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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

다른 표기 언어 epistemology , 認識論

요약 인간의 인식의 기원·본질·한계 등을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
(epistemology는 '지식', '참된 앎'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epistēmē에서 유래).

"인간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슨 권리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탐구대상이 인간이라면 인식론은 그 탐구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앎이란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깥 세계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의 문명과 과학의 발달은 바로 인간의 세계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눈부신 과학의 성취로 때로 인간은 세계에 관한 진리를 손에 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지만, 인간은 또한 언제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이는 과학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자신의 인식 능력을 탐구해야 할 필요에 직면하게 된다. 곧 인식론은 지식에 관한 지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역할과 다른 분야와의 연관

우선 형이상학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경험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형이상학적 탐구의 많은 부분들은 초월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포기되었고, 철학적 분석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의 일반적 구조와 그 궁극적 실재의 문제를 다루는 형이상학은 그것에 대한 앎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론자들에게 주요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식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인식론 사이에 구분이 없었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심리학은 철학적 방법을 거부하고 경험과학으로서 자리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두 분야는 서로에게 유용한 부분들이 많다. 인식론자의 개념분석은 인지에 대한 심리학자의 탐구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인식론자는 숫자, 운동, 외부 대상들에 대한 어린아이들의 초기 인지형성이나 인간의 지각 경험, 기억, 무의식 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심리철학은 비교적 최근에 대략적으로나마 자신의 영역을 갖게 된 분야이다. 심리철학은 인식론의 문제보다는 심신, 자아, 정신활동의 다양한 측면(예를 들면 의지·욕구·자기기만·느낌 등)에 관한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심리철학은 인식론과 심리학에서의 연구 결과들에 익숙해 있어야 하며, 또 인식론자는 심리철학의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논리학은 인식론과는 언뜻 보기에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논리학자들은 논리적 법칙들의 궁극적 근거나 상호 배타적 논리체계들의 양립 가능성 문제 등에 직면해 인식론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식론자는 인간을 규정짓는 이성적·논리적 사유의 본성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인식론적 분석에 논리학은 유용한 도구가 되며, '인식논리'와 같은 영역에서는 인간의 인지현상을 논리적으로 형식화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인식론의 쟁점

개요

'안다'·'앎'·'지식'이란 말들의 모든 용법을 포괄하는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인식론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 그러함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 즉 명제적 지식에 관해서이다. 이러한 명제적 지식은 "……을 할 줄 안다", "(누구)를 안다", "왜 ……인지를 안다", "(장소)를 안다"와 같은 지식과 구분된다. 인식론자들이 명제적 지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제가 진리치를 갖기 때문이다.

감각적 지각 : 감각자료 이론

세계는 시공 속에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사물의 세계로 생각된다.

이 사물들은 상호작용하며 인간의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그러한 영향을 받아들이며 결국 그것으로써 물질적 외부세계를 의식하게 된다. 인간이 언제나 감관을 통해 사물을 본다면 인간이 참으로 보는 것은 실제의 사물이 아니라 감관에 주어져 있는 감각자료라는 생각으로 유도될 수 있다. 이렇게 감각자료로서의 대상과 실제 대상을 구분하는 경우 문제는 어떻게 둘이 연결되며, 감각자료를 보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실제 대상에 관한 지식을 이끌어내는가이다.

몇몇 감각자료 이론가들은 인과적 지각이론에 의존해 답하고자 한다. 즉 감각자료는 외부의 물리적 대상들에 의해 촉발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물리적 대상이 존재하는지 직접적으로 알 수 없으며, 감각자료가 물리적 대상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촉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갖는다. 이러한 난점에 대처하는 한 방법은 데이비드 흄과 존 스튜어트 밀, 20세기 중엽의 경험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현상론의 방법이다.

감각적 지각 : 현상론

현상론자들은 물리적 대상에 대해 의미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현상, 즉 나타나 보이는 것에 대한 확신만으로 족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갈색이고, 네모지며, 만지면 매끄럽고, 누르면 딱딱하다는 등의 경험으로 책상에 대해(책상이 이 모든 현상과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우선적으로 보이지 않고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어왔다. ① 현상론은 이미 물리적 대상을 전제로 하며, ② 대상이 나타나 보이는 방식이 무한할 수 있으므로 감각경험을 기술하는 환원문이 무한할 수 있으며, ③ 대상의 존재를 표시하는 문장은 정언적인 진술문인 데 반해 그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 환원문은 가언적인 문장이다.

그러나 어떤 정언문도 가언문으로 의미 손실 없이 환원될 수 없다. 전후 현상론의 발전과 그 실패는 이 문제에 대한 급격한 전환이 필요함을 느끼게 했다. 관념론적 해결방식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외부세계의 독립된 존재에 대한 인간의 확신과 어긋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어떤 인식론자는 잠정적으로 이 확신 자체에 대한 탐구로부터 문제를 접근했다.

보증의 차원

합리주의적 전통에서는 외부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이성 능력 속에서 구하려 했다.

이성은 절대적 진리, 필연적 진리를 직관적·직접적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단번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이러한 지적 직관 능력은 인간 지식에서 언제나 보이는 오류 가능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을 샀다. 오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합리주의적 이상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회의주의자는 확실한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개연적 믿음의 가능성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오류 불가능한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해서 확실한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 어떠한 경우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개연적 앎의 한 종류이다. 개연적 지식에는 개연성의 정도가 개입되며 이 개연성의 정도를 결정하는 증거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색인:증명). 증거는 감각적 지각이나 기억, 그러한 것들로부터의 추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들이다.

증거가 적합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이는 적합성을 결정할 기준의 문제 때문이다. 증거의 적합성 여부는 언제나 상대적으로만 결정될 수 있고, 상식적·합리적인 사람의 의견에 비추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적절한 증거를 확보한 믿음은 정당화된 믿음이며 확실한 지식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 진리에 대한 지식과는 구분된다.

정신행위

현대인식론이 전통인식론과 궤를 달리하게 되는 분기점은 언어적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이 관심은 인간의 사유가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것이다. 전통인식론자들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인지과정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현대인식론자들은 언어의 구조를 살핌으로써 인간의 세계에 대한 사유구조를, 그리고 나아가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를 밝혀보려 한다. 귀납은 연역과 함께 논리적 추론의 한 유형으로 구분된다.

개별적 경우들에 대한 관찰로부터 보편 명제로의 이행으로 설명되는 귀납은 개연적 결론만을 유도하는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주장된다. 그뿐만 아니라 귀납은 대략적 일반화나 잠정적 가설 설정을 해야 하는 일상사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찰된 경우(예를 들면 '모든 관찰된 백조는 희다')로부터 관찰되지 않은 경우(예를 들면 '모든 백조는 희다')로의 이행을 허용하는 귀납이 과연 정당한 논리적 추론의 방식일 수 있는가에 관한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합리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 능력이 다른 어떤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정보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이성은 존재·통일성·실체·원인 따위의 근본 개념들과 모순율(한 진술과 그것의 부정이 동시에 참일 수 없다는 원리)과 같은 원리에 관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수한 선천적 지식은 오류불가능한 것으로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문제는 오직 이성만이 알 수 있는 진리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논리학자들이 인간의 개념체계의 근거를 이루는 원리들을 재구성하거나 수정한다는 사실은 이성이 인간의 마음에 절대적 진리를 심어놓았다는 합리주의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합리주의적 방향

칸트 이전의 합리주의

고대 그리스의 합리주의는 플라톤의 형상이론에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 법칙과 영원한 구조, 질서를 이해하려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BC 6세기 번성)는 그것을 '수'(數)로 보려 했으며, 파르메니데스는 '부동(不動)의 일자(一者)', 아낙사고라스는 누스(nous:이성 혹은 지력)로 이해하려 했다. 형상(form, idea)에 관한 가장 두드러진 묘사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발견된다.

많은 아름다운 대상들을 보고 그에 대한 반성을 한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별을 갖게 되는데, 이 아름다움은 영원하고,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시간·장소·사람·사물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름다움의 형상과 더불어 선(善)과 정의의 형상들이 〈국가론〉에서 논의되고 있다. 형상론은 이후 인식론에 합리주의적 토대를 제공하며 존재론에는 영원한 불변의 실체를, 그리고 도덕에는 절대적 기준을 제공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합리주의를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형상개념을 공격했다. 그는 형상이 개별적 사물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들 속에 보편적 형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월적 형상에 관한 지식이 진리획득에 본질적이라는 이론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진리는 추론적인 앎의 과정에서 지적 직관으로 비약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적 직관은 이전에 주어진 것들로부터의 발전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자체가 초월적인 그 무엇이며 영원하고 오류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능동적 이성이며, 이것에 의해 인간은 모순율과 같은 근본 원리들을 알게 된다.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그리스 회의주의자들의 현존하는 단편적 글 속에서도 합리주의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제논·에피쿠로스·크리시포스·포세이도니우스·카르니아데스·에네시데무스의 글 속에 그 요소는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교부철학자들은 추론을 중시했으며 연역적 논의와 세밀한 분석에 치중했다. 11, 12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 De anima〉에서 능동적 이성과 수동적 이성에 관한 논의에 상당한 관심이 기울어졌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누스를 독립된 실체로 간주한 플로티누스 및 그 이후의 아라비아 철학자들의 견해를 거부하고 감각경험과 지성의 호혜적 관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지식이 이성적 능력을 소유한 근거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봄으로써 합리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르네 데카르트는 현대 합리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합리주의는 〈방법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1637)에서 제시된 방법과 명석판명한 지식에 관한 설명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신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구축하기 위해 이제껏 참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것을 의심에 붙이는 방법론적 회의를 제창한다.

그의 인식론 전체에서 근본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또다른 규칙은 명석판명한 관념을 지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것은 주의깊은 마음에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으로서 일종의 지적 직관과 같은 것이다. 이에 의해 마음은 절대적으로 확실한(오류불가능한) 진리를 획득하게 된다. 후에 데카르트는 진리에 대한 마지막 보장을 신에게서 구함으로써 명석판명한 지적 직관의 절대성과 궁극성에 제한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직관에 의해 드러난다고 함으로써 그의 논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된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스피노자 또한 수학의 방법과 같은 엄밀한 방법을 강조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명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 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1675 완성)의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참된 지식은 수학적 필연성을 지니는 것으로 새로운 결론은 단계마다 매번 논리적 필연성에 따라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지는 세계는 합리적·필연적인 하나의 체계이며, 그것은 유일한 것이어야 한다. 스피노자는 그것을 신 또는 실체(substance)라고 말한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처럼 라이프니츠도 수학적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는 무수히 많은 단자(monade)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자는 자신의 성질을 갖고 있는 실체라고 생각했다.

각각의 단자는 다 다르며 상호 연관이 없다('드나들 수 있는 창문이 없다'). 따라서 그것이 가진 지식은 선천적이며 내부에서 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영원하고 필연적 진리를 아는 단자들(즉 인간의 영혼)이 있는데 이는 반성적이고 관조적인 의식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이때의 지식은 명석 판명하며 이성적 진리의 형태를 갖게 된다.

칸트의 비판적 합리주의

비판철학을 정초한 18세기의 칸트는 합리주의자였지만 조금 달랐다.

그의 주저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은 합리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을 담고 있다. 칸트가 대륙의 세 합리주의자들과 달랐던 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될 수가 있다. ① 철학적 방법은 수학적 방법과는 다르다. ② 감각적 경험이 사물에 대한 현상적 지식을 제공한다. ③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지식은 가능하지 않으며, 감성적 조건에 제한을 받지 않는 순수이성의 활동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확장해주지 못한다.

즉 신의 존재 또는 비존재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언어는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에 속했고 그의 사유 또한 합리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대상이 우리의 경험에 주어지기 이전의 인식능력들의 선천적 형식과 원리들을 강조하고, 그것들이 지니는 필연성·보편성이 우리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토대짓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식능력의 형식이나 범주개념, 원리들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규정지으나 그들 자체는 결코 경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독단적 합리주의에서는 모든 선천적 지식은 개념적이고 분석적이라고 본 반면 칸트는 그것을 종합적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 특수한 종류의 확장적 지식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선천적·종합적 지식은 철학적 지식의 참된 유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선천적·종합적 지식은 인간의 대상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정하는 것으로서, 물자체의 차원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우리는 대상을 현상으로서 알 뿐 우리의 경험과 독립된 대상 그 자체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선험적 관념론의 주된 명제이다.

칸트 이후의 합리주의

절대적 관념론헤겔에 의해 최초로 명확한 형태로 제시되었다.

〈피히테와 셸링 철학 체계의 차이 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 der Philosophie〉(1801)는 그의 관념론의 근원을 밝혀주고 있다. 헤겔에 있어 근본적 실재는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은 그것의 한 현현이다. 절대정신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자기실현을 향해 나아간다. 변증법은 논변이나 사유의 방식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세계의 운동 또는 발전의 논리를 구성한다.

절대적 관념론은 19세기 중엽 독일의 대학들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러한 상황은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포이어바흐와 같이 헤겔 철학에 강력한 자연주의적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마르크스 철학의 기초를 다져놓기도 했다. 20세기초 영국에서는 브래들리, 미국에서는 로이스, 그리고 약간 늦게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에 의해 절대적 관념론이 꽃피었다.

이외에 비록 영국 관념론의 몰락을 가져오긴 했지만 G. E. 무어의 소박한 실재론을 합리주의 진영에 포함시킬 수 있고, 당시의 관념론이나 실재론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정초한 현상학의 후설이나, 미국의 블샤드도 합리주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와 중세의 경험주의

고대 그리스의 초기 철학자들의 관심은 자연세계의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의 기본단위는 무엇인지 알고자 했으며, 그것이 물이나 공기, 불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들의 탐구방법은 관찰과 관찰된 것에 대한 사변이었기 때문에 때로 이들은 경험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원자론을 처음 시도한 로이키포스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에 반하여 복수원자론을 내세웠으며, 실재를 이루는 입자들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고 주장했다. 복수원자론은 최고의 자연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지지한 이론이다.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다룬 가장 중요한 고대 철학 작품은 의심할 바 없이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이다.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감각이 곧 지식이다", "올바른 판단이 지식이다",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이 지식이다"라는 가정을 검토하면서 이들 모두를 부정하고 있다.

수학자 테아이테토스는 감각이 곧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관찰자에게 드러나는 그대로가 사물이라는 생각은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의 것이며 소크라테스도 이에 동정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감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감각적 지각 없이는 배움도 이해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연에 관하여 추론해낼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감각이 제공한다고 하는 지식은 단순한 감각과 인지적 파악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흰색 대상을 디아레스의 아들로 파악하는 것'과 같은 복합적인 지각을 가리킨다. 감각적 지각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감각적 지각이 합리적으로 논쟁할 수 있는 일반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일반화가 자연세계에 적용되는 한, 또한 언제나 감각 경험에 의해 시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경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세계에 관한 사유는 감각이 제공하는 증거에 준해서 참·거짓의 여부가 밝혀져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를 지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가장 중요한 경험주의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에 의해 전개되었다.

중세 경험주의 철학자

13세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때까지 그당시 철학의 유일한 목표는 합리적 논의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자연과학은 정체되었다.

알베르투스는 대상에 관한 지식 획득에서 감각적 관찰이 지니는 역할을 강조했으며, 그의 가르침은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어졌다. 아퀴나스는 때로 비판적이긴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 성향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연과학은 이들 도미니쿠스 계통의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비판세력이었던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한 프란키스쿠스 계통의 플라톤주의자들 덕분에 발전했다.

이들은 우선 수학자들이었고 자연과학의 발달은 수학을 감각적 관찰의 결과에 적용할 때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들 중 특히 영향력 있던 인물은 로저 베이컨이었다. 자연과학을 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14세기의 움직임은 형이상학 분야에서 이성의 적합성을 의심한 회의주의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지성에 의해 알려지는 보편적 개념이 지식의 참된 대상이라는 생각은 도전을 받게 되고, 참된 대상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둔스 스코투스가 명명한 구체적 '개별성'(thisness)이 무시할 수 없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오컴은 감각적 직관을 통한 개별적 존재에 관한 앎을 지식의 근본으로 간주했다.

근대와 현대의 경험주의

초기 선구자들

17세기말 프랜시스 베이컨은 후기 저서 〈신 오르가논 Novum Organum〉(1620)에서 새로운 과학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신 오르가논(Novum Organum)

ⓒ Francis Bacon/wikipedia | Public Domain

그것은 경험적 방법으로, 개별적 관찰에서 일반화로 나아가는 귀납법이다. 데카르트와 동시대인으로서 에피쿠로스 철학의 부활을 꾀한 가생디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는 "감각에 주어지지 않는 것은 지성에 주어지지 않는다", "감각에는 오류가 없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감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고전적 영국의 경험주의자들

〈인간 오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서두에서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은 것으로서 타고난 능력은 갖고 있지만 생득적 관념은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마음이라는 칠판 위에 감각을 통해서 관념들이 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념을 갖는 것이 곧 아는 것인가? 여기서 마음과 대상, 관념, 지각의 3가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로크의 시대에는 마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로 이해되었으며 물질적 실체와는 구별되어 쓰였다.

로크는 마음에 관해 당시의 일반적인 이해에 따랐다. 예를 들어 마음은 책상과 같은 대상을 직접 알지는 못하며 색깔이나 부드러움 따위의 관념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지각의 베일'을 통해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된다고 하는 로크의 표상이론이다. 즉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의해 주어지는 관념을 지각한다는 것이다.

로크의 경험론은 당대의 여러 비판자들 중 특히 버클리에 의해 난점들이 부각되었다.

버클리가 로크의 표상이론을 극복한 방법은 물질세계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 였다. 버클리는 관념이 물질세계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로지 관념뿐이며,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 세계 자체의 차원에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주의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지식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길이란 존재하는 것, 실재하는 것은 관념을 소유하는 정신뿐임을 주장했다.

관념들은 마음에 의해 지각됨으로써 존재한다. 즉 "존재한다는 것(esse)은 지각된다는 것(percipi)이다". 버클리는 존재는 주관적·개별적 정신 안의 관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관념을 창조해내는 어떤 보편적 정신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주관주의나 상대주의의 문제를 피하고 있다.

은 관념이 물리적 대상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버클리의 생각을 거부했다. 로크의 표상이론은 외부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 수는 없다는 회의주의적 사고를 표현하고 있는데, 흄이 로크의 이러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지식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감각적 인상(impression)으로서, 그것은 강렬함과 생생함으로 특징지어진다. 관념은 인상의 퇴색한 이미지로, 만일 우리가 지금 푸른색을 보고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인상이며, 후에 이 색을 기억할 경우 그때 푸른색은 관념이 된다.

인상과 관념은 각각 단순하거나 복합적일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감각 경험들은 궁극적으로 단순한 인상들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 있다. 흄에게 있어 실재하는 것은 감각된 것이며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들뿐이므로, 이 한계를 벗어나는 것에 있어서도 지식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단순한 감각 인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알 수는 없게 된다. 이렇게 확실한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합리주의자들이 대체로 그에 대한 확실한 앎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물의 지속적 존재(또는 실체성), 인과성, 자아의 존재가 그러한 것들이다.

경험주의에 대한 평가와 현대적 경향들

18세기의 평가에 의하면 경험주의자들에 대한 보다 풍부한 고찰은 토머스 리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리드는 경험주의자들이 감각(sensation)과 지각(perception)을 구분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면서, 더구나 버클리와 흄은 상식과 전혀 걸맞지 않는 입장을 초래시킨다고 공격했다. 로크·버클리·흄에 있어서의 감각에 대한 강조는 도덕감 이론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공리주의로 이어지는 18세기 윤리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의 감각주의자인 콩디야크의 영향은 지대했다.

그는 인간의 모든 경험이 감각에 기초함을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유물론자인 홉스가 이미 한 세기나 일찍 모든 의식은 감각에 근거하며 또한 감각은 물질적 작용임을 논했다. 18세기 의사였던 데이비드 하틀리와 산소 발견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여러 유물론자들은 콩디야크의 감각주의를 지지했고, 그들의 주장은 사실상 생리학이나 심리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감각주의와 함께 19세기 실증주의 또한 경험주의의 한 분파였다. 실증주의 학파의 창시자 콩트는 〈실증 철학 강의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1830~42)에서 실증주의의 원리들을 정초했다.

그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주목하여 새로운 과학인 사회학에 자연과학의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밀이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수용했다. 독일어권에서는 19세기말 실증주의 학파가 생겨났는데 이들은 이전의 실증주의의 단순성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이 학파에는 '실재에 관한 (유물론적) 철학'의 저자 칼 뒤링과 '경험비판론'의 창시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가 있었으나 가장 두드러졌던 사람은 빈대학의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였다.

20세기초 순수한 논리적 기초를 중시하는 새로운 실증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은 수리논리의 선구자인 프레게·러셀·화이트헤드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들 중에는 슐리크·카르나프·바이스만·노이라스 등이 있다. 이들은 모든 의미있는 언명은 경험에 의해 검증 또는 반증되거나 아니면 논리적 명제라고 함으로써, 형이상학이나 신학적 명제들을 의미있는 언명의 영역 밖으로 몰아냈다.

개념적 사유

개념

인식론에서 합리주의적 입장과 경험주의적 입장은 그 강조점이 다르긴 하나, 사유작용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색인:사고). 사유는 이성도 아니고 감각 경험도 아닌 것으로서, 전체 인지 경험의 부분을 이루고 있다. 앎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앎을 확장시키기도 하는 사유는 개념을 매개로 하여 진행된다.

이때 개념은 경험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인상이나 관념과는 구분되어야 하며, 또 사유의 대상으로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 개념은 단순한 감각이나 기억보다 차원 높은 정신활동의 단계에 들어오는 것으로서, 언어적인 것을 포함하는 지성적인 그 무엇으로 여겨진다. 개념에 관한 한 가지 입장은 개념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내적인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로크는 사유의 대상인 개념(로크에게는 '일반관념')은 이름(일반단어)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개념을 정신적 대상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물질적 존재들의 세계 이외에, 심리적 사건들의 세계와 또 정신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개념들의 세계가 있게 된다. 또다른 입장은 개념을 실체가 아닌 능력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추상적 관념을 마음속에 잠재된 한 성향(disposition)이나 경향(propensity)으로 보았던 흄에게서 유래하는 이 견해에 따르면 개념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성향 혹은 능력을 갖는 것이 된다.

개념이 능력이라는 입장은 그것이 실체라는 입장보다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성향은 직접 탐구될 수가 없고 오직 성향되어진 것의 결과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모호함을 피할 수 없다. 또 정신은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만일 개념이 정신적 능력이라면 어떻게 정신이 스스로 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문제될 것이다.

언어

인식론자들은 언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그들은 사유 속에서의 언어 사용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들은 주로 논리적 사유에 관심을 가졌고 언어를 논리적 법칙에 따르는 순전히 논리적인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모든 사유 또는 개념 활동이 언어적인 것은 아니다. 사유 안에 사용되는 도구로써 언어가 어떻게 사유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언어와 사유를 명확하게 분리해낼 수도 없다. 인간이 보다 반성적으로 되어갈수록 사유의 도구로써 언어 사용이 그 사유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마침내 사유와 언어 사이의 구분 자체가 힘들어진다.

사유는 여러 언어적 수단에 의해 수행될 수 있지만, 그런 개념적 사유가 과연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지는 인식론의 문제로서 남아 있다. 이 문제는 인식론적 문제뿐만 아니라 보편자의 문제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포함하므로 언어에 관한 연구만으로는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편자

일반명사로 표현되는 보편자의 존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보편자 이론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형상론 혹은 이데아론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컨대 아름다운 사물들은 아름다움 자체와 구분되며 오직 아름다움(보편자)을 알 때에야 비로소 실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독립된 존재를 갖는다는 것을 비판하고, 보편자를 사물의 일반적 성질(예컨대 붉음이나 단단함 같은) 속에 두었다.

보편자 논쟁은 3세기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인 폴피리, 5세기초 로마의 보이티우스를 거쳐 11, 12세기에 뜨겁게 달아올랐고, 13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 많이 받아들여졌다. 14세기 들어 보편자는 사유 혹은 개념 작용 속에 추상으로, 심지어는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는 견해들이 등장했다. 이를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유명론("보편자는 단어 혹은 단어들의 집합일 뿐이다")보다는 개념론("보편자는 개념이다")에 가깝다.

근대에 이르러 경험주의자들은 보편자를 경험에서 추상개념으로 간주했고 합리주의자들은 어떤 보편자들은 선험적으로(a priori) 알려진다고 주장했다.

현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실재론과 개념론이 많이 받아들여졌지만, 실증주의자들은 유명론을 제창했다. 한편 관념론자들과 수리논리주의 학파의 일원들은 플라톤적 실재론을 내세웠다. 인식론에서 보편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① 일반명사가 사유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 ② 속성과 그것이 속하는 사물 사이의 연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규명해줄 속성에 관한 탐구, ③ 속성들의 동일성 혹은 유사성에 대한 설명, ④ 개념 활동 안에 내재하는 성향적 요인들에 대한 규정, ⑤ '개념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필요로 한다.

보편자의 존재를 지지하는 일은 실재 존재로나 분류 원리로나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인식론자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렇다면 인간 사유에 존재론적 적합성을 확립하는 이론에 대한 필연적인 근거를 그러한 보편자 이론이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

이상의 논의는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제한적이고 개략적으로 인식론을 살펴본 것인데 여기서 다룬 것 외에도 도덕적 의식이나 미적 가치 평가에 대한 논의 등에서도 인식론적 문제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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