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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다른 표기 언어 端宗 동의어 조선 제6대 왕, 이홍위, 李弘暐, 단종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 端宗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노산군, 魯山君
요약 테이블
출생 1441(세종 23)
사망 1457(세조 3)
국적 조선, 한국
종교 유교
재위 1452년~1455년
시호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홍위(弘暐)
능묘 장릉(莊陵)

요약 조선 제 6대 왕이자 문종의 아들로 이름은 홍위.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죽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병약했던 문종은 자신이 죽기 전 황보인, 김종서 등에게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다. 짧은 재위 기간 중에도 <고려사>를 비롯한 다수의 서책을 반포했다. 그러나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이 군국의 모든 권리를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1455년 한명회 등의 강요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여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단종

조선 단종 복원 어진

ⓒ Whd9596/wikipedia | Public Domain

아버지는 제5대 왕 문종이고,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다.

비는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전에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여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에게 나이 어린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고, 집현전 학사인 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에게도 좌우에서 힘을 모아 도와주라는 유언을 했다. 그러나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이 권람·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군국의 모든 권리를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1455년 단종은 한명회·권람 등의 강요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여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모두 처형된 뒤,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세조찬위). 그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노산군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봉되었으며 10월에는 마침내 죽음을 당했다(→ 단종복위운동).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

영월 청령포에 조성해 놓은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던 가옥 내부. 연합르페르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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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재위기간중에도 1453년 양성지(梁誠之)에게 〈조선도도 朝鮮都圖〉·〈팔도각도 八道各圖〉를 편찬하게 하고, 이듬해에는 〈황극치평도 皇極治平圖〉를 간행하게 했다. 1454년 〈고려사〉를 인쇄·반포했으며, 그해 12월 각 도에 둔전을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1681년(숙종 7)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복위되어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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