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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대 그리스에서는 불법적으로 권력을 잡거나 불법적인 권력을 계승받은 왕 또는 바실레우스를 가리킨다. 키프셀로스의 아들 페리안드로스는 코린트에서 약 40년 동안 강력한 군주로 군림해왔으나 결국에는 악한 참주의 전형이 되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BC 6세기 중엽 아테네에서 참주정치를 시행했으나 그의 아들 히피아스는 BC 510년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 1세에게 쫓겨났다. 페르시아인들은 BC 540년경 아나톨리아의 그리스 도시들을 정복한 이후 참주들에게 그 도시의 통치를 맡기는 정책을 취했다. 위대한 참주들은 예술의 후원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훌륭한 건축물을 지었다. 이들은 편협한 귀족정치에서 좀더 민주적인 체제로 이행하는 데 기여한 면도 했으나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불법적인 전제정치에 반감을 가졌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불법적으로 권력을 잡거나 불법적인 권력을 계승받은 왕이나 '바실레우스'(BC 7세기)를 가리켰다.
BC 10~9세기의 그리스 국가에서는 왕정이 일반적인 정치형태였다. 왕정을 대체하여 등장한 귀족정치는 BC 7세기에 이르러 대중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야심가들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탈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가장 유명한 참주정치 체제로는 BC 650년경 코린트의 키프셀로스와 시키온의 오르타고라스가 창시한 것들이 있었다. 아시아의 그리스령(領)에도 참주들이 있었으며 그중 밀레토스의 트라시불로스(BC 600경)가 가장 유명했다.
참주들은 종종 귀족계급 주변 출신이었다. 예컨대 키프셀로스의 어머니는 권세가인 바코스 가문(Bacchiads)의 일족에 속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참주들의 지지기반이 된 불만세력의 성격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였다. 시키온에서 BC 600년경~570년경에 통치했던 클레이스테네스는 오르타고라스 왕조의 가장 성공적인 참주였는데 그는 도리아인 침입자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非)도리아인과 사회 하층계급이 느끼는 반감을 대변하거나 이용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BC 7세기초에 중장비보병(→ 호플리테스) 방진부대(方陣部隊)가 생겨나면서 재산을 가진 농민층이 발달했으며, 이들은 방진부대에 복무하는 한편 귀족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옹호자로 참주들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참주들이 중장비보병 전술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재산이 있는 농민층이라면 혁명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인 세력일 것이기 때문에 중장비보병으로 복무하는 농민들의 계급의식이 발전했다고 볼 이유가 없다. 참주들은 특히 정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적들에 의해 점차 억압적인 통치자로 간주되었다. 키프셀로스의 아들 페리안드로스는 코린트에서 약 40년 동안 강력한 군주로 군림해왔으나 결국에는 악한 참주의 전형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코린트의 참주정치는 그가 죽은 직후 BC 580년대말에 붕괴되었다.
모든 시민들이 군인으로 복무하고 이론상으로 평등을 누리도록 법률을 시행한 스파르타에서는 참주정치가 생겨나지 않았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BC 6세기 중엽에 아테네에서 참주정치를 시행했으나 그의 아들 히피아스는 BC 510년에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 1세에게 쫓겨났다. 이 일이 '참주시대의 종말'을 고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참주정치가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BC 540년경 아나톨리아의 그리스 도시들을 정복한 이후 참주들에게 그 도시의 통치를 맡기는 정책을 취했다.
군사독재정치가 쉽게 뿌리내린 서방에서는 시라쿠사의 겔론이 BC 480년에 히메라에서 카르타고인들을 격파한 데 크게 힘입어 인기를 누렸다. 그의 동생이며 후계자로 시인 핀다로스의 후원자였던 히에론은 BC 474년에 쿠마이에서 에트루리아인을 상대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가장 강력한 참주였던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오스 1세는 처음에 카르타고인의 침공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통치권을 확립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계급적인 감정에 의지하여 권력을 잡은 참주들도 있었고 외국에서 지명받은 인물들도 있었다.
후자의 예로는 BC 3세기에 펠로폰네소스 지역에서 마케도니아 왕들의 지지를 얻어 군림한 참주들을 꼽을 수 있다. 참주정치 현상은 그리스가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동안 줄곧 나타났다. 위대한 참주들은 예술의 후원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훌륭한 건축물을 지었다. 이들은 종종 편협한 귀족정치에서 좀더 민주적인 체제로 이행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으나 그리스인들은 원칙적으로 그들의 불법적인 전제정치에 반감을 가졌다.
그래서 참주정치는 일찍부터 불명예로 낙인찍혔고, 아테네에서 히피아스의 동생 히파르코스를 살해한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기톤 같은 참주 살해자들이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플라톤의 정치 분류에 따르면, 현명한 왕이 최선이고 참주는 최악의 통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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