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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로의 초기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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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로는 10년경 타르수스(다르소)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타르수스는 동·서간의 주요 교역로에 위치한 실리시아(킬리키아) 지방의 한 도시였으며,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들의 고향이었다. 그곳에 사는 많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로마 시민권을 상속받았다.

이 로마 시민권은 1세기 전에 로마의 용병으로 복무한 사람들이 그 대가로 로마인들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바울로가 2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는 사울이라는 유대식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리스어로 말할 때는 로마식 별명인 바울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엄격한 유대교 교육을 받았지만 그리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세계 도시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후에 그는 이방인들(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특수한 소명에 적합한 인물이 되었다. 한때 그는 모세법에 대한 정절과 충성을 강조한 유대교의 한 종파인 바리사이파의 열렬한 일원이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 1세 밑에서 랍비로 훈련받았다고 한다. 율법과 그것의 랍비적 해석방법에 대한 바울로의 지식은 그가 남긴 서신들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대부분의 랍비들처럼 그는 수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기술은 아마 그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같다. 바울로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있기 전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자신이 열렬히 옹호했던 바리사이파적 유대교에 대해 그리스도교 운동이 위협을 가한다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그는 새로 창설된 교회의 박해자로서 역사의 무대에 최초로 등장한다.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일어난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가혹한 박해는 헬라주의자들(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가운데 개종한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헬라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죽음을 당했을 때, 그를 살해한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에게 맡겼다"(사도 7:58)고 한다. 그당시 바울로는 헬라주의자 개종자들과 분노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신명 21:23) 예수를 메시아와 천상의 주로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의 제사가 예수의 희생적 죽음으로 대체되고 율법도 평가절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율법을 짓밟는 행위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다……", 신명 27:26). 그리하여 바울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일에 가담하게 되었다. 헬라주의자 개종자들은 인척관계가 있는 이방도시로 도망쳤고, 아람어를 사용하는 예루살렘 잔류파는 유대교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본색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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