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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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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콩고 지역이 15세기의 민족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대부분 무인지대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지금의 인종 구성은 최초의 정착에 의해 이루어진 본래의 인종 구성과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민지화하기 전의 콩고 지역에 수립된 가장 중요한 왕국들은 콩고 강 북쪽의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은 로앙고 왕국과 로앙고의 동쪽으로 콩고 강의 팽창부인 스탠리풀(말레보풀)의 북쪽에 자리잡은 테케 왕국이었다. 로앙고 왕국은 빌리로 알려진 콩고 부족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7세기말 노예 무역의 결과로 그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테케 왕국 역시 노예 사냥에 가담했다(콩고 왕국).

이탈리아 태생 프랑스의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냥 드 브라자는 1875년에 중앙 아프리카의 탐험을 시작했다. 1880년에 그는 테케족과 그들의 왕국을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다(프랑스사). 그는 1883년에 로앙고의 빌리족과도 비슷한 조약을 체결했다.

브라자 (Pierre-Paul-François-Camille Savorgnan de Brazza)

이탈리아 태생 프랑스의 탐험가, 식민지행정관

ⓒ Charvex / wikipedia | Public Domain

브라자가 체결한 첫번째 조약은 1882년에 프랑스령 콩고 식민지(지금의 가봉 포함) 수립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1905년 행정 개편에 의해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내에 무아앵(미들) 콩고 식민지가 창설되었다(무아앵 콩고). 브라자는 1898년까지 프랑스령 콩고의 행정관으로 있다가 면직되었으며, 그 영토는 특허 회사들 사이에 분할되었다. 이 회사들은 인적 자원과 천연자원을 모두 착취하여 많은 봉기를 유발했다.

그들의 권력 남용에 대한 일반인의 분노의 소리가 높아지자, 프랑스 정부는 특허 회사들을 개혁하려고 노력했으나 1930년까지 그 폐해가 계속되었다. 무아앵 콩고의 수도였던 브라자빌이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수도이기도 했기 때문에 무아앵 콩고는 프랑스의 관심을 가장 많이 샀다. 무아앵 콩고가 철도와 항구를 가진 유일한 식민지라는 사실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었다.

1946년 무아앵 콩고는 프랑스 의회로 보낼 대의원들을 선출했으며, 1958년에는 주민 투표에 의해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완전독립은 2년 후에 이루어졌다. 콩고의 초대 대통령 풀베르 율루는 1963년에 축출되었다. 그무렵에는 알퐁스 마상바데바 대통령 밑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정당이 세력을 얻었으며, 1968년 마리앙 응구아비 소령이 지휘한 또 한 차례의 쿠데타 결과 콩고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정국 불안은 계속되었으며, 응구아비는 1977년에 암살되었다.

그의 뒤를 조아섕 용비 오팡고 장군이 이었다가 1978년에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축출되고, 드니 사수 응게소 대령이 권력을 장악했다. 1978년에 또 한 차례 일어난 쿠데타 결과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었으며, 1979년에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었다. 이 헌법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 응게소는 서방세계와 프랑스와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다.

정국은 점차 안정되었지만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한 공기업의 효율이 떨어져 1980년대 초반 경제에 부담을 주었다. 석유 생산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듯 했으나 석유와 다른 천연자원의 가격이 하락하자 경제위기가 닥쳤다. 1985년 대외채무는 15억 달러를 초과했고 재정 수입의 45 %를 이자 비용으로 부담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 끝에 재정 지출과 정부 조직을 축소하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이 지원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까지 경제위기는 계속되었고 부채는 오히려 3배로 늘어났다.

1991년에 새로운 헌법 초안이 제출되었는데 여기에는 공식 국가명에서 '인민'을 삭제하는 안도 포함되었다. 이 헌법 초안은 1992년에 실시된 국민투표로 확정되었다. 그 해 8월 치른 선거에서 파스칼 리수바가 드니 사수 응게소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자 정권 교체에 따른 정정 불안이 계속되었다.

드니 사수 응게소(Denis Sassou Nguesso)

콩고공화국 대통령

ⓒ Ricardo Stuckert/PR / wikipedia | CC BY 3.0 br

파스칼 리수바 대통령과 드니 사수 응게소 전(前) 대통령을 지지하는 양편 민병대들간의 전투가 계속되더니, 결국 전면적인 내전으로 발전했다. 치열한 내전 끝에 1997년 10월 19일 리수바는 부르키나파소로 도주했고, 그가 이끌던 정부 관료들은 콩고민주공화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10월 25일 사수 응게소는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러나 축출된 파스칼 리수바 전(前)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 민병대가 조직되어 정부군을 공격하면서 콩고는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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