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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멸망, 이자성의 난 (동의어 농민 반란)정부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대규모 기근이 겹치자 명나라 백성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졌다. 이에 수많은 농민과 지식인까지 합세해 4만 명에 육박하는 이자군의 반란 세력이 대순을 세우고 정부를 공격했다. 낙양과 서안을 점령하고 20여 일 만에 북경을 포위하고 자금성까지 점령하여 명나라를 멸망시킨 뒤 이자성은 영...
- 시대 :
- 16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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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멸망을 이끈 대규모 농민 반란, 황소의 난 (동의어 농민 반란)안사의 난으로 번진이 당 왕조의 통제에서 벗어나자 당 왕조는 중앙 정부군을 증강하는 데 많은 돈이 필요했다. 가혹한 세금 징수를 단행하여 민생이 파탄 나자 전국에서 크고 작은 반란이 이어졌다. 그중 소금 밀매업자인 황소는 왕선지와 가담하여 농민들을 모아 당 왕조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농민 반란을 ...
- 시대 :
- 8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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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를 뒤흔든 농민 반란, 홍건적의 난 (동의어 농민 반란)원나라 말에는 과도한 조세와 부역, 빈번한 수재와 기근 등으로 민생이 피폐해지고 혼란이 더욱 극심해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붉은색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홍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홍건적은 백련교의 수장 한산동을 중심으로 미륵불의 출현을 고대하며 각지에서 신도를 확보해 세력을 넓혀 갔다. 홍건적의 ...
- 시대 :
- 13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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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의 농민 반란1637년 가을 규슈의 시마바라 반도와 아마쿠사 섬(天草島)에서 격렬한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영주들의 가혹한 연공 착취에 견디다 못해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지방은 예로부터 천주교 신앙이 깊이 뿌리박힌 곳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모두 십자가의 깃발 아래 굳게 단결되어 있었다. 이 반란의 중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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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멸망의 불씨를 당기다, 진승의 난그곳에서 오광과 마찬가지로 배신자 장가(荘賈)에게 목숨을 잃었다. 기원전 208년, 마침내 진나라는 농민 반란군을 완전히 진압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반란으로 기록되는 '진승의 난'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당시 빈농 진승과 오광이 규합한 반진 무리가 삽시간에 봉기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2세황제의...
- 시대 :
- BC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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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트 타일러의 농민 반란 발생백년전쟁으로 재정난에 빠진 잉글랜드가 세금을 늘리자 농민들이 와트타일러를 중심으로 봉기했다. 이는 잉글랜드 최초의 대규모 농민 반란이었다. 5만 명의 농민들은 런던으로 진입해 왕궁을 위협하며 농노제 폐지 및 노동자법의 철폐를 요구했다. 왕이 부득이하게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 들였으나 와트 타일러가 왕과의...
- 시대 :
- 1381년
- 국가/대륙 :
-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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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洪景來결국 성은 함락되고 그도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는 조선 후기 사회가 가진 모순을 깊이 인식한 뒤, 사회변혁을 위해 치밀한 준비 끝에 거병해 반란 초기에 평안도 일대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층 농민들의 반봉건적인 저항력과 절실한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 인식의 한계,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제약으로 끝내...
- 시대 :
- 조선
- 출생 :
- 1771년(영조 47)
- 사망 :
- 1812년(순조 12)
- 유형 :
- 인물
- 직업 :
- 주모자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본관 :
- 남양(南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