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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농민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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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진(秦) 왕조 성립 이후 청말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농민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국의 농민반란은 실제로는 농민을 필두로 수공업자, 염업노동자, 운송노동자, 유민 등 각 계층이 참여한 민중항쟁이었다. 대체로 사회체제의 모순에 의해 부의 편중현상이 심해지고, 토지를 잃은 농민이 증가하며, 전제왕조의 수탈과 국가체제의 문란이 심화되었을 때, 이의 시정, 토지의 균분, 귀천의 철폐 등을 외치며 농민반란이 발생했다. 때로 황건(黃巾)의 난, 백련교도의 난과 같이 종교운동의 성격을 띠기도 하고, 반원, 멸만흥한(滅滿興漢) 등 이민족 지배에 항거하는 민족운동과 결합하기도 하나 그 근본은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항쟁이었다. 중국의 농민반란은 한 왕조의 말기에는 반드시 거대한 농민반란이 발생한다고 할 정도로 규모와 연속성에서 세계사에서 특출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것들로는 진의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BC 209~208), 왕망(王莽) 정권 하의 녹림(綠林)·적미(赤眉)의 난(17~27), 한말 황건의 난(184~205), 당의 황소(黃巢)의 난(875~884), 송의 왕소파(王小波)·이순(李順)의 난(993~995), 원의 홍건의 난(1351~67), 명의 등무칠(鄧茂七)의 난, 유육(劉六)·유칠(劉七)의 난(1510~12), 이자성(李自成)·장헌충(張獻忠)의 난(1627~46), 청의 백련교의 난(1796~1805), 그리고 근대적 농민전쟁으로도 분류하는 청말 태평천국의 난(1850~64) 등이 있다.

농민반란의 구호는 실현되지 않고 농민반란의 지도자가 수립한 정권은 다시 전제왕권으로 돌아갔지만, 농민반란은 기존 사회체제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례로 황소의 난은 장원제를 기반으로 하는 당의 귀족세력을 몰락시키고 지주제에 기초한 사대부 계층의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송·명대에 지주제가 발달함에 따라 이후의 농민반란은 지주제의 모순에 항거하는 순수한 농민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해지고, 농민의식을 계속 고취시켰다. 송대에는 대규모 반란 외에도 전호(佃戶) 농민의 소작료 거부와 항조운동(抗租運動)이 발달했으며 명대 지주제와 농촌에 침투한 은경제(銀經濟)의 결합에 의해 급속히 몰락한 소농을 축으로 한 수차례의 농민반란이 발생했다. 이것들은 근대적 농민전쟁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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