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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냉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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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냉 북부에 사는 부족들의 역사는 아직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남부의 다호메족 혹은 폰족은 1625년에 아보메 왕국을 세웠다. 아보메 왕국 최초의 강력한 지배자인 웨그바자(1645∼85경)는 이웃에 있는 작은 나라의 왕인 당(Dã/Dan)을 공격. 정복했다. 당 왕의 시체는 당시 웨그바자가 건설중이던 궁전 주춧돌 위에 버려졌고, 그 이후 이곳은 다호메(Dahomey, Dã-ho-mé : '당의 배 위'라는 뜻)라고 불리게 되었다.

웨그바자의 아들인 아가야 왕(1708∼32)은 마침내 알라다와 우이다를 정복했는데, 그곳에는 17세기에 인도회사(Compagnie des Indes)가 세운 프랑스 요새들이 있었다. 다호메 왕국은 게조 왕의 재임기간(1818∼58)에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 노예를 획득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과 수차례 전쟁을 치렀다.

1857년 프랑스는 그랑포포에 진주했다. 1878년 다호메의 왕 베한진은 코토누를 프랑스에 할양하는 것을 거부, 1892∼94년까지 계속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베한진은 1894년 1월 프랑스에 항복했고, 다호메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1904년 다호메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연방에 통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호메 주둔 프랑스군은 독일령인 토골란드 정복에 참여, 1914년에 마침내 토골란드를 정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다호메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서 연합국의 대의를 따랐다. 1959년 다호메는 프랑스 공동체의 한 자치국이 되었고 1960년에 독립을 선포했으며, 같은 해에 새 헌법을 채택했다.

5차례의 군사정권 수립 및 2차례의 헌정 변화를 포함하여 총 11번의 정권 교체를 거친 끝에 1972년 마티외 케레쿠 소령이 정권을 잡았다. 1975년에 다호메는 베냉 인민공화국으로 국가 명칭을 고쳤으며, 1980년에는 케레쿠가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베냉은 1974∼89년에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고수했으나, 1989년 동유럽 민주화 추세에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1990년 국명을 베냉 인민공화국에서 베냉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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