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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세기 한
국 문학의
탐험 3
1950년대 한국문학사적 특징

정비석

자유를 얻은 자유부인

요약 테이블
시기 1954년

정비석의 『자유 부인』

일상의 틀을 파괴하고 도덕과 규범을 뒤흔들며 사회 전체를 ‘거대한 혼돈’ 속에 빠뜨렸던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차츰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 시작한다. 이내 도심 거리에는 물들인 미군 모직 담요로 코트를 만들어 입거나 밀수입한 벨벳으로 짧은 한복 치마를 지어 입은 멋쟁이들이 활보한다. 이 무렵에 흔히 연예인들은 구제품 옷을 구해 고쳐 입고, 남학생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군복에 검정물을 들여 입는다. 미국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여배우 오드리 햅번의 머리 스타일과 맘보 바지가 큰 인기를 끌기도 한다.

전쟁의 참화로부터 막 벗어나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 새롭게 유행한 것이 댄스홀과 춤바람이다. 그 유행은 유교적 전통 사회를 완강하게 묶고 있던 기존 도덕의 끈이 전쟁 등의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느슨하게 풀리며 자유로워진 성 풍속, 그 틈을 타 고개를 든 퇴폐와 향락의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사회 전반에 번져나간다. 그것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주둔하게 된 미군을 통해 묻어 유입된 양키 문화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신문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셈이 된 〈자유 부인〉의 작가 정비석

ⓒ 시공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흔들리는 성 도덕과 혼미한 세태를 드러낸 단적인 보기가 ‘박인수 사건’이다. 해군 헌병 대위로 근무하던 박인수가 장교구락부 · 국일관 · 낙원장 등을 무대로 1954년 4월부터 1955년 6월까지 1년 남짓한 사이에 대학생을 포함한 70여 명의 젊은 여자를 농락한 것으로 밝혀져 엄청난 파문을 빚은 이 사건은 당시 사회의 도덕적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인수 사건’의 담당 법정은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 사건에 앞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신문 연재 형태로 발표한 「자유 부인」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도덕의 진공 상태에 놓여 있던 전후의 ‘불안정한 사회’를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자유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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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부인」은 휴전이 성립된 이듬해인 1954년 1월 1일부터 같은 해 8월 9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대중 소설이다. 대학교 국문과 교수의 부인인 오선영은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양품점에 나가면서 남편의 제자로부터 춤을 배운다. 한편, 남편인 장태연 교수는 미군 부대의 타이피스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이렇게 장태연과 오선영은 저마다 탈선의 길로 빠져든다.

「자유 부인」은 피난 수도 부산과 환도 뒤의 서울을 무대로 우리 사회 상류층의 일그러진 생활상과 윤리 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연재 소설이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울신문』의 발행 부수가 크게 늘고, 이어 단행본도 몇 달 사이에 4만여 권이 팔려나가 그해의 베스트 셀러가 된다. 두 해 뒤에 영화로 나온 「자유 부인」은 무려 십여 만 관객을 끌어모은다.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던 황산덕(黃山德)이 “대학 교수를 모욕한” 내용에 발끈해 작가와 공개 논쟁을 벌인 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 소설은 더욱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다. 「자유 부인」 연재가 두 달로 접어들 즈음 황산덕은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에 작가에게 띄우는 글을 기고한다.

지금 귀하가 망신을 주고 있는 대학 교수는 권력도 돈도 없는 불행한 족속들입니다. 대학 교수는 본래 진리 탐구에는 적극적이지만 권력과 치부에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일국의 문화 건설에 이바지해 보려고 갖은 모욕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학원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부패했지만 나 혼자만은 부패해서는 아니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학 교수를 상대로 지금 귀하는 도하(都下) 일류 신문의 연재 소설에서 갖은 재롱을 다 부려가면서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는 왜 이러한 무력하고 온순한 족속을 상대로 그러한 작품을 쓰고 계십니까.
『대학신문』(1954.3.1.)

이내 작가인 정비석도 『서울신문』에 반박문을 싣는다. 그는 황산덕 교수의 힐난은 문학자를 모욕한 것이며, “탈선적 폭언”이라고 몰아붙인다.

적어도 남의 작품을 비난(비평이 아님)하자면 그 작품을 한 번쯤은 충실히 읽어보고 붓을 드는 것이 작자에 대한 예의일 뿐만 아니라 귀하의 의무이기도 할 터인데 귀하는 읽어보지도 않고 노발 대발하시면서 「자유 부인」을 중단하라는 호령을 내리셨으니 이 무슨 탈선적 폭언이십니까.······ “소위 문화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작가가 오로지 유명해지기 위해 작품을 쓴다는 말씀은 어디다 근거를 두신 논란이십니까. 본인은 전문학가의 이름으로 귀하의 폭언에 강경한 항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서울신문』(1954. 3. 11.)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이 논쟁은 변호사 홍순화가 “상상의 세계에서 양식이 명하는 대로 자유 분방하게 붓대를 구사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글을 『서울신문』에 기고하고, 평론가 백철이 문학 작품의 대중성과 예술성의 관계를 따지는 글을 『대학신문』에 기고하며 ‘확전’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자유 부인」은 이런 논쟁을 통해 신문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며 낡은 윤리가 해체되고 새로운 윤리가 형성되는 과도기의 특징을 내포한 뜨거운 상징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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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자유 부인 논쟁」, 『한국 현대사 119 대사건』, 조선일보사, 1993
  • ・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 제1권, 들녘, 1998
  • ・ 김윤식 · 김우종 외, 『한국 현대 문학사』, 현대문학, 1989

장석주 집필자 소개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그 뒤 동덕여..펼쳐보기

출처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 저자장석주 | cp명시공사 도서 소개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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