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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다른 표기 언어 Cataluna
요약 테이블
위치 스페인 북동부
인구 7,517,033명 (2020년 추계)
면적 32,113㎢
언어 카탈루냐어
대륙 유럽
국가 스페인

요약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자치주. 주도는 바르셀로나이며,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이 발달한 지방이다. 동남부는 지중해, 서부는 아라곤 자치령, 북부는 프랑스와 인접해 있다. 옛날에는 아라곤 왕국의 공국이었으며, 스페인 영토에서 가장 먼저 로마 제국에 정복당했던 곳 중 하나이다. 15세기 스페인의 통일이 이루어진 후 17세기에 이르러 분리운동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 자치권을 인정 받아 행정구역상 스페인의 지방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2010년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카탈루냐 자치법 위헌 판결 이후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2017년 10월 27일 자치의회에서 독립을 선언했으나 11월 8일 스페인 정부에 의해 무효화 되었다.

스페인 북동부의 주들인 헤로나·바르셀로나·타라고나·레리다를 포함하며 1979년 11월 18일의 자치법령에 따라 설립되었고, 2017년 10월 27일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가 11월 8일 스페인 정부에 의해 무효화 되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이 발달한 지방이며 중심도시는 바르셀로나이다.

카탈루냐, 바르셀로나(Cataluna, Barcelona)

ⓒ jribes/Pixabay | Public Domain

역사

옛날에는 아라곤 왕국의 한 공국이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다. 17세기 이후 때때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분리운동의 선두에 섰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영토 가운데 로마 제국에 가장 먼저 정복당했던 곳 중 하나이다. 5세기에 고트족에 점령당했으며, 712년에는 무어족에게, 8세기말에는 샤를마뉴 대제에게 넘어갔다. 샤를마뉴는 이곳을 스페인 구역(Spanish March)으로서 자신의 지배 영역에 편입시켰고 백작령으로 삼았다. 그러나 프랑크족의 종주권은 이름뿐이었고 그나마 보렐 백작(991 죽음)의 재위기간중 완전히 청산되었다.

1137년 바르셀로나의 백작 라몬 베렝게르 4세와 아라곤의 페트로닐라 여왕이 약혼함에 따라 카탈루냐와 아라곤은 한 통치권하에 통합되었다. 13, 14세기에 카탈루냐는 지중해 서부지역의 무역권을 독점했다. 1410년 바르셀로나 백작 가문에서 남자 혈통이 절멸될 때까지 카탈루냐의 세력이 아라곤을 압도했다. 1412년 이후 아라곤의 새 왕조 트라스타마라에 대한 카탈루냐의 불만이 점점 커지다가 후안 2세의 재위기간 동안 극도에 달해 1462~72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났다(아라곤 왕국). 1469년 후안 2세의 아들 페르난도가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결혼함으로써 스페인의 통일이 이루어진 후 카탈루냐의 중요성이 감소했다.

자치권과 자치정부를 계속 유지했지만 17세기에 이르러 카스티야와의 갈등이 커지고 스페인 왕권이 실추하면서 처음으로 카탈루냐 분리운동이 시작되었다. 19세기에 카를로스주의가 지지를 얻자 분리의 요구가 다시 일었으며 특히 1850년대에 카탈루냐어를 현용어(現用語)로 채택하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면서 분리운동도 활발해졌다. 카를로스주의자들의 패배로 교회가 자치운동을 지지하게 된 1876년 후 이 지방의 민족주의자들은 구체적인 세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13년에 이르러 미약하나마 어느 정도 자치권을 획득했으나 1925년 프리모 데 리베라가 이를 보장했던 법을 폐지했다. 프리모 데 리베라는 또한 카탈루냐의 분리를 요구하는 모든 시위를 진압했는데, 이러한 강경한 정책의 결과로 카탈루냐에 좌익연합정당인 에스케라 레푸블리카나가 생겼다. 이 연합당은 1931년의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2일 후 당 지도자가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중앙정부는 타협안을 모색하여 1932년 9월 카탈루냐의 자치법을 제정·공포했다. 이 지방은 스페인 공화정 시기와 스페인 내란(1936~39)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1939년 내란이 국가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자치의 꿈은 사라지고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정부는 카탈루냐 민족주의운동에 심한 탄압정책을 폈다.

프랑코가 사망한 후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갔으나 카탈루냐의 자치에 대한 요구는 약화되지 않았다. 이에 1977년 9월 제한된 자치권을 부여받았으며, 1979년 카탈루냐가 행정구역상 지방으로 설정됨과 동시에 완전한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1979년에 구성된 정부는 자치정부(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행정위원회)와 단원제 의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2010년,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카탈루냐 의회가 2005년에 개정한 카탈루냐 자치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를 기점으로 카탈루냐의 자치권 확보를 위한 독립 시위가 시작되었다. 2010년 7월 10일에는 카탈루냐 인구의 20%에 이르는 150만 명이 바르셀로나에 운집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2017년 10월 27일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독립국가임을 선포, 스페인 중앙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10월 30일 카탈루냐 의회가 해산을 발표했으며, 스페인 정부는 11월 8일 카탈루냐의 독립선언이 무효임을 선언했다.

자연환경

카탈루냐는 스페인 북동부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3각형 모양의 지방으로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아라곤, 남쪽으로는 발렌시아,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다. 피레네 산맥이 북쪽 프랑스와의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프레피레네 산맥과 에브로 강 유역을 사이에 두고 아라곤 지방과 구분된다.

에브로 강 유역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해안 구릉지대가 나오는데, 이 구릉지대를 사이에 두고 카탈루냐의 타라고나 주와 발렌시아의 카스테욘 주가 마주하고 있다. 타라고나·바르셀로나·헤로나 주는 지중해 해안을 끼고 있는데, 해안 주변에는 나지막한 카탈라니데 산맥이 뻗어 있는 해안 평야지대가 놓여 있다.

카탈라니데 산맥을 기준으로 해안지역 쪽에는 전통적으로 공업도시들이 발전했으며, 후배지 쪽에는 농촌 취락지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형성되었다. 이 산맥 북쪽에는 높은 고원이 있는데 레리다 주의 대부분 지역이 이 고원에 걸쳐 있다. 이 지방을 흐르는 주요강은 테르·요브레가트·에브로 강으로 모두 지중해로 흘러든다. 지중해성기후가 지방 전반에 걸쳐 나타나 여름은 덥고 건조한 반면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다.

인구와 도시

2017년 기준 카탈루냐의 인구는 745만 3,957명으로 스페인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주도 바르셀로나 시가 위치한 바르셀로나 주에는 카탈루냐 전체 인구의 75%가 밀집해 있다. 나머지 15%는 타라고나, 헤로나, 레리다 3개 주에 분포한다. 해안의 도시들이 이 지방의 발전을 주도해온 결과 배후지의 인구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지중해에 면한 지역의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는 바르셀로나 시와 그 위성도시들에 인구가 더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카탈루냐 지방 출신의 인물들 가운데에는 특히 뛰어난 예술가가 많다. 화가인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가 카탈루냐 출신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평생 카탈루냐어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휘자이자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와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림인 호세 카레라스도 카탈루냐 지방 출신이다.

산업

카탈루냐 지방의 총생산은 스페인 전체의 약 20%를 차지한다. 1950년대 이래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금속세공업·식품가공업·화학공업 등이 섬유업을 따라갈 만큼 꾸준히 발전해왔다. 바르셀로나 시에서는 섬유업, 제지업, 그래픽 아트, 화학공업, 금속세공업 등이 활발하다. 이밖에 스페인의 산업용 차량의 상당수를 생산해내는 공장이 있으며, 카탈루냐의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정유소들이 증가했다. 관광업·운송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부문이 발달했다.

전통적인 주요농산물은 감자·옥수수 및 수출용으로 생산하는 포도주·아몬드·올리브유 등이며, 최근에는 포도와 올리브 대신 채소·과일 등의 근교농업이 증가하고 있다. 카탈루냐 지방의 1/3 이상이 농지이나 이 지방 전체 경제에서 농업부문이 차지하는 몫은 1/10에 불과하다. 1283~1313년 이래 섬유업이 이 지방의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오랫동안 그 위치를 이어가고 있다.

유적과 관광

카탈루냐에는 해마다 2천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방문한다. 관광은 지역 총 생산의 12%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산업으로, 카탈루냐 지역 관광업 종사자는 약 40만 명에 이른다. 카탈루냐의 중심지인 바르셀로나에는 전설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많은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카탈루냐 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바르셀로나 항구로 연결되고, 남서쪽으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마라톤 코스였던 몬주익 언덕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가우디가 남긴 유명 건축인 카사밀라, 카사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으로 이어진다.

바르셀로나에는 특히 카탈루냐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박물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유년기, 청년기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가우디박물관에서는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호안 미로 미술관은 몬주익 공원에 있는데 호안 미로가 자신의 재산을 들여 설립했다. 바르셀로나의 재래시장 보케리아 시장은 바르셀로나 최대의 시장 거리이다. 카탈루냐 지역 동쪽에 있는 바르셀로네타 해변과 살바도르 달리가 여생을 보냈다는 브라바 해안 지역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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