우스햄프셔와 와이트 섬을 잃었다.

머시아인들은 이 지역을 661~686년 점령했으며 비드가 쓴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에 따르면 웨식스는 켄월이 죽은 뒤 일시적으로 분할되어 부왕들에 의해 다스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웨식스 왕들은 브리튼인을 무찌르면서 꾸준히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케드왈라(685~688 재위)는 와이트 섬과 사우스햄프셔를 되찾았고, 690년 이전에는 엑서터에 색슨족의 수도원을 세웠다. 웨스트색슨 왕 가운데 최초로 법전을 펴낸 이니(688~726 재위)는 서부 지역을 위해 셔본(도싯)에 주교를 설치했다.

버크셔와 윌트셔 지역에 대한 직접 지배를 포함해 웨식스에 대한 머시아의 지배는 에그버트(802~839 재위)가 즉위하면서 끝났다. 에그버트는 데번과 콘월을 모두 차지했고 825년 머시아 왕 베온울프를 무찔렀으며 서리와 서식스 및 켄트를 영원히 웨스트색슨족의 영토로 만들었다.

웨스트색슨족의 왕들이 마지막으로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데인족에 맞서 싸워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데인족의 '대군'은 865년 브리튼 섬에 도착해 앵글로색슨 왕국들을 파괴했지만 웨식스에서는 애설레드 1세(865~871 재위)와 앨프레드(871~899 재위)가 데인족에게 저항했다. 앨프레드는 886년 런던을 되찾았고, 데인족에게 굴복하지 않은 모든 잉글랜드인들은 그를 군주로 받아들였다. 927년 앨프레드의 손자 애설스탠이 데인족이 지배하던 나머지 영토를 모두 되찾은 후 웨식스 왕은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이 지역은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전설의 무대로 유명하며 토머스 하디는 자신의 소설에 '웨식스'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무대가 잉글랜드 남서부지방임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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