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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백제 무덤의 분포나 변천은 도성 천도와 관련된다. 한강 유역에는 돌무지무덤과 움무덤 계통의 무덤들이 분포하고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적인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석촌동과 가락동의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웅진시기에는 지배계급의 무덤으로 굴식돌방무덤이 보급되었으며 구덩식돌방무덤, 널무덤·독무덤도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을 들 수 있다.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으로 부장품이 고스란히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다.
사비시기의 대표적 유적은 능산리고분군이다. 동하총은 벽화고분으로서 벽면에는 사신이 그려져 있다. 영산강 유역에는 큰 독을 사용하는 독무덤이 유행했는데 대표적 유적으로는 나주 반남면고분군을 들 수 있다.
백제는 처음에 한강 하류인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 경기도 광주시 일대에 도성을 정했으나 후에 금강 유역의 공주, 부여로 천도했기 때문에 무덤의 분포나 변천과정이 이러한 도성의 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강 유역에는 돌무지무덤[積石塚]과 움무덤[土壙墓] 계통의 무덤들이 분포한다.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에 분포하는 무기단식(無基壇式)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적인 요소가 강한 묘제로서 백제의 건국집단이 고구려로부터 남하해오면서 가져온 묘제로 추정된다. 반면에 널무덤[木棺墓]과 독무덤[甕棺墓]들은 이 지역에서 그 전부터 거주해오던 선주민집단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우선 서울특별시 석촌동과 가락동의 고분군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기단식(基壇式) 돌무지무덤과 움무덤 계통의 널무덤·독무덤·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토광적석묘(土壙積石墓) 등이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특히 석촌동 3호분은 바닥의 길이가 50m에 달하는 대형 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서 한성시기(?~475) 백제의 전성기 모습을 보여주며 여기에 묻힌 주인공은 4세기경의 백제왕족으로 추측된다. 이외에 중국 동진(東晋)의 청자가 나와서 유명한 원주 법천리, 천안 화성리유적과 청동제 말모양띠고리[馬形帶鉤]가 출토된 천안 청당동무덤 등도 중요한 유적이다. 반면에 백제고분으로 알려졌던 서울특별시 중곡동·방이동, 여주군 상리·매룡리의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들은 백제의 무덤이 아니라 신라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도성이 웅진(態津:지금의 공주)에 위치하던 웅진시기(475~538)에는 지배계급의 무덤으로 굴식돌방무덤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구덩식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널무덤·독무덤도 계속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왕족들의 공동묘지였던 공주 송산리(지금의 금성동)고분군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은 돌방무덤으로서 널길[羨道]이 단벽의 귀퉁이에 달린 'ㄱ'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돌로 쌓은 네 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안으로 기울어져 공간을 좁힌 후 천장을 마련하는 궁륭상(穹窿狀)을 띠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와 달리 벽돌로 만든 벽돌무덤[塼築墳]도 존재하는데 이는 당시 백제가 중국의 남조와 활발한 교섭을 벌였던 결과이다. 무령왕릉은 이러한 벽돌무덤에 속하는 것으로서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많은 껴묻거리들이 고스란히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과 그 부인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무령왕릉은 돌로 만든 매지권(買地券)에 새겨진 명문으로 인해 이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가 525년임이 밝혀짐에 따라 백제고분과 껴묻거리의 편년에 명확한 기준을 제공했고 웅진시기 백제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송산리 6호분은 이 지역에서 유일한 벽화고분으로서 벽돌로 만들어진 널방[玄室]의 네 벽에 사신(四神)이 그려져 있다. 이외에 송산리고분군 주변지역인 시목동·웅진동 등지에도 많은 무덤들이 분포하고 있다. 금강하구인 익산시 입점리에도 많은 수의 고분들이 분포한다. 입점리1호분에서는 금동관(金銅冠)·신발[履]·귀걸이[耳飾]·드리개[垂下飾] 등의 장신구와 다양한 마구류, 중국제 청자가 함께 출토되어 주목된다.
도성이 사비(泗沘:지금의 부여)에 위치하던 사비시기(538~660)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왕족의 공동묘지인 능산리고분군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이 도굴당한 상태여서 껴묻거리는 그리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동하총(東下塚)은 벽화고분으로서 벽면에는 사신이 그려져 있다. 능산리에서의 전형적인 무덤형태는 꺾임천장[平斜天障], 잘 다듬은 판돌[板石]로 짠 벽면, 단벽의 중앙에 붙어 있는 널길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무덤을 능산리형돌방무덤[陵山里型石室墳]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충청남도뿐 아니라 전라도에까지 퍼져 있다. 부여지역에는 능산리 이외에도 정암리·두곡리 등지에서 굴식돌방무덤이 발견된다. 한편 해남·나주·영암·함평 등의 영산강 유역에는 커다란 독[甕]을 널[棺]로 사용하는 독무덤이 4~5세기에 걸쳐 유행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나주 반남면고분군을 들 수 있는데 신촌리 9호분에서는 금동관·금동신발[金銅履]·환두대도(環頭大刀) 등의 호화로운 껴묻거리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독무덤에 묻힌 자들은 이 지역에서 성장해온 토착집단의 우두머리들로 판단되며 이러한 집단들은 마한의 후신으로 여겨진다.
6세기로 들어오면서 독무덤이 밀집된 이 지역에 백제 중앙의 굴식돌방무덤이 파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양상은 이 지역이 중앙의 일원적인 지배 대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굴식돌방무덤으로는 나주 흥덕리고분, 대안리5호분, 해남 월송리 조산고분, 장성 영천리고분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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