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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간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둔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타결됐다. 사실상 소의 연령이나 부위에 제한 없이 수입하는 내용이었다. 이 협상 이후 100여 일간 전국 곳곳에서는 협상 결과와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방아쇠는 MBC의 ‘PD수첩’이었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 프로그램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10대 소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오게 했다.
협상의 당사자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불난 호떡집’이었다. ‘졸속 협상’, ‘검역주권 포기’ 등의 논란이 일면서 이를 진화하기 위한 비상상황이 연일 이어졌다. 핵심은 노무현 정부 시절 월령 30개월 이상 소는 수입할 수 없다던 정부가 왜 새 정부 들어 입장을 전면 수정해 전면 개방했느냐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미국의 강화된 동물성 사료 조치를 엉뚱하게 번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뒷수습’마저 제대로 못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기도 했다.
정부와 청와대, 한나라당 등이 한꺼번에 나서 과학을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해명하고 나섰다. 한ㆍ미 간 협상이 국제수역사무국(OIE)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타결된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미국 동포사회도 안전성 해명에 한몫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국민들의 먹을거리 불안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가 간에 타결된 협상을 번복하기 어렵고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려 했으나 촛불시위는 더 거세졌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의혹과 논란이 불거졌다.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입할 수 있다는 방침이 이미 참여정부 시절 정해져 있었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는 ‘설거지론’이 나왔지만 참여정부측은 이를 부인했다.
협상 타결 시점이 한ㆍ미 정상의 첫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이란 점에서 ‘정상회담 선물용’이란 의혹도 나왔다. 정부는 “오해가 가능하지만 정상회담 일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6월 사과 회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ㆍ미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 사실상 정치적 고려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결국 정부는 당초의 추가협상 절대 불가 입장을 버리고 미국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 대표로서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도중 판을 깨고 귀국길에 오르는 등 ‘배수의 진’을 치는 전술까지 구사한 끝에 결국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당분간 수입하지 않기로 하는 성과를 냈다.
미국 농무부가 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마련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한국에 수출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촛불 민심은 이후에야 진정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두 차례나 사과를 했고 정치ㆍ사회적 혼란은 극심했다.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참여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시위 과정에서의 폭력ㆍ불법성이나 순수성을 훼손시킨 여러 정황들이 나오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기도 했다.
촛불에 떼밀려 내놓은 처방이었지만 원산지 표시제를 전면 시행한 일은 결과적으로 쇠고기 유통의 투명성을 한결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쇠고기 협상 타결 후 소 값은 계속 떨어져 국내 축산농가들의 시름을 한층 깊게 했다. 다행히 새해 들어서는 한우 값이 그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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