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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나이지리아 남서부, 오군 강 하구의 석호지대에 있는 라고스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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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999.6㎢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 | 나이지리아 |
요약 나이지리아의 행정구역. 1975년까지 주도이자 연방수도였으나 이케야가 주의 주도가 되면서 여러 정부기관이 비공식적으로 남아 있었다. 베냉 만에 있는 라고스 섬을 포함하며, 이 섬은 라고스 석호 안에 있다. 16세기 중반부터 베냉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포르투갈인들은 노예무역을 전개한 곳이기도 하다. 1861년 영국 통치하에 놓였다가 1906년 남나이지리아 보호령에 흡수되었다. 1914년 남·북 나이지리아가 병합되면서 라고스는 나이지리아 식민보호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960년 나이지리아가 독립하면서 이 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주요산업은 자동차·라디오 조립, 식품·음료 가공, 금속세공, 페인트·비누 제조업 등이다.
1975년까지 주도(州都)이자 연방수도(라고스 연방구)였으나 그뒤 이케야가 라고스 주의 주도가 되었다.
1980년대초까지 여러 정부기관이 비공식적으로 남아 있었다. 베냉 만에 있는 라고스 섬을 포함하며, 이 섬은 라고스 석호(潟湖) 안에 있다.
15세기 말엽 라고스 섬에는 이곳을 '오코'라고 부르던 요루바 어민과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찾아왔으며, 요루바족은 이곳의 건조한 땅을 경작하고자 서둘러 섬에 정착했다. 16세기 중반부터 이곳은 베냉 왕국의 지배를 받으며 '에코'라고 불렸다.
이 지방의 오바(oba : 요루바족의 추장)들은 이 섬을 '오님'(나중에는 '라고스'라 함)이라고 부르던 포르투갈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포르투갈인들은 곧 노예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영국 해군은 이러한 노예매매를 억제하고자 1851년 마침내 라고스를 공격했고 오바 제도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예거래는 계속 성행했고, 그후 1861년 라고스는 영국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라고스는 처음에 직할식민지로 통치되었으나,1866~74년 영국령 서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가 되었고 1874년에는 황금해안 식민지(지금의 가나)에 속하게 되었다. 1886년에 다시 영국 총독이 관할하는 단독 식민지가 되었다가 1906년 남나이지리아 보호령에 흡수되었다. 1914년 남·북 나이지리아가 병합되면서 라고스는 나이지리아 식민보호국의 수도가 되었다.
1954년 그 배후지는 대부분 서(西)나이지리아 행정구로 흡수되었고 라고스 시 자체는 연방구로 지정되었으며, 1960년 나이지리아가 독립하면서 이 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1967년 라고스 주가 생겨나면서 라고스 시는 배후지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았다. 1975년 이후 이 나라의 중심부에 있는 아부자 근처에 라고스를 대신할 새로운 연방 수도가 개발되고 있다.
주요산업은 자동차·라디오 조립, 식품·음료 가공, 금속세공, 페인트·비누 제조업 등이다. 직물·화장품·약품 제조업도 경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수산업체는 트롤선(船)과 실험설비 및 수산업 분야의 학술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라고스 항은 라고스 섬에 있는 통관부두(Customs Quay)와 본토에 있는 나이지리아 주요수출로인 아파파 부두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강과 석호에는 소형선박이 내왕한다.
이 도시는 국내 도로망과 철도망의 서부 종착역이며, 이케야 공항에는 국내선 및 국제선이 운항된다. 문화기관으로는 나이지리아의 뛰어난 역사적 예술품을 소장한 국립박물관과 국립도서관이 있다. 라고스대학교(1962)와 부속 의과대학이 시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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