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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남긴 문제
독일 관념론의 정점인 헤겔의 철학체계는 철학의 모든 문제를 통일적으로 해결하려는데 있다. 헤겔은 특수한 관점을 뛰어넘는 사변적 관점으로 유일한 진리를 파악해야 하고 논리학·형이상학·자연철학·법철학·역사철학·예술철학·종교철학 등 철학의 모든 문제를 본래의 중심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는 내용과는 무관한 형식적 방법을 뛰어넘는 것이며 실재의 총체인 절대자, 즉 단순히 실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절대자의 실질적 발전을 나타내는 것이다. 절대자는 처음에는 자신의 내적 의식의 직접성 속에서 스스로를 정립하고, 다음에는 이러한 정립 행위를 부정하고, 마지막으로 유한 세계를 구성한 앞의 부정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복귀한다(→ 변증법).
이러한 보편적 체계는 역사와 문화의 모든 문제에 대한 고려에 철학을 끌어들인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으나 동시에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는 요소들의 자율성을 박탈해버렸으며 모든 것을 절대정신의 자기 추구 과정이라는 한 과정의 상징적 현현으로 환원해버렸다. 더욱이 종교와 정치 문제 등 시대의 긴급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이러한 대립물 사이의 사변적 매개는 결국 가장 시급한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와 모호하다든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헤겔 해석의 역사적 단계들
헤겔주의의 발전은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1827~50년으로 독일에서 헤겔 학파가 직접적 위기에 직면한 시기이다. 이때 헤겔 학파는 헤겔 우파, 헤겔 좌파, 헤겔 중간파로 갈라졌다. 헤겔의 제자들로 구성된 헤겔 우파는 헤겔 철학이 자유주의적이고 범신론적이라는 비난에 맞서 헤겔주의가 복음적 정통 및 보수정책과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헤겔 우파는 노년 헤겔 학파 또는 노년 헤겔주의자라고도 한다. 대부분 헤겔의 간접적 제자들로 이루어진 헤겔 좌파는 변증법을 '운동의 원리'라고 생각했으며 헤겔이 이성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동일시한 것을, 반동세력이 정당화하고 있던 문화적·정치적 현실을 개혁하여 이성적인 것으로 만들라는 명령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헤겔 좌파 또는 청년 헤겔 학파는 헤겔주의를 혁명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헤겔 중간파는 특히 논리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헤겔 체계를 그 발생과 의의의 측면에서 탐구하는 데 주력했다.
2단계는 헤겔주의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고 중간파의 저작이 지배적인 역할을 한 시기이다. 신헤겔주의 단계로 불리기도 하는 이 단계에서는 변증법의 수정과 논리학이 주요관심사였다. 딜타이가 헤겔의 청년 시기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한 뒤 독일에서는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헤겔 르네상스 시대라고 불리는 이 3단계는 문헌학에 대한 관심, 원본 발간, 역사적 연구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 단계에서는 헤겔 사상의 발생을 재구성하는 것이 강조되었고 특히 헤겔 사상의 문화적 모체인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중시되었다.
4단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 이때는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되살아나면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특별한 고려 속에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계와 마르크스주의에 전해진 헤겔 유산의 가치에 관심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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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헤겔주의의 일반적 고찰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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