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미상 |
---|---|
사망 | 1255 |
국적 | 말리 |
요약
수단 서부의 말리 제국을 창건한 서아프리카의 군주(→ 말리 제국).
Sundjata라고도 쓰며 Mārī Diāṭa, Mari Jata라고도 함.
재위기간에 말리 제국 영토의 기반을 구축하고, 말리 제국의 번영과 정치적 통합의 터전을 닦았다.
그는 지금의 말리와 기니 국경 근처에 있던 조그만 캉가바왕국 출신의 만딩고인(아프리카 서부 나이저 강 상류지역의 흑인)이었다. 초기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만딩고의 구전에 의하면 그는 캉가바의 왕위계승자였던 12왕자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13세기초 이웃나라인 카니아가의 통치자 수만구루가 캉가바를 유린하고 순디아타의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 전승(傳承)에 따르면 그는 곧 죽을 것 같은 병약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한때 그는 캉가바에 있는 어떤 마을의 우두머리로 있었다고 한다. 사병을 조직하고 자기 종족 사이에서 지위를 확고히 한 다음, 수만구루와 인접 수수족에게 도전했다. 1235년경 키리나(지금의 말리 공화국 쿨리코로 근처) 전투에서 수만구루를 결정적으로 쳐부수고 과거 카니아가의 속국들로 하여금 그의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1240년 수단의 가나 제국의 과거 수도였던 쿰비를 점령하여 파괴함으로써 가나 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던 마지막 상징을 없앴다.
1240년 이후 표면적으로 더이상의 정복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의 지배하에 들어온 국가들에 대한 통제력을 한층 강화했다. 그러나 그의 장군들은 계속해서 제국의 국경을 확장시켜나가, 북으로는 사하라 사막의 남쪽 주변(교역 중심지인 왈라타 포함), 동으로는 나이저 강의 그레이트벤드, 남으로는 왕가라의 금광(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음), 서쪽으로는 세네갈 강까지 영토를 넓혀나갔다. 1240년 직후 제국의 중심지를 제리바에서 나이저 강과 산카라니 강이 만나는 지점 가까이에 있는 니아니(말리라고도 함)로 옮겼다.
순디아타의 지배하에 말리 제국이 평온을 찾고 왕가라의 점령으로 이윤 많은 금무역이 가능해지자 상인과 교역업자들이 몰려들었으며, 곧 니아니는 수단의 주요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순디아타는 명목상 이슬람교도였으며 이때문에 대부분 이슬람교도인 상인 계층의 환영을 받았지만, 그는 이슬람교도가 아닌 종족 사이에서도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정치 지도자를 신에 버금가는 인물로 간주하는 서아프리카 사회에서, 통치자에게 기대되는 여러 가지 전통적인 종교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순디아타 시대에 말리 제국의 실제 행정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만든 제국의 체계는 그가 죽은 뒤 계승권을 놓고 일어난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존속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