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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로의 영원한 금자탑은 세계 전역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회이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설교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방인 개종자들을 유대화하려는 파벌에 맞선 그의 단호한 태도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가 유대교 내부의 소종파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한 것은 그 누구보다도 바울로의 덕분이라는 주장은 옳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영향은 사후에도 지속되었다. 디모테오와 디도에게 보낸 목회서신들은 바울로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집필되었다(→ 디도에게 보낸 편지). 이 서신들은 1세기말경에 씌어진 것 같다. 이와 동시에 현존하는 바울로의 서신들이 수집되었다. 그것은 교회 전체에 그 서신들을 회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서신들은 곧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준거가 되었다. 특히 속죄(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인류와 하느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가르침)에 관한 이론들은 언제나 바울로의 사상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절반을 이루는 서방(라틴) 진영에서 바울로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작들을 통해 교회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은총과 자유의지에 관한 펠라기우스 논쟁은 바울로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문구에 대한 해석에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논증한 아우구스티노는 바울로의 예정사상에 논증의 근거를 두었다. 그는 바울로의 예정사상이 우주적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예정된 계획을 언급한 것이며 자유의지의 행사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는데 이것은 정확한 해석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도 바울로에게 큰 빚을 졌다. 마르틴 루터는 의인론에 몰두했다. 그는 신앙과 공로를 구별했으며 이를 거점으로 중세 후기 교회를 공격했다. 장 칼뱅은 바울로로부터 교회를 선민들의 공동체로 보는 개념을 끌어냈고 예정사상을 활용했다. 그는 이에 약간의 추론을 덧붙였는데, 신자들만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로의 가르침은 아우구스티노의 영향력을 통해 종교개혁과 그 유산인 근대 개신교의 루터파 교회와 칼뱅파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주제들은 동방정교회에서는 서방교회만큼 중시된 적이 없다.
바울로에 대한 현대 신학자들의 연구는 이같은 논쟁들을 넘어서서 바울로를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연관시켜 살펴보려고 한다. 현대 신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바울로 사상의 기초는 그당시의 유대교 개념들과 연관시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칼뱅의 일부 후계자들이 표방했던 비타협적인 예정론은 바울로의 의도에 대한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으로 간주되었다. 바울로의 사상이 그리스 사상과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거부되고 있다.
오늘날 바울로는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으로서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형편이다. 회심 경험을 통해 바울로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주도권 아래 있는 우주적인 주(主)이며, 하느님 나라의 대행자요 인도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장벽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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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바울로의 업적과 영향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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