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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농민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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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를 통해 영주권력의 횡포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봉기는 많았다. 그러나 이전에는 개별 영주에 대한 1회적인 것이 많았고, 14세기 이후 집중적이고 대규모로 발생해 플랑드르,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14세기 이후, 독일에서는 15세기 초반 이후, 러시아에서는 17세기 이후에 많은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발생시기와 양상, 직접적 계기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봉건지대와 농노제를 축으로 한다. 이 시기는 도시와 상공업이 발달하고 이와 결합하여 농민층이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로 농민의 성장을 억압하는 영주권의 갖은 제약, 부역제에 기초한 농노제의 가혹성, 농민간의 계층분화가 원인이 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흑사병에 따른 인구감소와 농민의 저항에 대항하기 위해 영주층이 실시한 부역제 강화 등의 봉건반동정책이 반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영주권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의 과중한 조세징수에 대항하여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반란규모가 가장 컸다. 1358년 자크리(Jacquerie)의 반란, 1381년 와트 타일러의 반란이 대표적이다. 17~18세기 절대왕정 아래서도 이런 봉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사회분화가 진전됨에 따라 흉년·물가앙등을 계기로 빈농, 도시빈민들의 폭동이 영주·지주·부호·곡물상인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농민반란은 진행과정에서 폭동과 학살을 수반하기도 했으며, 자연발생적이고 비조직적이었다. 무장도 곤봉이 주가 될 정도로 열악했다. 이들은 국왕과 영주의 군대에 의해 모두 철저하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농민반란은 유럽 봉건제의 질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농민반란을 계기로 영주제의 재편성, 국왕권의 강화가 나타났으며, 노동지대의 화폐지대로의 이행, 구래의 예속적인 농노제에서 영주와 농민간의 봉건적 계약관계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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