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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희생 제의, 드루이드교
켈트족은 정치적으로는 성읍 국가와 파구스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모두 드루이드교(druidisme)를 믿었다. 그런데 드루이드교에 관해서는 오늘날 알려진 것이 극히 적다. 그 이유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각주1) 에서 드루이드교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드루이드들이 주로 구전을 통해 종교적 가르침을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다신교를 신봉하면서 영혼불멸 사상이나 점성술, 의학, 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켈트족의 종교적 일체성은 골 지방 전체의 드루이드들이 일 년에 한 번 오를레앙 지방의 카르뉴트 숲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드루이드들은 신전을 특별히 따로 세우지 않고 영험하다고 믿는 숲 속이나 호수 부근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 의식에는 절단된 인간의 머리나 산 사람의 피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칼로 사람을 찔러 죽여 그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로 미래를 점쳤다고도 한다. 이런 야만적인 성격은 로마가 드루이드교를 배척한 요인 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드루이드들은 동짓날이 되면 참나무에 올라가 겨우살이를 채집하는 성스러운 임무를 담당하였고, 하짓날에는 불을 지펴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식도 거행하였다. 겨우살이란 활엽수에 붙어 사는 기생 식물인데, 당시 겨울에 채집한 겨우살이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성스러운 식물이었다.
켈트족의 이러한 관행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현재의 프랑스인들은 정월 초하루가 되면 겨우살이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하지(夏至) 성 요한 축일에는 광장에 화톳불을 피우기도 한다. 이처럼 종교의식 행위가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는 것을 보면 인류의 종교적 관행은 정치나 경제 제도에 비해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드루이드들은 종교적 권리 외에도 군장의 선출이나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등 정치적 권리도 행사하였다. 또한 그들은 귀족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등 켈트 사회의 지도층 역할을 하였다. 드루이드들은 나중에 골 지방이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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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숲 속의 희생 제의, 드루이드교 – 이야기 프랑스사, 윤선자,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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