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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3~16세기에 번영을 누렸던 서아프리카 무역 제국.
푸타드잘론 동쪽 상(上)니제르에 있던 캉가바 국에서 발전한 제국이며 1000년 이전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캉가바에 거주한 말링케족들은 고대 가나 후기에는 황금 중개상으로 활동했다. 수수족 추장 수만구루의 가혹하고 무능한 통치로 인해 말링케족이 반란을 일으켰고 1230년 캉가바의 망명 지도자와 형제간인 순디아타는 수수족 추장을 물리쳤다.
이때부터 캉가바라는 이름은 말리라는 이름 속에 흡수되었다.
순디아타는 말리의 지배권을 캉가바의 좁은 영토를 넘어 확장하는 일에 성공했고 이는 다음 황제들의 모범이 되었다. 말리 제국의 군대는 남쪽으로는 금이 매장된 본두와 밤부크를 확보했으며 북서쪽으로는 디아라를 정복했고 나이저 강을 따라 북쪽으로 라크데보까지 나아갔다.
만사 무사(1307~32?)의 통치 때 말리 제국은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했다. 만사 무사는 중부 니제르까지 통치했으며 팀북투와 가오의 무역 도시들을 말리 제국에 병합시키고 왈라타 같은 사하라 남부 도시들과 북으로는 소금이 저장되어 있는 타가자를 지배했다.
그리고 말리 제국의 동쪽 국경을 하우사인들이 사는 지역까지 확대했으며 서쪽으로는 타크루르, 풀라니의 영토, 투쿠로르인들을 공략했다. 그는 또한 모로코, 이집트 및 다른 지역에 대사들과 제국 관리들을 파견했으며 메카를 순례하고(1324) 돌아오는 길에 팀북투와 가오에 이집트식 학교들을 세웠다.
14세기까지 디울라 혹은 왕가라라고 불린 말리의 이슬람 상인들도 서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매우 활동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말리 제국을 부흥시킨 이러한 흐름은 말리를 몰락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었다. 말리 제국의 정치력과 군사력이 제국의 외형적 확대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가오인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며(1400경), 투아레그는 왈라타와 팀북투를 장악했다(1431). 타크루르와 인접국(특히 월로프인)도 역시 반기를 들었다.
모시 왕국(지금의 부르키나파소에 있었음)은 말리의 지배자를 공격했다. 1550년 무렵 말리 제국은 이미 정치적 중요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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