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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런던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일간신문.
영국에서 가장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신문 가운데 하나이며 흔히 〈런던 타임스 The Times of London〉를 약칭해서 이렇게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 신문은 〈가디언 The Guardian〉·〈데일리 텔레그래프 The Daily Telegraph〉와 함께 '영국의 3대 일간지'로 꼽히며, 오랫동안 세계 최대의 유력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어왔다.
이 신문은 1785년 1월 1일 존 월터에 의해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 The Daily Universal Register〉라는 이름으로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에는 2.5페니짜리 일면 대판지로 발행되었는데, 발행의 주요목적은 월터 자신이 당시 흥미를 갖고 있던 활판 인쇄술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1788년 1월 1일 〈타임스〉로 명칭을 바꾸고 상업적인 뉴스, 논평과 함께 스캔들 기사를 곁들여 발행하기 시작했다. 1803년 창업자의 아들 존 월터 2세가 신문을 물려받아 운영하게 되었다. 그는 이 신문을 4면에서 12면으로 늘렸고, 1848년 그의 아들 존 월터 3세에게 신문의 운영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이 신문을 영국 최대의 유력 시사 정론지이자 역사의 일간기록지로서 오늘날 〈타임스〉 명성의 토대를 쌓았다. 초대 편집장이었던 위대한 자유주의자 토머스 반스(1817~41 재임) 하에서 〈타임스〉는 강경한 독립적 신문으로 발전했는데, 이같은 편집태도 때문에 〈타임스〉는 '천둥 치는 사람'(Thunderer)으로 불렸다.
1800년대 중반 이 신문은 영국의 여론형성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권위 있는 여론선도지가 되었으며, 발행부수도 1815년의 5,000부에서 1850년에는 4만 부로 늘어났다. 독자적인 편집진을 갖추고 있는 자매지 〈선데이 타임스 The Sunday Times〉가 1822년에 창간되었다. 〈타임스〉는 보도기사와 글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일정수준을 유지했으며 작은 것에도 철저한 정확성을 기했다.
이 신문은 전통의 지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 견해는 독립적이고 분명하며 강경했다. 이 신문은 또한 계속적인 혁신을 꾀해나갔다. 1841년 존 T. 딜레인이 편집장이 되었다. 그가 재직했던 46년간 이룬 눈부신 언론사적 업적은 오늘날 〈타임스〉의 곳곳에 남아 있다. 국내 보도거리가 급증하는 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세계 최초로 윌리엄 하워드 러셀을 종군기자로 고용하여 크림 전쟁(1853~56)을 취재하게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러시아의 평화제의를 〈타임스〉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19세기말경 아일랜드의 영웅 파넬을 모함하는 위조 기사를 과도한 지출을 해가면서 경솔하게 발표하여 〈타임스〉는 재정과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판매부수도 극도로 낮아졌다. 그에 대한 회복책의 일환으로 〈타임스〉는 엔사이클로피디아브리태니커출판사와 공동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9·10판을 광고 판매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1906년 '선정주의 신문왕' 앨프레드 함즈워스 노스클리프 경이 이 신문을 인수하면서 재정은 든든해졌으나 편집 명성은 노스클리프 경이 죽은 1922년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1950년대 당시 영국방송협회(BBC) 사장이었던 윌리엄 헤일리 경이 편집주간(1952~67 재직)을 맡으면서 〈타임스〉는 다시 정론지로서 옛 명성을 회복했다.
구성과 편집의 변화를 도입해 신문을 보다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만들었다. 1966년에는 계속해서 제1면에 싣던 광고를 다른 면으로 옮기고 뉴스 기사를 실어 오늘날의 신문구성의 틀을 다졌다. 현대적 식자와 인쇄 설비를 도입했으나 새로운 설비에 익숙하지 못한 인쇄공들의 장기 파업으로 1978~79년에 신문발행을 일시 정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신문과 그 명성은 다시 살아났고 〈타임스〉와 자매지 〈선데이 타임스〉는 계속해서 번성했다.
1981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신문발행인 루퍼트 머독이 이 두 신문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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