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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다른 표기 언어 Tunisia 동의어 튀니지 공화국, Republic of Tunisia
요약 테이블
인구 12,514,280명 (2024년 추계)
수도 튀니스
면적 163,61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튀니지 공화국 (Republic of Tunisia)
기후 지중해성기후
민족 구성 아랍인(98%), 유태인, 유럽인
언어 아랍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98%), 그리스도교(1%), 유대교
화폐 튀니지 디나르 (TND)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16
GDP USD 40,298,000,000
전압 220~230V / 50Hz
도메인 .tn

요약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작은 나라. 아랍계와 베르베르계의 혼혈인이 주민의 다수를 점한다.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지만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대다수 국민이 이슬람교도들이다. 인구밀도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으며, 대부분분 해안 가까이에서 산다. 1881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어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벌이다 1956년 독립을 하고 국제연합에 가입했다. 서비스업, 농업, 경공업, 석유와 인산염의 생산과 수출업이 가장 발달해 있다. 실업과 불완전 취업이 만연하며 경제개발을 서방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의 보조에 의존하고 있다.

튀니지 국기

ⓒ M. Shcherbyna/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도는 튀니스이다. 남북방향 최대길이가 756km, 동서방향 최대너비가 351km로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서쪽과 남서쪽으로 알제리, 남동쪽으로 리비아, 동쪽과 북쪽으로 지중해와 각각 접한다. 해안선의 총길이는 1,200km이다.

지도
튀니지 위치

자연환경

지형적 특징에 따라 북단에서 남단에 이르기까지 국토를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국토 총면적의 1/3을 차지하는 북부 산간지역에는 사암과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2개의 산맥인 노던텔(북쪽)과 하이텔(남쪽)이 솟아 있다. 이 산맥들은 각각 알제리의 텔아틀라스 산맥과 사하라아틀라스 산맥의 연장줄기이다. 해발 1,544m로 튀니지의 최고봉을 이루는 샤나비 산은 알제리와의 국경 부근에 있다.

중부는 광대한 고원으로, 다시 서부 고지 스텝(해발 480m 이상)과 동부 저지 스텝(180∼480m)으로 나뉜다. 이보다 남쪽에 있는 저지에는 일련의 수심이 얕은 염호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것은 자리드 호이다. 국토의 최남단부는 모래와 암석으로 이루어진 사하라 사막으로 이어진다. 피압 지하수가 풍부한 튀니지 남부 곳곳에는 잘 경작된 오아시스가 발달해 있다.

460km 길이의 마자르다(메제르다) 강은 이 나라 최대의 강이며 유일한 영구천으로, 수력발전과 관개에 이용되고 있다. 마자르다 강 유역은 이 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이며 최대의 농업지역을 이룬다.

북부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은 온화하고 습윤하며 여름은 무덥고 건조하다. 지중해 연안의 튀니스에서는 1일평균 최고기온이 8월의 33℃에서 1월의 14℃ 사이에 분포한다. 기온은 바다의 영향을 받으며, 해안이 내륙에 비해 기온차가 작다. 남부는 사막기후를 나타내며, 사하라 지방으로부터 빈번하게 불어오는 열풍 때문에 북부에 비해 기온이 훨씬 더 높고 기온차도 심하다.

강우량은 북부에서 연간 1,000∼1,500㎜의 분포를 나타내는 반면, 남부에서는 100∼200㎜에 불과하기 때문에 관개를 하지 않고서는 경작이 불가능하다. 습한 산비탈에서는 푸른 코르크나무와 오크나무 숲이 발달해 있으며, 중앙 스텝 지방에서는 아프리카나래새가 자란다. 건조한 남부에서는 약간의 관목을 볼 수 있으며 사하라 사막지역에는 오아시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식물이 전혀 자라지 않는다.

이 나라의 야생동물로는 가젤·멧돼지·전갈·뱀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광물자원은 인회암으로,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인회암 광산 몇 개가 튀니지에 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5번째로 큰 석유매장지이며, 4번째로 큰 천연 가스 산지이기도 하다. 그밖의 광물로는 철광·납·아연·수은 등이 있다.

튀니지, 모나스티르(Monastir)

ⓒ meunierd/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국민

튀니지의 연간 인구성장률은 전세계 평균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평균 증가율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인구밀도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안 가까이에서 산다. 튀니지의 남반부 전역은 인구가 매우 희박하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251만 4,280명이고, 인구밀도는 81명/㎢ 이다. 전체 인구의 1/5이 15세 미만이며, 인구의 2/3가 도시에 거주한다.

아랍계와 베르베르계의 혼혈인이 주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아랍인은 7세기부터 북아프리카로 오기 시작하여 토착민인 베르베르인을 쉽게 정복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도 함께 가지고 들어와 토착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오늘날의 튀니지인들은 대부분 그들이 아랍인의 후손이며 아랍 문화의 계승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베르베르인의 문화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현재 베르베르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전체인구의 2%도 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20세기말경 이스라엘로 이주해갔다.

공식어는 아랍어이고, 프랑스어도 널리 쓰인다. 대다수의 국민이 이슬람교도이며, 소수의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도 등이 있다.

경제

튀니지는 공기업과 사기업이 공존하는 혼합경제국이다. 서비스업, 농업, 경공업, 석유와 인산염의 생산과 수출업이 가장 발달해 있다. 문제점으로는 실업과 불완전 취업의 만연을 꼽을 수 있으며, 경제개발은 주로 서방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의 보조에 힘입어 이루어져왔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율보다 약간 높은 비율로 증가하고 있으며,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수준과는 비슷하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수준에 비하면 다소 낮은 편이다.

농업은 전통적으로 튀니지 경제의 근간을 이루어왔지만, 최근 20∼30년 동안 제조업의 비중이 보다 커지고 있다. 농업은 GNP의 1/5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약 1/4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외국인 소유의 토지는 1964년에 몰수되어 국유화되었다. 정부는 1960년대에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려고 시도했지만 해외원조기관들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반대에 부딪혀 결국 계획을 포기했다. 불규칙한 강우체계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적지 않으며, 그결과 수확량이 해마다 변한다. 건조농업이 지배적이며, 농무부가 관할하는 관개는 불충분한 실정이다.

주식작물인 밀과 보리의 수확량은 종종 국내수요에도 미달된다. 정부는 신품종인 멕시코산 왜성종 밀을 도입하여 생산량의 부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 품종이 현재 밀 수확량의 약 1/10을 차지하고 있다. 밀은 북부에서 주로 재배되며 보리는 강우량이 적은 중부·남부 지방에서 주로 재배된다. 환금작물로는 올리브·사탕무·감귤류·야채 등이 있다. 가축으로는 양을 가장 많이 기르고 염소·소·가금류도 사육된다.

주요광물자원은 석유와 인산염이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튀니지석유회사가 석유생산을 관리한다. 석유는 주요수출품이기도 한데, 중유는 막대한 양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인산염은 대부분 수출용 화학제품과 비료 생산에 이용된다. 제조업은 GNP의 1/8가량을 차지하지만 이 분야의 취업인구는 전체노동인구의 거의 1/5에 달한다. 공업은 외국의 자본 및 차관에 크게 의존해왔으며, 튀니스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의 제조시설이 5명 이내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정부의 강력한 장려를 받고 있는 전통적인 장인 활동이 여전히 다수의 튀니지인에게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가공상품·조강·화학제품·직물·피혁제품 등의 제조업이 발달했다.

전력은 거의 전적으로 국산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에 의지하지만, 마자르다 강 연안에서는 약간의 수력발전도 이루어지고 있다. 도로와 철도망은 국내의 모든 도시들을 연결할 만큼 조밀하다. 긴 해안선을 따라 주요항구가 여러 개 있다. 고대 로마의 유적과 후세의 이슬람 건물들, 긴 해변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관광업이 발달해 있다. 관광산업, 해외원조,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은 주요 외화획득원으로 무역수지의 적자를 상쇄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해외원조는 주로 세계은행(IBRD), 유럽 투자은행, 프랑스, 미국,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제공한다.

유럽 경제공동체(EEC)는 1976년에 튀니지의 농산물 수출에 대한 관세율을 인하했으며, 튀니지에 상당한 액수의 차관과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주요수출품은 석유, 유제품·직물·인산염제품·농산품 등이다. 수입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식량·원료제품·화학제품·의약품 등이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수입품의 1/3을 공급하는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독일·미국 등이다.

정치와 사회

튀니지는 공화국으로서 1959년에 채택된 헌법이 단원제의 국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국회는 5년 임기로 직접 선출되는 13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행정권은 5년 임기로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있으며, 대통령은 무제한으로 연임할 수 있다. 대통령은 임명직 각료들로 구성되는 내각의 보좌를 받으며, 내각의 수뇌는 국무총리이다. 데스투르(입헌) 사회당이 독립 이래 다수당이자 유일한 합법정당의 위치를 차지해왔다. 야당들은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선거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독립 사법부는 파기원(破棄院)을 정점으로 하며, 파기원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튀니지의 사회보장제도는 근래 대부분의 노동인구에게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국가에서는 노령수당, 장애자 연금, 유족 연금, 질병·출산·근로상해 보상금 등을 지급하며, 무료 진료사업도 시행한다. 보건상황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으며, 많은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의료시설과 의료진의 수가 아직 전국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증가하여 천연두의 근절과 장티푸스·디프테리아·발진티푸스 같은 주요전염병의 억제에 기여하고 있다. 유아사망률이 출생아 1,000명당 90명에 달하고, 사망자 대부분이 5세 미만의 아이들로 유아·소아병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평균수명은 거의 60세에 달한다. 영양상태는 대체로 적정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1인당 1일 평균 약 2,700㎈를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교육이 정부의 시책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상당히 높아 해마다 국가예산의 1/4을 배정받는다. 문자해득률은 남자가 약 60%이고, 여자도 거의 40%에 달한다. 공립교육은 무상이지만 의무제는 아니다. 6년제의 초등학교, 7년제의 중등학교, 3년제의 실업학교,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등록학생의 수는 1960, 1970년대에 급증했지만, 1970년대말에는 계획적으로 감축되었다. 정부는 일체의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를 통제하며, 언론의 자체 검열은 점차 정부기관의 검열로 대체되고 있다. 방송산업은 독립 이래 국가의 독점산업이 되어왔다.

문화예술

튀니지 역사적으로는 페니키아·카르타고·로마·베르베르·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의 중심지로서 또는 예속지로서 풍부한 건축유산을 남겼으며, 이들은 주로 북부지방에 몰려 있다. 문학에서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이용하며, 과학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현대문학은 현저하게 발전했지만, 외국에서는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대 화가 중에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명성을 누리는 화가가 더러 있다. 음악교육기관은 민족 고유음악의 전승에 기여하는 바 크지만 유럽 고전음악의 유산이 갖는 중요성도 간과하지 않는다.

역사

BC 12세기부터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 해안에 교역소와 기항지를 건설했다. BC 8세기에는 카르타고가 건설되었고, BC 6세기경에는 카르타고인의 왕국이 현재의 튀니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커졌다. 카르타고는 BC 146년 포에니 전쟁이 모두 끝난 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로마의 지배는 7세기 중엽 이슬람의 침입 때까지 지속되었다.

튀니지는 아바스 왕조와 그 조공국인 아글라브 왕조, 시아파의 파티마 왕조, 알모아데 왕조, 하프스 왕조, 스페인 등의 통치자들 사이에서 거듭 침략을 당했으며, 마침내 1574년 오스만 제국에 복속당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는 국력이 쇠퇴해진 19세기말까지 계속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튀니지는 프랑스·이탈리아·영국의 세력 각축장이 되었다. 한동안 이 3개국 사이의 상충하는 이해관계가 튀니지의 자치를 유지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다.

1881년에 완결된 협상에 따라 영국은 키프로스를 차지하고 프랑스는 튀니지를 보호령으로 삼게 되었다. 합의된 협상내용에 원칙대로 따르자면 현지의 통치자인 이른바 베이(bey)들이 계속 튀니지를 다스리게 되어 있었지만, 실권은 프랑스인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20세기초 튀니지인들은 참정권의 확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 제1차 세계대전중에 프랑스를 지원하기는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1920년 데스투르당은 튀니지인의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했다. 1930년대에는 하비브 부르기바를 지도자로 하는 신(新)데스투르당이 등장하여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해산했던 이 정당은 전후에 복귀하여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56년 프랑스는 튀니지에 완전독립을 부여했으며, 부르기바를 행정수반으로 한 독립 튀니지가 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베이들의 통치는 폐지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신데스투르당은 데스투르 사회당(Parti Socialiste Destourien/PSD)이 되었다.

1980년대초에 정부는 정당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책에 착수했고, 노동조합활동으로 구속되었던 노동조합원들이 특별사면 혜택을 받았으며, 튀니지 공산당이 합법화되었다. 마침내 1981년 사상최초의 다수당 경선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선거에서 기존의 국민전선(PSD와 노동조합의 하나인 튀니지 노동총연맹[UGTT]의 연합전선)이 압승을 거두었으나 야당들(모두 사회주의 연합의 좌파에 해당)은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다.

튀니지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튀니지는 한국과 1968년 5월에 영사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1969년 3월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이에 따라 튀니지에 있는 한국의 총영사관은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두 나라는 그동안 고위인사의 상호방문과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하여 우호적이고도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튀니지는 2010년 9월에 관광부장관, 2002년 6월에 국회의장이 방한한 이후 각 부처 장관이 방한했다. 한국은 2007년 3월에 김성호 법무부장관, 2010년 1월에 김형오 국회의장, 2018년 12월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공식 방문했다.

한편 북한은 1975년 7월에 튀니지와 국교를 맺고 1978년 8월에 주 튀니지 대사관을 설치했다가 1995년 4월에 경제 사정 악화로 폐쇄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의 튀니지 수출액은 2023년 기준 1억 3,722만 달러, 수입액은 1억 501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전기기기, 플라스틱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광물성 연료, 구리, 플라스틱 등이다. 한편 양국은 경제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 무역 및 경제 협력공동위원회나 민간협력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두고 있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사증(비자)면제협정(1969), 문화협정(1969), 무역 및 경제협정(1970), 의료협정(1973), 투자증진 및 상호보호에 관한 협정(1975), 이중과세방지협정(1988), 과학·기술 협력협정(1994), 항공협정(1994),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공여에 관한 협정(1997), 환경협력협정(2007)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튀니지에 한글학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튀니지인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고, 튀니지한인회가 결성되어 있어 한인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를 도모하고 한국의 우수한 문화, 예술 소개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매년 튀니지의 기술연수생을 초청·교육시키고 태권도 사범을 파견하기도 한다. 2023년 기준 튀니지에는 182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튀니지 수도인 튀니스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421명의 튀니지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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