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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는 조선시대인 1402년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1740년대 실학자인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는 최초로 축척이 표시된 9폭의 지도첩이었다. 1834년 김정호의 <청구도>는 4권으로 된 접는 책자이며, 1861년 <청구도>를 수정·보완하여 제작한 <대동여지도>는 22층의 접는 책자로 되어 있다.
경·위선의 좌표를 사용한 우리나라의 지도는 1899년 간행된 대한전도가 최초이다. 그후 한반도의 지도는 일본인에 의해 제작되었고, 1930년대 이후는 군사적 목적으로 지도제작 사업이 수행되었다. 1946~1954년까지 미군이 한반도 전역에 걸친 720도엽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했다. 한국인에 의한 지도제작은 1961년 국립건설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의 지도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고문헌 또는 벽화 등을 통해 당시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는 628년(영류왕 11)에 〈봉역도 封域圖〉라는 지도를 중국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에서도 〈신라구주군현총도 新羅九州郡縣總圖〉 등의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시대 1402년(태종 2)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이다. 이 지도는 투영법이나 경·위선을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마테오 리치가 17세기에 양의현람도(兩儀玄覽圖)라는 세계지도를 들여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사용되던 가장 훌륭한 지도였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잘 나타난 〈천하도 天下圖〉는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원으로 표현된 지도이다.
이 시대에 제작된 우리나라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이회의 〈팔도도 八道圖〉는 보존되어 있지는 않으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해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1463년 정척과 양성지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 는 세종·세조대의 지도발달 성과가 반영된 더 정확해진 우리나라 전도였다.
양성지가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八道總圖〉는 전국의 유명한 산천을 중심으로 그린 간략한 지도이다. 1740년대의 실학자인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 는 최초로 축척이 표시된 지도로서 100리를 1척(尺), 10리를 1촌(寸)의 측정단위로 하여 9폭의 지도첩으로 제작되었다.
제1첩은 총도이고, 그밖에는 주로 도별로 편집되어 있으며 산줄기·하천·해로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834년 김정호가 편찬한 〈청구도 靑邱圖〉는 4권으로 된 접는 책자인데, 1~29층에 걸쳐 두만강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나타내고 있다. 1861년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 는 김정호 자신이 직접 답사하여 수정·보완한 것으로 22층의 접는 책자로 만들어졌으며, 축척이 약 1:162,000이다.
산과 하천을 비롯하여 성지(城池)·진보(鎭堡)·역참(驛站)·창고·봉수 등 각종 내용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도로를 따라 10리 간격으로 점을 찍어 지도 읽기를 돕고 있다. 지도상에 축척이 표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제1층의 첫머리에 좌표와 매방십리(每方十理)라는 글이 표시되어 있어 실질적인 축척이 표시된 셈이며, 그 축척은 청구도와 같이 1:160,000 정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서양 지도학의 직접적인 영향 없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도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근대지도의 발달
경·위선의 좌표를 사용한 우리나라의 지도는 구한국정부에 측지사업(測地事業)을 관장하는 양지아문(量地衙門)이 설치되고 다음해인 1899년 학부 편집국에서 간행한 대한전도가 최초이나, 그후 측지사업이 부진하여 한반도의 지도는 일본인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1:2,000,000의 한국전도를 제작했고,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1895년부터 평판측량으로 1:50,000 지형도 54도엽을 완성했다. 1900년까지 1:200,000 지도를 제작했고, 1914~18년 722도엽에 이르는 1:50,000 전국 지형도를 완성했다. 그밖에도 주요도시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는 1:25,000, 1:10,000, 1:5,000 등의 지형도를 제작했다. 1930년대 이후는 군사적 목적으로 지도제작 사업이 수행되었고 측량 결과는 비밀로 다루어졌다.
1946년부터 미국군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도제작용 항공사진을 촬영하고 1:50,000 지형도를 수정·제작하기 시작해 1954년까지 전국에 걸친 720도엽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했다.
지도의 제작현황
한국인에 의한 지도제작은 1961년 국립건설연구소가 건설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국토종합개발계획과 더불어 국립건설연구소는 우선 미국군이 제작한 1:50,000 군사지도를 민수용으로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해 1963년까지 남한 전역에 걸쳐 350매의 지도를 완성했다. 1965년에는 한화협동항공사진측량사업(韓和協同航空寫眞測量事業)을 착수하고 항공사진측량법을 도입하여, 1974년까지 남한 전역에 대한 768도엽의 1:25,000 국토기본도를 우선 제작한 후 이를 축소·편집하여 1:50,000 지형도 239도엽도 동시에 완성했다.
1974년에는 국립건설연구소의 측지 및 지도제작 기능을 분리·독립하여 국립지리원으로 개편함과 동시에 대축척기본도인 1:5,000 지도의 제작을 착수하여 1991년말까지 1만 5,000도엽 중 1만 4,206도엽을 제작 완료했다. 새로운 정보를 수록하기 위한 지도 수정주기(修正週期)는 지형의 변화 정도에 따라 다른데, 국립지리원에서는 전국을 도시지역, 농촌지역, 기타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2, 5, 7년 주기로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립지리원에서는 1986년 이래 지도의 정확도 향상과 효율적인 제작 및 수정 체계를 확립하고, 국토지형 정보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전산화사업이 계획 진행중이다. 또한 1992년 컴퓨터 지도의 도식규정을 제정하고 지형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1992~96년에 1:25,000 국토기본도를 입력하고 2000년까지는 1:50,000 지형도 입력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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