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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에서 공예품의 출발은 정주문화(定住文化)의 성격을 반영하는 토기에서 비롯된다.
이 토기들은 카자흐스탄 지방을 포함한 남러시아의 실크 로드 지역과 시베리아 남부 등지에서 발굴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BC 3000년경의 제작품으로 추정되는 서시베리아(보스네세노프카) 출토의 〈여인문토기편 女人紋土器片〉을 들 수 있는데, 토기표면에 음각선으로 타원형 안면의 윤곽과 둥근 눈을 분명하게 나타냈고, 특히 코와 입은 부조 형태로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청동기시대의 공예는 무엇보다도 스키타이 금세공품으로 대표되고 있다(스키타이 미술). 스키타이는 BC 7세기경 흑해 연안에서 발흥하여 활동했던 유목민족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적 성격은 오히려 정주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의 이오니아 문화와 접촉하여 독자적인 양식의 금세공법을 개발했다. 솔로카 지방의 구르간 묘에서 출토된 금제 빗(에르미타슈 박물관)에 장식된 조각물들은 그리스와 스키타이 두 문화가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투장면을 주제로 한 인물표현의 사실성이 그리스적인 것이라고 하면, 거기에 부착된 사자상은 유목세계의 상징성을 나타낸 스키타이 취향의 표출임이 분명하다.
나아가 이러한 조형성의 바탕에서 스키타이의 '동물 미술'양식이 창안되었다. 이 양식에 표현된 동물형태에서 관절 마디의 과장은 주술효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카프카스 북서부의 켈레르메스 출토의 호형(虎形) 금판부조(BC 6세기초)를 들 수 있다. 그리하여 스키타이 공예품은 야만적 생동성과 문명적 호화성의 결합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동·서 투르키스탄에서 비교적 넓게 파급된 공예품은 각배(角杯) 형식에 근거한 리톤이다.
이것은 흑해 연안에서 발달하여 동쪽으로 확산되었다. 파르티아 왕국의 옛 도시였던 폴타바·니사 등지에서 출토된 리톤은 BC 3~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서 말머리, 서양기원의 괴수 '그리핀' 따위를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붙여 헬레니즘 영향의 공예전통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지방의 리톤이 금속·상아 등의 고급 재료를 이용하는 반면, 이보다 후인 5세기경의 고대 이란의 리톤은 주로 토기로 만든 것뿐이다.
그러나 형태는 매우 다양하여 양·염소·말 등의 동물뿐 아니라 어떤 것은 인물상을 부착한 것까지 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고대 이란의 공예에서 중요한 품목은 사산조 때 크게 유행했던 유리제품과 은제 그릇 종류이다. 유리는 로마 시대에 이르러 생활용기로 개발되어 동쪽으로 보급되었던 것인데, 특히 이란에서는 유리면을 각지게 한 '컷 글라스'와 독일 쾰른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점박이 잔 등이 유행했다(유리공예). 은제 접시는 이란 특유의 공예품으로서, 접시 바닥에는 말을 탄 제왕의 사냥장면(때로는 말이 달리는 것과는 반대방향으로 활을 쏘는 전통적인 방식의 '파르티안 슛' 문양을 묘사하기도 함)을 타출법(打出法)으로 표현한 것이 일반적이었다(은세공품). 또한 오이노코에 형의 주전자를 금속으로 만들고, 그 몸통에 전통적인 풍요의 여신 아나히타를 부조로 장식한 것이 사산 왕조 말기의 작품으로 출토되었다.
오이노코에 주전자는 당에 수입되어 당삼채(唐三彩)의 중국식 봉수형(鳳首形) 병으로 변모되기도 했다.
사산 왕조 시대의 공예품에 활용되었던 문양으로는 연주문과 쌍조문(雙鳥紋)이 유명하다. 이것들은 동전(東傳)되어 수대의 둔황 벽화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고, 또한 연주문만은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북제(北薺:550~577) 때의 〈성문형(城門形) 돌 장식〉(독일 쾰른 동양박물관)에도 나타나고 있어서 6세기 후반의 이 문양의 분포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 문양의 대유행은 8세기 당의 공예품 가운데 숫막새 기와에서 비롯된다. 둥근 기와 마구리에 연주문을 둘러 장식하고 그 내부에는 봉황이 서로 마주보는 문양을 넣고 있다. 이런 문양은 곧 한국에까지도 전파되어 그당시 신라인들에게 크게 애호되었다.
중앙 아시아 금속 장식의 특징적인 공예미는 북중국의 오르도스 지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흉노의 활약지역이었던 내몽골 지방 항친치(杭錦旗)의 전국시대 말기 고분에서 1972년에 출토된 일괄 유물 가운데 특히 금관식(金冠飾)은 흉노족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머리에 얹는 둥근 테에는 다양한 동물문양을 부조로 새기고, 그 가운데에 4마리의 양이 새겨진 반구형 받침을 딛고 서 있는 환조형의 독수리는 웅비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오르도스 지방의 금속공예에는 투각기법이 발달하여 많은 청동제 장신구에 응용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씨름하는 장면의 장신구(BC 3세기,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를 들 수 있다. 흉노 고분의 출토품 중에 비단·칠기·젓가락·동인(銅印) 등의 공예품들은 중국적인 영향의 산물이라 하겠으나, 〈사슴을 공격하는 괴수〉(노인울라, 쿠르간 6호분)의 카펫 디자인에서와 같은 '동물의 싸우는 장면'의 주제와 표현은 역동적인 유목민족 특유의 것이다.
서역남로의 호탄 지방은 기원전부터 옥을 동서에 수출하여 부를 축적했고, 일찍이 쿠샨 세력과 접촉하여 서방문화를 흡수했다. 지금 남아 있는 암포라 형태의 토기는 이러한 성격이 잘 반영되었다. 양쪽으로 귀를 단 손잡이 모양과 그릇 동부에 붙은 화첩 장식 등은 전형적인 서방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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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중앙 아시아의 공예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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