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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 철학을 성서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로 생각했다.
또한 플라톤의 합리적 사변이 확보했던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대체로 비교적 온건하고 인도적인 내세관을 취했다. 그들은 세계 속의 신의 현존(내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초월성을 강조했으며,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을 가지고 신이 창조한 물질 세계의 선함을 역설하면서도 정신적인 것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교부철학의 플라톤주의
2세기 중엽부터 그리스 철학의 지식을 가졌던 그리스도교도들은 자신의 지적 만족과 교육받은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플라톤 철학(특히 중기 플라톤주의)의 용어로 신앙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최초의 교부는 그리스 다신교를 부정하기 위해 플라톤의 종교철학을 수용한 유스티누스 마르티르였다. 오리게네스(185경~254)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그리스도교 신앙과 중기 플라톤주의를 결합했다. 이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철학적 신학이었다.
다른 한편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아 위(僞)디오니시오스의 저술들이 6세기초에 출간되었다. 우주의 위계질서에 관한 그의 체계는 이후의 그리스도교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대의 마지막 철인치자였던 보이티우스(470경~524)는 〈철학의 위안 Consolation of Philosophy〉 속에서 플라톤의 일신론과 도덕론을 재현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번역하여 중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대와 중세의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 철학을 성서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로 생각했다.
또한 플라톤의 합리적 사변이 확보했던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대체로 비교적 온건하고 인도적인 내세관을 취했다. 그들은 세계 속의 신의 현존(내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초월성을 강조했으며,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을 가지고 신이 창조한 물질 세계의 선함을 역설하면서도 정신적인 것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플라톤주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의 아류가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플로티노스와 포르피리오스의 저술들을 통해 신플라톤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의 인간학은 육체에 대한 영혼의 우위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확고하게 플라톤주의적이다. 그러나 인간 보다 더 높은 정신적 존재들도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신플라톤주의자들과는 달랐다. 인간의 외부에 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이 신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감각 경험으로부터 추론한 결과가 아니라, 신이 인간의 마음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의 인식론은 신플라톤주의적이었다(조명설). 신은 지성과 존재 위에 있는 일자가 아니라 최상의 실재이며, 신의 창조적 마음 속에 모든 창조의 규제 원리들로서의 플라톤적 형상들이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의 신학은 중기 플라톤주의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삼위일체설은 신플라톤주의적이다.
중세 플라톤주의
카롤링거 왕조 시대(8세기 후반~9세기)에 접어들면서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매우 복잡한 국면을 띠게 된다.
4세기의 칼키디우스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대해 주석을 단 뒤부터 그리스도교도의 눈으로 본 플라톤의 일신론이 중세에 계속 영향을 끼쳤다. 신의 창조에 관한 긍정적 견해와 인간의 의무와 운명에 관한 고결하면서도 인간적인 견해를 보여주는 이 일신론은 특히 12세기 샤르트르 학파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중세를 걸쳐 지속적이고 깊은 영향을 준 플라톤주의자는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중세 사상가는 신의 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의 창시자인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였다.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는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위디오니시오스, 그리고 고백자 막시무스에 의해 발전된 그리스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의 전통을 서유럽에 전파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의 견해에 반감을 가졌지만, 그의 사상은 위디오니시오스로부터 파생된 서유럽의 신비주의와 13세기 스콜라 철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대립시키는 것만큼 피상적이고 그릇된 일은 없다. 6세기 이후의 동로마 제국의 신학자들은 13세기 서유럽의 스콜라 철학자들 못지않게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였으며,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스콜라 철학자들도 아우구스티누스, 보이티우스, 그리고 위디오니시오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다른 한편, 이슬람 제국이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한 뒤부터 플라톤, 신플라톤주의자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에 대한 방대한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슬람 신학과 철학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이슬람 철학). 중세 서양에 깊은 영향을 준 이슬람 철학자들로는, 플라톤주의에 보다 가까운 아비켄나(이븐 시나 : 980~1037)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더 가까운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 : 1126~9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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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대와 중세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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