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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문학의
탐험 3 1960년대 한국문학사적 특징
다시 타오른 참여 · 순수 논쟁
시기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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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붕구 · 임중빈 · 선우휘 · 이호철 · 김현
1967년 10월 12일,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가 개최한 제35회 대회에서 김붕구는 「작가와 사회」각주1) 를 발표하며 새삼스럽게 참여 · 순수 논쟁에 뛰어든다. 1963년 김우종과 이형기의 논쟁을 시작으로 달아오른 뒤 불씨를 품은 채 잦아들던 참여 · 순수 문학 논쟁은 김붕구의 풀무질로 다시 일게 된다. 이 원탁 토론에는 김붕구 외에 김승옥 · 남정현 · 박희진 · 서기원 · 선우휘 · 이근삼 · 홍사중 · 임중빈 등이 참여한다.
김붕구는 이 자리에서 중도 우파의 시각으로 국내 문단의 참여 문학론을 비판한다. 그는 1960년대 한국 문학의 참여파가 대부분 유행 사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으며, 민족적 자기 비하의 경향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참여의 지도적 가치관이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 않은 국내의 풍토를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김붕구는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의 현실 참여 유형을 제시하며, 작가의 자아를 사회적 자아와 창조적 자아로 나누어 두 자아 사이의 관계 양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사회적 자아가 창조적 자아를 압도해 작품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 작가의 범주에 들고, 말로 · 생텍쥐페리 · 지드 · 카뮈와 같은 작가는 행동으로 사회 참여를 실천하는 한편 창작 면에서는 예술 지상주의나 자연 발생적 참여로 나아가서 성공한 경우다. 그는 ‘자연 발생적 참여’를 가장 이상적인 표본으로 제시하고, 이 자연 발생적 참여를 낳는 “창조적 자아야말로 일개 생활인을 작가로 만들어주는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임중빈은 『대한일보』 1967년 10월 17일치에 투고한 「반사회 참여의 모순」이라는 글을 통해, 김붕구가 이상형으로 제시한 카뮈식 ‘자연 발생적 참여론’이 아무리 근사한들, 그것이 1960년대의 한국 현실에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며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문학의 진정한 현실 참여란 “역사의 암담한 벽과의 필연적 씨름이며 생존을 위한 구체적인 언어 활동”이라고 말하고, “창조적 참여의 근거는 산 민중적 자아, 우리로서의 나의 진지한 확립에 있다.”며 좀더 한국의 실정에 맞는 민중적인 참여론을 모색한다.
그러자 소설 「불꽃」으로 1950년대에 국내 작가로는 드물게 실천적 행동을 주창한 선우휘가 『조선일보』 10월 19일치에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을 내놓으며 논쟁에 뛰어든다. 선우휘는 문학의 사회 참여론을 일면 수긍하면서도, 전후에 흘러들어와 일부 지식인의 ‘교조’가 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참여론이 국내의 참여 문학을 좌경화로 몰아갔다며 결과적으로 김붕구의 시각에 동조하는 견해를 내놓는다.
『소시민』의 작가 이호철은 『동아일보』 10월 21일치에 실린 「작가의 현장과 세속의 현장」이라는 글에서 실존주의와 참여주의가 뒤섞인 선우휘의 견해를 비판하며, 참여 문학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데올로기에 귀착한다는 주장에 불만을 터뜨린다. 이호철은 여기서 작가는 본디 “때묻지 않은 자리에 서 있는” 존재로서 작가의 본질적 자유 영역에는 그 어떤 쪽이든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는 문학의 참여성과 함께 순수성 역시 중시하는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인다.
신진 비평가 김현은 『동아일보』 11월 19일치에 투고한 「참여와 문화의 고고학」이라는 글을 통해 김붕구가 그 적합성을 검토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서구적 용어와 논리를 한국의 현실에 적용시킨 것을 비판하고 나선다. 그는 “참여라는 말은 우리 시대의 혼란된 양상의 구조를 밝히는 고고학적 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현은 이런 문제 의식에 근거해, 이듬해에 결성된 ‘68그룹’의 동인지를 통해 좀더 체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펼쳐나간다.
이 무렵의 논쟁에서는 ‘참여 대 순수’라는 구도 속에서 순수를 옹호하는 쪽에 선 이들도 문학의 현실 참여 자체는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따라서 어느 쪽에서 목소리를 내든 논자들은 어떻게 하면 참여론을 한국 문학에 생산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느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종의 방법론적인 논의를 펼친다. 그러나 논자들의 일부는 여전히 참여 문학을 실존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는 등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논쟁으로 맞선 이어령과 김수영
1960년대 후반, 이 땅에는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제3공화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근대화 정책과 경제 개발의 빛과 그림자가 엇갈린다. 박정희 정권은 개발 계획을 통해 경제의 외형적 성장을 이뤄나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통성 취약이라는 약점이 여전히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성장의 한계와 발전 과정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빈부의 격차가 빚어지며 과실의 분배에서 소외된 농민과 도시 빈민들의 불만이 안으로 쌓여간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에서 온 무장 군인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이틀 뒤에는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납북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런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전쟁도 마다지 않겠다는 격앙된 자세를 보이자, 남 · 북한 사이에는 초긴장 상태가 조성되며 군사력 충돌의 위기감이 감돈다. 더구나 제7대 국회 의원 총선거가 사상 유례없는 부정 속에서 치러진 뒤 해가 바뀌고도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선거 무효화 투쟁이 벌어지는 등 한국 사회는 심한 몸살을 앓으며 들썩거린다.
이렇게 뒤숭숭한 채로 한 해가 열릴 무렵, 김수영은 『사상계』 1968년 1월호에 「지식인의 사회 참여」라는 평론을 내놓는다. 이 글은 불씨를 헤집어 참여 · 순수 논쟁을 다시 일게 한다. 김수영은 이 글에서 6·8 부정 선거와 동백림 간첩단 사건 등 이마적의 주요 문제에 대해 지식인들이 쓴 사설이나 칼럼, 또 이를 전달하는 주요 언론 매체들이 일관성 없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어 그는 이런 모호함은 문학 쪽에도 널리 퍼져 있다면서, 그 보기로 이어령의 경우를 거론하고 나선다.
김수영의 글에 앞서 이어령은 우리의 문화를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로 규정한 글을 신문에 실은 바 있다. 이어령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에비가 온다.”는 말로 엄포를 놓아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했는데, 이는 ‘에비’라는 개념 속에 숨어 있는 어떤 공포 · 불안 · 금기의 힘을 환기시켜 아이들을 통제하는 행위다. 그는 한국의 문화인들이 대부분 “에비가 온다.”는 말에 울음을 뚝 그치는 어린애들처럼 정체 불명의 공포에 눌리고 규제 감정에 지배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령은 우리 문학이 이 치졸한 유아 언어의 상상적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냉철한 성인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에서 김수영은 우리 문화인들이 실제 이상의 공포증과 비지성적인 퇴영성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이어령의 말을 부정하진 않지만, 우리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에비’와 같이 추상적이며 가상적인 금제(禁制)의 힘이 아니라 훨씬 구체적인 현실의 억압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한국 문화에 나타나는 퇴영성은 문화인들의 소심증과 무능 탓도 없지 않지만 유형 · 무형의 정치 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어령은 『조선일보』 2월 20일치에 투고한 「누가 조종(弔鐘)을 울리는가?」라는 글을 통해, 문화의 위기란 억압 정치 밑에서 정치 권력과 같은 외압에 의해 타살되는 경우보다 8·15나 4·19 직후처럼 자유 속에 내던져졌을 때 자멸하는 경우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의 한국 문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오도된 사회 참여론”을 들고, 이런 것이 들끓고 있는 1960년대 후반기를 일종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이어 그는 작가의 창작의 자유나 창조적 상상력을 억업하는 힘으로 ‘관(官)의 검열자’와 ‘대중의 검열자’를 드는데, 때로는 ‘관의 검열자’보다 ‘대중의 검열자’가 더 무섭다고 말한다. 이런 대중의 검열자에게 무릎을 꿇고 문화를 정치 활동의 예속물로 팔아 넘기며 문학적 가치를 정치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평가하는 “오도된 참여론자들”이 문화의 위기를 불러온다면서 이어령은 그들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다.
다시 김수영은 『조선일보』 2월 27일치에 실린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라는 글을 통해, 해방 직후와 4·19 직후처럼 여러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상황을 이어령이 단순화해 “자유의 영역이 확보될수록 한국 문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화하여 쇠멸해가는 이상한 역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급한 부분을 꼬집어서, 지극히 무모하고 위험한 피상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 시단 전반의 낙후성에 비해 매우 앞선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는 유명한 진보적 명제를 토해낸다.
모든 실험적 문학은 필연적으로는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는 선진국 자유 사회의 문학 풍토를 보더라도 무서운 것은 문화를 정치 ·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령이 말한 ‘관’과 ‘대중’이라는 두 검열자의 폐해를 수긍하는 한편, 이런 것보다 더 문화를 파괴하는 것은 “획일주의가 강요하는 유형 · 무형의 문화 기관의 에이전트”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이어령은 『조선일보』 3월 10일치에 실린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 이념의 시녀가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라고 한 김수영의 발언을 문제 삼아, 불온하기 때문에 작품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같은 이유로 작품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만 “그 주장과 판단이 다를 뿐 문학 작품을 문학 작품으로 읽지 않으려는 태도에 있어선 서로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화의 창조적 자유와 진정한 전위성은 역사의 진보를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역사를 보수와 진보의 두 토막으로 칼질하는 고정 관념과 도식화된 이데올로기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데올로기의 양분론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는 ‘관의 문화 검열자’나 ‘오해된 사회 참여론자’가 서로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한다.
김수영은 자신이 말한 ‘전위’나 ‘불온’이라는 것에 대해 이어령이 “정치적인 불온성으로만 고의적으로 좁혀 규정하면서 본인의 지론을 이데올로기에 부응하는 전체주의의 동조자 정도의 것으로” 규정한 것에 반발하고 나선다. 그는 자신이 말한 전위나 불온이란 음악의 재즈 또는 미술의 추상과 같이 새로운 예술적 형식의 추구이자 이념으로서, 인간의 사상사 · 문화사 · 예술사는 바로 이와 같은 전위성이 창조하고 이끌어온 역사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주로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불온시 논쟁’을 벌인다. 이어령이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 · 「누가 조종을 울리는가?」 · 「서랍 속에 든 불온시를 분석한다」 등을 통해 작가의 소심증과 빈곤한 상상력을 문제 삼은 데 반해, 김수영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 ·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 「불온성에 대한 비과학적 억측」 등으로 첨예하게 맞서며, 작가의 상상력을 억압하고 검열하는 정치 권력이 문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불온’이라는 용어의 해석에 얽매여 생산적인 논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인신 공격에 머문 느낌을 준 채 공방전을 매듭짓는다.
1960년대의 참여 · 순수 논쟁은 4월혁명 이후 퍼진 시민의 자유와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자율성과 순수성을 옹호한 이들은 참여론자들을 도식주의 · 소재주의 · 편내용주의 · 정치주의 및 프롤레타리아 혁명 같은 말로 비판하고, 문학의 사회 참여를 옹호한 이들은 순수론자들을 소아주의 · 이기주의 · 형식주의 · 퇴폐주의 및 이데올로기 노이로제 같은 말로 비판한다.각주2) 이후 작가의 현실 참여를 중시하는 이들은 1966년에 창간된 『창작과 비평』을 거점으로 참여 문학을 민족 문학, 리얼리즘 문학, 농민 · 노동자 문학의 단계로 발전시키며, 작가의 개성과 문학의 자율적 미학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문학과 지성』을 중심으로 모여 자세를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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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조남현, 「순수 · 참여 논쟁」, 한길문학편집위원회 편, 『한국 근현대 문학 연구 입문』, 한길사, 1990
- ・ 오양호, 「순수 · 참여론의 대립기」, 『한국 현대 문학사』, 현대문학사, 1994
- ・ 임헌영, 『한국 현대 문학 사상사』, 한길사, 1992
- ・ 최하림, 「김수영 대 이어령 논쟁」, 『한국 현대 시인 연구 9 ― 김수영』, 문학세계사, 1993
- ・ 우찬제, 「배제의 논쟁, 포괄적 영향」, 권영민 편저, 『한국 문학 50년』, 문학사상사, 1995
- ・ 유종호 외, 『현대 한국 문학 100년』, 민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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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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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사건 : 고려대학교 4·18 선언문
- 4월혁명, 자유, 그리고 1960년대 문학
- 김수영과 4·19혁명
- 최인훈
- ‘현실 참여’를 촉구하는 비평들
- 강신재
-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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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다시 타오른 참여 · 순수 논쟁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장석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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