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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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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5년 |
「모반」 · 「백지의 기록」
선우휘와 더불어 행동주의 휴머니즘 작가로 꼽히는 오상원(吳尙源, 1930~1985)은 1930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의주 평안중학교와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1949년 서울대 불문과에 들어간다. 이듬해 전쟁이 터지자 그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피난지인 부산의 공설 운동장 뒤 산비탈에 임시로 지은 가교사에서 학업을 이어나간다.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의 「정복자」와 「인간 조건」에 심취한 오상원은 피난지에서 서울대 문리대 동창생이자 문학에 관심이 많던 이일 · 김정옥 · 박이문과 연세대의 정창범, 그리고 나중에 ‘스타다방’에서 자살한 전봉래 등과 어울린다. 수업이 끝나면, 때로는 수업 도중에 빠져나와, 이들은 클래식 음악 다방에 모여 음악과 문학이며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인지 『구도』를 계획한다. 동인지를 내기 위해 이들은 돈을 모으기로 한다.
그러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 돈을 술값으로 날리고 “술이 곧 ‘구도’다.”라는 말로 동인지를 대신하는 시절을 보낸다. 동아리 구성원 중에서 오상원은 특히 보들레르며 랭보의 시를 줄줄 외고 다니던 이일과 친하게 지낸다. 하루는 둘이 통금 직전까지 술을 마신 뒤 이일의 사촌형이 살고 있던 부두 언저리 하숙집에 가서 “술 내놓아라.” 하고 주정을 해댄다. 그러자 이일의 사촌형은 홧김에 석유병을 내놓는데, 이걸 술인 줄 알고 이일이 병째 마구 들이켰다가 혼쭐이 난다.각주1)
1953년 ‘극협’이 6·25 기념 공연을 위한 희곡을 공모하자 오상원은 「녹쓰는 파편」을 써보내 당선된다. 오상원은 1955년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 소설 「유예」를 응모해 다시 당선된다. 「유예」는 처형이 한 시간 뒤로 유예된 포로를 통해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등단 뒤 꾸준히 소설 창작에 임한 그는 1958년 단편 소설 「모반」으로 『사상계』가 주관하는 제3회 ‘동인 문학상’을 차지한다.
「모반」은 해방과 더불어 정당이 난립하고 무질서와 사상의 혼돈이 극심한 가운데 조국을 위해 테러 집단에 가담한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청년 ‘민’은 홀어머니의 임종도 하지 못할 만큼 테러에 몰입한다. 그러나 민의 이런 열정에도 아랑곳없이 현실 사회의 혼돈은 날로 더해간다. 민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조금씩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이 저지른 암살로 말미암아 누명을 쓰고 체포된 다른 청년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면서 심경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게다가 결사대 내부에서 배신자가 생기는 바람에 민은 자신이 몸을 바쳐온 단체가 정치에 이용당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민은 곧 두목에게 항의의 몸짓을 보이며, “나는 평범한 인간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랑해보고 싶어졌단 말이다. 위대(?)한 하나의 일의 성공보다는 나는 오히려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하나라도 더 소중스러워졌단 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결사대에서 나와 경찰에 자수한다. 허황된 정치적 명분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한 인간의 삶이 더 값지고 소중하다는 주인공의 말은 작가의 인간주의적 각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모반」은 역사나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보다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반란을 꾀하거나 암살을 저지르는 청년 무리의 행동 자체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작품의 결말에 보이는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 등도 소박한 인정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같은 해인 1959년 오상원은 포연 속에 젊음과 꿈을 날려버린 전쟁 피해자의 육체적 · 정신적 외상을 정면으로 부각시킨 또 하나의 문제작 「백지의 기록」을 내놓는다.
의과 대학에 다니던 중 군의관으로 참전한 중섭은 부하를 구하려다가 오른손과 다리 하나를 잃고 귀환한다. 중섭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한다. 자살에 실패한 뒤 심한 정신 착란을 일으켜 입원한 중섭은 우연히 병원에서 일하는 중학 동창생 준을 만난다. 불구가 되어서도 꿋꿋하게 맡은 바 일을 다하는 준에게 이끌려 중섭은 자활촌을 찾는다. 거기서 전쟁통에 불구가 된 몸일망정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여러 사람을 보고 중섭은 점차 평정을 되찾는다. 중섭은 이내 자활촌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에 반해 그의 동생 중서는 몸은 멀쩡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포 자기 속에서 술과 여자에 빠진 채 방탕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중서는 오래 전에 행방 불명된 옛 애인 정연의 소식을 듣게 된다. 정연은 전쟁통에 홀어머니를 잃고 전선 지대에서 떠돌다가 병사들에게 겁탈당한 뒤 정신 이상과 기억 상실증에 걸려, 중서의 형 중섭이 입원한 적도 있는 바로 그 정신 병원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중서와 준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정연의 상태가 좋아지자 중서는 정연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기억을 되찾은 정연은 지난날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투신 자살한다. 비록 정연은 죽고 말지만, 중서는 자기 상실의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정연을 묘지에 묻고 돌아와서, 오랜만에 중섭과 중서의 가족은 한자리에 모여 회포를 푼다.
이 소설의 제목인 「백지의 기록」에서 ‘백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하나는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소멸된 인간과 사회이며, 다른 하나는 그 백지를 다시 한 번 백지화하기, 즉 전쟁으로 말미암은 상흔의 지우기다. 작가는 전쟁의 물리적 · 심리적인 파괴력을 낱낱이 파헤치면서도, 그 끝에는 역사의 비극을 딛고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상실된 나는 영원히 상실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실한 거기에서부터 모든 나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오상원, 「백지의 기록」, 『백지의 기록』(동학사, 1958)
1960년 오상원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들어간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소설 창작을 중단하지 않는다. 얼마 뒤 그는 미군 부대 주변의 풍경과 미군 병사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전후 사회 부평초들의 서글픈 생태를 그린 중편 소설 「황색 지대」를 내놓는다. 1961년에는 『사상계』에 장편 소설 「무명기(無明記)」를 연재하지만, 이 작품은 마무리가 되지 않아 미완성으로 남는다. 이 밖에 그는 같은 해 단편 「야반」, 1963년 「분신」, 1964년 「훈장」 · 「거리」, 1965년 「담배」 등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 기자 생활과 작가 생활을 함께 해나기가 버거웠는지 그는 소설 창작 활동과 멀어진다. 1974년 그는 『동아일보』 논설 위원에 임명된다. 그는 1978년 『오상원의 우화』를 펴내며 잠시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활동이 뜸해지더니, 1985년 오상원은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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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이형기, 「신문학 80년 개관」, 『한국 문학 개관』, 어문각, 1988
- ・ 이재선, 『현대 한국 소설사 1945~1990』, 민음사, 1997
- ・ 임헌영 · 김재용 편, 『한국 문학 명작 사전』, 한길사, 1994
- ・ 장윤수, 「6·25, 그 문학적 대응의 한 양상 ― 오상원론」, 『1950년대의 소설가들』, 나남, 1994
- ・ 유종호, 「청년의 문학 ― 오상원의 작품 세계」, 『동서 한국 문학 전집』 해설 · 연보, 동서문화사, 1987
글
출처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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