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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리장성 고려장성, 千里長城
    여진들이 아직 정치적으로 미숙해 마을단위로 산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천리장성에 대한 고려의 인식은 국경선으로서의 의미 외에, 여진거란에 대해 고려는 문화적·혈통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우위에 놓임으로써 이들과 혼효(混淆)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화적 구분선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시대 :
    고려
    건립시기 :
    1033년(덕종 2년) 건립 착수
    성격 :
    성곽, 관방유적
    유형 :
    유적
    소재지 :
    고려시대 북쪽 경계 지역
    분야 :
    역사/고려시대사
  • 대조영 大祚榮
    이곳에서 대조영은 옛 고구려의 주민이었던 말갈과 연대감을 키우는 등 역량을 키워 나갔다. 696년 이진충(李盡忠), 손만영(孫萬榮)이 이끄는 거란 이 반란을 일으켜 차오양을 공격했다. 이를 틈타 대조영은 함께 억류되어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을 이끌고 동쪽으로 탈출해 자립에 성공했다. 당시 당의 측천무후...
    출생 :
    미상
    사망 :
    719년
  • 흑수말갈 黑水靺鞨
    발해 중기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발해의 통제를 받으며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의 문물을 받아들여 성장과 발전을 꾀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는 생여진으로 불리며 동만주 일대에서 자치적 생활을 누렸다. 그후 거란과 고려의 영향 아래 점차 정치적·사회적 발전을 보아 금을 세우는 세력의 일부가 되었다.→ 말갈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인종/민족
  • 발해의 역사와 강역
    무실해진 696년 무렵 전통적으로 중국 동북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중시되던 요서지방의 요충지 영주(營州)에서는 당의 압제에 시달리던 거란이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의 지도 아래 반란을 일으켜 이 일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1년 여에 걸친 반란의 와중에서 고구려 멸망 후 강제로 이 지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한국사 , 발해
  • 몽골어족 민족 蒙古语族 民族
    근접한다고 보면 된다. 그 때문에 몽골어족의 여러 언어는 ‘공동몽골어’에서 기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어족 민족은 역사상 돌궐문자(突厥文), 거란문자(契丹文), 파스파문자(八思巴文) 등 문자를 창조하고 사용했으며 많은 소중한 문헌들을 남겼다. 예를 들면 몽골의 3대 역사 저작인 『몽골밀사(蒙古秘史...
  • 오랑캐
    그들은 중국 외의 모든 민족을 오랑캐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동이(東夷, 고구려 · 거란 · 여진), 서융(西戎, 티베트 · 위구르), 북적(北狄, 몽골 · 선비족 · 흉노족), 남만(南蠻, 미얀마 · 대리족 · 베트남 등 장강 이남의 모든 종족), 이렇게 오랑캐를 네 부류로 나눴다. 중국인들이 굳이 남의...
    유형 :
    순우리말
  • 元, Yuan dynasty
    제도가 실시되었다. 민족별 신분은 4계층으로 분류되었는데, 몽골·색목인(色目人:위구르인·이란인 등)·한인(漢人:옛 금나라 지배 아래 있었던 한족·거란 등)·남인(南人:옛 남송의 유민)이 그것이었다. 몽골에게는 지배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사회적 특권이 부여되어 원나라 정권의 최상위는 몽골 황제...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세계사
  • 튀르크의 연대표 (500-1300)
    차르 시메온 1세와 비잔티움 황제 레온 6세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됨. 년도 설명 914 페체네그와 키예프 루스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됨. 924 거란이 키르기스들을 몰아내고 몽골 고원을 장악함. 일부 키르기스인들은 고향이었던 예니세이 강 유역으로 돌아갔지만, 대다수는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 지역으로 이주...
    도서 위키백과
  • 실위 室韋, Shihwei
    감독하게 했다. 아르군 강의 몽올실위는 당대 중엽 이후에 대부분 서쪽 케룰렌·오논·툴라 강 상류와 켄테이 산 기슭으로 옮겨갔는데 이들이 몽골의 조상이다. 10세기초 거란이 세력을 키우면서 우선적으로 인근에 있던 실위부터 쳐들어갔다. 거란의 아보기가 요(遼)나라를 세운 후 실위는 대부분 요에 합병...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인종/민족
  • 대조영 발해를 건설한 고구려 유민
    주려는 의도로 조성된 것이다. 만리장성 끝자락에 있는 산해관으로 들어갈 때부터 사람들은 위압감을 느꼈다. 영주성 언저리에는 원래 북쪽에 근거지를 둔 거란이 많이 살았으며 다른 종족들도 섞여 있었다. 고구려 주민을 비롯해 북쪽의 돌궐거란, 동쪽의 말갈이 어우러져 살았던 것이다. 이들은 전쟁을...
    출생 :
    미상
    사망 :
    719년
  • 아구다, 금나라 건국
    거란)와 고려를 상전으로 섬기던 종족이었다. 그러나 요나라가 송나라와의 무역으로 부유해지면서 사치스런 생활에 빠지자 여진에게 기회가 왔다. 오랫동안 거란에게 눌려 설움을 당했던 여진은 폭발적인 기세로 요나라 땅을 점령해 나갔다. 안락에 젖어 기강이 해이해진 요나라 군대는 여진의 상대가 되지...
    시대 :
    1115년
    국가/대륙 :
    아시아
  • 베이징의 역사
    탕구트이 세운 서하(西夏)와 거란의 침입으로부터 변경지방과 이곳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들이 취해졌는데, 그결과 유주의 위치는 점차 중요해졌다. 당나라가 멸망하자 중국 북부에 수많은 나라들이 세워졌는데, 그 가운데 한 나라가 거란에 의해 세워졌다. 그들은 유주를 파괴한 뒤 요(遼:947~1125)를 세우고...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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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족의 변발 모습
장막을 치고 잔치를 벌이는 거란족의 모습
서기 700년 무렵, 거란족의 영토를 표기한 지도
매사냥에 나선 거란의 귀족을 묘사한 그림
1025년, 요나라의 위세가 최고에 달했을 때의 영토
요나라 태조 황제 야율아보기
중앙아시아에 들어선 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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