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모방주의 예술론

다른 표기 언어

'예술은 모방'이라는 견해는 최소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모방론' 또는 '모방주의 예술론'이 오늘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나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입장이 행사해온 영향력에 비추어볼 때, 예술의 기능에 대한 설명으로 이 입장이 지니는 설득력을 쉽게 부정하기란 어렵다. 우선 개념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입장 정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세상사를 '묘사한다'라고 말하지, '모방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방이라는 표현은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모방한다'와 같은 용법으로 쓰일 때 한결 더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흔히 "이 그림을 통해 예술가는 보리밭을 묘사하고 있는데, 표현 양식의 면에서 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예술 철학자들이 모방론을 논의할 때 그가 실제 문제삼는 것은 '모방'(imitation)이 아니라 '묘사'(representation)이다.

묘사에는 항상 어느 정도 추상화(抽象化)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즉 묘사 대상의 특성 중 어떤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사실적인 인물화라고 하더라도 그 인물화는 실제 인물과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최소한 이와 관련하여, 실제 인물은 3차원적인 존재인 반면, 그림은 2차원적인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그림은 그림일 뿐 실제 존재하는 묘사 대상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추상화의 정도는 작품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원래의 묘사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림의 경우 이런 종류의 작품을 '비묘사적(non-representational) 그림' 또는 '추상화'(抽象畵)라고 한다. 인간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상의 정확한 묘사가 하나의 극점을 이룬다면, 무엇을 묘사했는지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경우가 반대편의 극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그림은 양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예술과 방식은 다르지만 문학도 묘사적일 수 있다. 문학에서의 묘사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작가는 대상 또는 사건을 언어로 기술함으로써 묘사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모든 문학을 묘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의 감정만을 드러내는 시가 1편 있다면 이는 바로 비묘사적인 작품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예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혼합예술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묘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연극이나 영화는 문학이 지니지 못하는 이점을 지닌다. 언어를 사용하는 이외에 인물과 인물의 행동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고 효과적인 묘사가 가능하다. 이들 예술은 언어적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이며 공간적이면서 동시에 시간적이기 때문에 이중으로 묘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음악의 경우에도 묘사적이라는 표현이 적용될 수 있을까? 시각적 특성도 언어적 특성도 지니고 있지 않는 음악의 경우, '음조'가 묘사의 수단이 될 수는 없을까? 음악 작품 중 특히 표제음악을 놓고 사람들은 묘사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에서 묘사란 개념은 결코 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표제를 제거하고 음악만 남겨놓는 경우, 어디에서도 그 음악이 무언가를 묘사하고 있다는 단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근거로 주어진 음악이 전체적으로 그 무언가를 묘사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펴기란 불가능하다. 연속되는 음조의 변화가 무언가를 연상시켜준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이루는 음조가 무언가를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장이 지나친 것이라고 하여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풍경을 묘사하는 그림이 있듯이, 파도 소리를 묘사하는 음악도 있지 않은가? 그 예로 클로드 드뷔시의 〈바다 La Mer〉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가 있는데, 곡목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바다〉를 처음 들려 주는 경우, 거의 아무도 곡목을 추측해내거나 바다를 묘사한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 곡목을 알려줌으로써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음조가 바다 소리를 닮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다만 악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음조일 뿐 바다가 들려주는 소음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전자는 후자를 묘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드뷔시가 작곡한 또 하나의 표제 음악 〈물에 비치는 그림자 Reflets dans l'eau〉라는 작품을 문제삼는 경우, 이 점은 더욱더 명백해진다. 수중 반사 현상은 아무 소리도, 심지어 소음조차 만들지 못한다. 드뷔시의 음악이 이를 '묘사한 것'이라고 보기는 정말로 어려울 것이다.

묘사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문제삼아야 할 점은 묘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묘사란 현실의 '재생산'이 아니라 현실의 '변형'일 뿐이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변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대답하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모든 장르와 모든 양식의 예술작품 또한 개별적 예술작품 하나하나는 나름의 고유한 방식으로 현실을 변형한다는 잠정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서양철학

서양철학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모방주의 예술론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