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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
Artemis Temple of Ephesos상업의 요충지였던 에페소스는 기원전 550년부터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강력한 제국 중의 하나로 부상한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기원전 560~546년 재위)에 의해 점령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에페소스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새로운 신전의 건축을 명령했는데 이것이 아르테미스신전이다.
아르테미스신전은 그리스 시대에 가장 큰 신전이었음은 물론 대리석으로 만든 최초의 신전이다. 높이 18미터의 기둥 127개를 사용한 길이 120미터, 폭 60미터의 대형 건축물이다. 현대인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의 길이가 69.50미터, 폭 30.80미터, 높이 10미터 정도이며 대리석 기둥을 58개 사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신전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전의 자재는 아름답고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로는 네 방향으로 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인데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다. 순결 · 정절의 상징으로 처녀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순결에 상처를 입힌 오리온과 악타이온에게 죽음의 벌을 내리기도 했다. 처녀 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이고 고대의 지모신(地母神)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폴론이 남자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초래한다고 여겨졌듯이 아르테미스는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 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마녀 헤카테(마술과 주문을 관장하는 여신)와 동일시하거나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반면 에페소스인들이 추앙하던 아르테미스는 다른 지역의 아르테미스와는 다소 달랐다. 우선 외형부터 매우 달랐다. 풍요로움을 나타내듯 살이 찌고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갖고 있는 등 (유방이 아니라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다소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사냥꾼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항상 기묘한 동물들이 따르고 있다.
에페소스인들은 자신들에게 부를 주는 여신이라고 믿었기에 오래전부터 아르테미스를 숭배했다. 에페소스에는 아르테미스를 위한 인신공희(人身供犧)의 풍습도 있었는데 침략세력에 의해 다른 신들이 도입되었을 때에도 끝까지 아르테미스를 신봉했다. 역사적으로 부침이 심했던 소아시아에서 신봉하는 신에게 가장 충실하고 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대표적인 예가 에페소스인들의 아르테미스에 대한 숭배였다.
고대의 신전은 원래 신탁의 장소였지만 대부분이 은행 역할을 했고 신에 관계되는 물건들도 판매했다. 자금이 많은 사람들은 신전에다 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았다. 아르테미스신전에는 에페소스인뿐만 아니라 인근의 왕이나 지방의 관리들까지 돈을 맡겼다. 이자의 지급일은 여신의 생일이었는데 5월 25일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거창한 행사가 정규적으로 열렸다. 신전은 매년 열리는 축제에 필요한 연주단을 관리했는데 청동 나팔 연주가 탁월했던 아르테미스신전의 합창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수많은 음악가들로 하여금 에페소스를 찾게 했다. 아르테미스신전을 방문한 음악가들은 방문 기념으로 자신의 악기를 신전에 걸어놓기도 했다.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행사는 현재의 카니발과 같았다. 에페소스의 관리나 노인들은 전망 좋은 곳에 앉아 구경했고 도시의 모든 젊은이들은 온몸을 치장하고 신전 주위에서 매력적인 춤을 추었다. 춤이 끝나면 신전의 승려들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황금으로 입술을 칠한 아르테미스의 호화로운 조각상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그들이 행진하는 도로에는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이 설치한 아케이드가 있었는데 아케이드의 지붕에 화려한 천을 씌워 비가 오더라도 여신과, 행렬에 참석한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게 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요즘도 마리아 조상이나 십자가를 들고 특정한 날에 행진을 하거나 민속축제를 벌이는데 그 기원이 에페소스의 축제라고 추정한다.
아르테미스신전은 최후의 피난처였다. 페르시아인들이 도시를 공격했을 때 주민들은 신전으로 달려갔다. 주민들이 신전의 기둥에 자신을 매고 ‘성역이다’라고 외치면 페르시아인들은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페르시아인들 역시 아르테미스를 숭배했기 때문이다. 범인이나 탈주자, 왕위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도 신전은 합법적인 망명의 장소였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의 아르테미스신전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에게 최후의 피난처였다.
고대문명세계에서 존경을 받았던 아르테미스신전은 엉뚱한 일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대왕이 태어난 기원전 356년 신전에 화재가 났는데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사람이 ‘나쁜 일을 하려면 후세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며 계획적으로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는 아르테미스신전처럼 유명한 것을 파괴하면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어느 정도 성취했다. ‘헤로스트라톤’이라는 말이 ‘악명이 높다’, ‘미친’ 또는 ‘저주받은’이라는 의미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전이 파괴된 후 에페소스인들은 곧바로 신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에페소스의 여인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을 팔았고 인근 도시국가의 왕들은 기둥을 기증했다. 스물두 살의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와의 첫 번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몇 달 후 신전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건축현장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신전을 세운다면 모든 비용을 내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에페소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이외의 다른 신이나 왕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것은 안 된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르테미스신전의 전면부 36개의 기둥 하단에는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졌다. 이런 형식은 다른 그리스 신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르테미스신전은 그야말로 기둥의 숲을 이루었으므로 건설 전부터 불가사의로 불릴 만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에페소스를 방문해 아르테미스신전을 돌아보고는 기자의 피라미드에 떨어지지 않는 걸작으로 묘사하면서 찬탄했다.
아르테미스신전의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는 거의 없지만 로마시대의 동전에 신전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단편을 알 수 있다. 또한 디디마(지금의 터키 밀레토스 남쪽에 위치)에 있는 아폴론신전의 유적으로도 아르테미스신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디디마 신전은 아르테미스신전과 규모가 거의 같은데다가 현재도 비교적 온전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아시아에서는 대형 건물을 건축할 때 잦은 지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신전이 건설될 장소를 신중하게 선정했지만 에페소스 지역은 원래 지반이 약해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전하게 신전을 짓고 신전이 유지될 수 있는 건축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에페소스인들은 신전을 습지에 건설하는 묘수를 찾았다. 그들은 우선 두터운 숯으로 된 층을 쌓고 그 위에 면으로 된 털을 많이 깔았다. 지진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보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듯 유연성을 주면 더욱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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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 – 세계 불가사의 여행, 현암사 편집부, 북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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