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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초기 원시 인류 가운데 하나. 호모 에렉투스의 주요발상지는 아프리카이며, 호모 하빌리스에서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수십 만 년 동안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서만 살았으나, 점차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1890년 자바에서 최초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중국의 베이징 근처 저우커우뎬에 있는 동굴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도 증거가 확인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다른 인류에 비해 뇌용적이 작으며, 얼굴뼈는 무겁고 아랫부분이 튀어나와 있다. 치아는 대체로 호모 사피엔스의 것보다 큰 편이다. 대퇴골의 구조가 현대인의 것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보아 직립자세를 취했던 것이 분명하다. 호모 에렉투스는 신체적 능력과 도구 면에서 우수했기 때문에 사냥을 비롯하여 식량을 획득하는 기술이 뛰어났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이전인 중기 플라이스토세까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요
일반적으로 최초의 인류로 간주되는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가 주요발상지이며, 호모 하빌리스에서 진화했음이 거의 분명하다.
호모 에렉투스는 수십 만 년 동안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서만 살았으나, 점차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들이 발견되는 유적지들을 조사하면 이러한 역사를 추론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동물의 뼈와 석기들이 발견되는 장소를 통해 이들이 지구상에 살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이전인 중기 플라이스토세(약 30만 년 전)까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석상의 증거
1890년에 자바(지금의 인도네시아에 있음)에서 발견된 화석이 처음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었다.
1891년에는 솔로 강 유역의 트리닐에서 보존이 잘 된 두개골이 발굴되었다. 튀어나온 눈썹뼈와 쑥 들어간 이마, 둥근 후두부 등으로 미루어 처음에 이 화석은 해부학적으로 인간의 두개골과 민꼬리원숭이의 두개골의 중간 형태라고 생각되었다. 몇 년 후에 이 화석이 발견된 곳 근처에서 현대인의 것 같은 아주 완전한 형태의 넓적다리뼈가 발견되었다. 이 뼈는 마치 현생인류의 넓적다리뼈처럼 길고 곧았기 때문에 그 주인은 분명히 직립자세로 보행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이 발견물에는 독일의 한 동물학자가 만들어낸 피테칸트로푸스라는 이름을 이용해 '똑바로 선 민꼬리원숭이-인간'이라는 의미의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트리닐의 유적지에서는 약간의 팔다리뼈가 더 나왔을 뿐이며, 몇 십 년이 지난 뒤에야 호모 에렉투스의 존재의 증거가 될 만한 충분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이 화석들을 모두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하며, 피테칸트로푸스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주로 아시아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자바의 몇몇 지역에서 비슷한 유형의 화석들이 나왔고, 그뒤에는 중국의 베이징[北京] 근처 저우커우뎬[周口店]에 있는 동굴들을 중심으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베이징 원인(原人)으로 명명된 이 화석들은 중일전쟁 기간인 1941년에 모두 분실되었으나, 같은 지역에서 계속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아시아 대륙에서만 발견되자 학자들 사이에서 호모 에렉투스는 초기 인류의 아시아적인 형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뒤 아프리카에서도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고 유럽도 이들의 활동무대였을 것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자 이러한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1954~55년에 알제리의 마스카라 동쪽에서 베이징 원인과 가장 유사한 화석이 발견되었다(테르니피네 화석).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발견된 다른 화석들은 신체구조상으로는 다소 진화되어 있었으나,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분명했다.
1971년에는 모로코의 살레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 화석은 얼굴과 이마의 뼈가 손상되기는 했지만 매우 중요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두개골(OH 9로 명명됨)의 일부가 발견되면서 아프리카에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음이 확실해졌다. 이외에도 두개골·턱뼈·팔다리뼈가 더 발견되었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나온 화석들은 주로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동아프리카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지식의 공백은 투르카나 호 동쪽 기슭에 있는 쿠비포라의 유적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었다.
이곳의 일괄 유물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과 호모 하빌리스로 추정되는 화석이 포함되어 있다. 호모 에렉투스 화석 가운데 꽤 보존상태가 좋은 KNM-ER 3733 두개골이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 화석에 속한다. 쿠비포라의 또다른 중요한 발굴화석은 비록 질병에 감염된 것이기는 하지만 거의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ER 1808 해골이다. 이외에도 투르카나 호 북서쪽 기슭에서 발견된 거의 완전한 형태의 해골이 또 하나 있는데(KNM-WT 15000으로 명명됨), 이것은 청년기 남자의 뼈 였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유럽에서 발굴된 초기 인류의 화석에 대해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1907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부근에 있는 마우어의 모래 채취장에서 하악골이 발견되었다. 이 화석에는 수년 간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졌지만 턱뼈와 연결된 두개골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화석과의 정확한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는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하이델베르크인 또는 마우어인)되며, 베이징 원인의 연대와 비슷하나 그 구조적인 특성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의 턱뼈 화석보다 더 현대적이다.
196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서쪽에 있는 베르테슈죌뢰슈의 한 채석장에서 어린이와 어른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베르테슈죌뢰슈 유적). 어린이의 화석에는 젖니가 있었는데, 2명의 화석 모두 베이징 원인과의 관련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중 어른의 화석은 주로 큰 두개골의 후두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 2개의 화석은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보여주는 반면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특징도 보여준다.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화석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중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북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다른 화석들에 대해서도 이것이 호모 에렉투스의 후기형태인지, 아니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이행형태인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지 못했다. 베이징 원인과 동시대의 화석인 마우어의 턱뼈와, 베르테슈죌뢰슈의 치아와 후두부, 이보다 뒤에 프랑스 남부의 아라고 동굴에서 발견된 일부 유골 등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보다는 호모 사피엔스와 그 구조가 비슷하다. 유럽에서 발견된 더 최근(즉 중기 플라이스토세 말)의 몇몇 화석도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빌칭슬레벤에서 발견된 두개골과 큰어금니 화석은 호모 에렉투스와 닮은 점이 있지만, 두개골 화석은 1960년 그리스 페트랄로나 근처에서 발견된 거의 완벽한 사람과 생물의 화석과 유사하다. 정밀조사를 통해 페트랄로나의 화석은 호모 사피엔스와 몇몇 특질을 공유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중기 플라이스토세 말 유럽에 살던 집단의 분류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처럼 유럽에 호모 에렉투스가 확실히 존재했다고 확신할 만한 증거가 아직 없다고 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화석의 연대
물리학과 같은 분야가 발달하면서 화석 연대 측정이 더욱 정확해졌다.
이 덕분에 호모 에렉투스가 대략 160만~250만 년 전인 플라이스토세의 긴 간빙기 동안 번성했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릴 수 있었다. 쿠비포라에서 발견된 화석은 약 160만 년 전의 것이다.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화석의 일부도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OH 9는 대략 120만 년 전의 것이다.
이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나머지 화석들은 유감스럽게도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방법으로 연대를 비교측정한 결과 자바의 상기란 및 모조케르토의 표본(특히 푸탕간 하상의 퇴적층에서 나온 것)과 중국의 란톈 원인[藍田猿人] 중 하나는 호모 에렉투스의 초기 형태임이 밝혀졌다. 반면에 알제리의 테르니피네, 중국의 저우커우뎬, 자바의 트리닐에서 발견된 화석 등은 가장 최근의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다. 160만 년 이전의 화석은 대부분 호모 하빌리스로 분류된다. 반면에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 가운데 일부를 보여주는 후기의 화석들은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로 이행해가는 과정의 화석 또는 호모 사피엔스로 간주된다.
따라서 어떤 인구집단이 호모 에렉투스에 속하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문제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즉 호모 에렉투스와 다른 화석인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이 이행기 동안에 호모 에렉투스의 조상은 진화과정 속에서 어느덧 서서히 호모 에렉투스로 발전해왔으며, 호모 에렉투스 역시 현생인류가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신체구조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평균용적 1,000㎤ 이하)은 다른 인류의 두개골과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현생 호모 사피엔스의 뇌용적은 1,450㎤이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의 뇌용적의 상부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기대되는 뇌용적의 하부와 중첩된다. 또한 작은 뇌용적 이외에도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에는 몇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소수의 화석 표본에만 보존되어 있는 얼굴의 뼈는 무거우며, 아랫부분이 튀어나와 있다. 코벽을 이루는 뼈는 매우 얇고 이전의 사람속 종들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것보다 더 뒤집어져 있으며, 코의 옆모습이 현대인의 코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개골은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위의 둥근 부분은 두꺼운 편이다. 안와(眼窩) 위로는 눈썹궁이 많이 튀어나와 있다(안와상융선). 이마는 납작하며, 눈썹궁 바로 뒤의 두개골의 앞부분은 옆으로 수축되어 있다. 이마뼈에서부터 중선(中線)을 따라 용골돌기가 뻗어 있으며, 유양돌기 부분은 매우 융기되어 있다.
넓은 두개골은 둥근 모양을 이루며, 후두부의 표면을 상하로 나누는 두꺼운 안와가 있다. 후두부 바로 뒤의 목 근육 부분은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크다. 이외에도 호모 에렉투스는 특히 턱 부분과 같은 얼굴 아랫부분이 특징적이다. 턱 자체는 매우 강인하지만 뺨의 발달은 미약하다. 치아는 대체로 호모 사피엔스의 것보다 큰 편이다. 호모 에렉투스 화석으로는 대퇴골 화석이 가장 많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대퇴골의 구조가 현대인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이들은 직립자세를 취했던 것이 분명하다. 뼈의 구성은 매우 단단하며 이것은 다른 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실은 호모 에렉투스의 생활이 신체적인 강인함을 요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지뼈를 통해서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특히 대퇴골의 크기를 통해 이들의 신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리오코토메에서 발견된 KNM-WT 15000 화석을 정밀조사한 결과 이 뼈의 주인은 아직 완전히 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 성인남자의 키에 근접하는 약 160㎝의 신장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행동상의 추론
중국 저우커우뎬의 동굴에서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이러한 사실이 호모 에렉투스가 영구적으로 동굴에서 생활했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인간행동, 문화적 진화). 그러나 이외에도 화석과 연관된 돌과 뼈(호모 에렉투스가 모아둔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그슬린 동물의 뼈, 씨앗들, 원시적인 화로와 숯 등)를 통해서 호모 에렉투스가 상당 기간 동안 이 지역의 동굴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테르니피네·올두바이 협곡과 함께 란톈·트리닐·상기란·모조케르토에서는 개방된 지역이나 개울의 자갈밭과 진흙, 강의 사암층, 역암층과 화산암, 호수의 바닥 등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호모 에렉투스가 하천의 기슭에 있는 개방된 야영지나 호수 주변에서 살았음을 말해준다.
베르테슈죌뢰슈에서 발견된 화석은 호모 에렉투스가 도나우 강 지류의 샘 근처 광물질이 포함된 진흙 땅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방된 지역에서는 수많은 석기와 가공을 거친 듯한 돌조각, 부분적으로 불에 탄 동물의 뼛조각(아마도 이 동물들은 식량으로 사냥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원시적인 화로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저우커우뎬과 베르테슈죌뢰슈에서 발견된 화석은 중기 플라이스토세에 이미 인간이 불을 능숙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저우커우뎬의 동굴(호모 에렉투스의 뼈가 들어 있던 곳) 옆에서는 이 동굴 자체보다 약간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석기제작장소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이 지역에서는 인류가 동굴 속에서 살기 시작하기 전부터 불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류가 동굴에서 생활하는 데 성공하려면 불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이 그 선행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 동굴 거주만은 아닌 것 같다.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은 더 추운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요소가 습기차고 때로는 아직도 빙하로 덮여 있는 선사시대의 유럽으로 인류가 이동하는 것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또 인류가 음식물을 불에 익혀 먹게 되면서 이빨이 하는 수고가 줄게 되었다. 즉 이는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을 때는 날것을 먹을 때보다 음식을 자르고, 찢고, 잘게 부수는 데 힘이 덜 들게 되므로 큰 이빨의 이점이 적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크고 튼튼한 이빨을 가진 사람이 생존하는 데 유리한 진화상의 선택적 압력이 줄어들게 되면서 이빨이 작아지게 되었는데,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에렉투스 간의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이빨의 크기이다.
호모 에렉투스 문화의 다른 특징은 이들의 뼈와 함께 발견된 도구이다. 쪼개진 자갈로 만들어진 역기(礫器)가 저우커우뎬과 베르테슈죌뢰슈의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찍개공작). 두 지역 모두 이른바 역기문화가 발달했던 곳이다.
아프리카 북서부의 테르니피네에서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석기와 연관된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도구들은 초기 아슐리안 공작(工作)을 대표하는 양면 주먹도끼와 스크레이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유럽과 아프리카 각지에서 발견되는 위대한 아슐리안 주먹도끼 문화복합체의 일부이다. 이러한 사실은 호모 에렉투스가 사냥을 했음을 말해준다. 호모 에렉투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보다 신체적(또한 지적) 능력과 도구 면에서 훨씬 더 우수했기 때문에 사냥을 비롯하여 식량을 획득하는 기술이 더 뛰어났을 것이다.
이들은 몸집이 큰 동물의 고기 이외에도 뱀, 새와 그 알, 메뚜기, 전갈, 지네, 거북이, 쥐를 비롯한 설치류, 고슴도치, 물고기, 갑각류 등을 식량으로 삼았다.
어린이들도 성인들과 함께 사냥에 참여했다. 두꺼운 잎과 과일·견과류·뿌리 등의 식물도 호모 에렉투스의 식량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가 잡식성(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와 마찬가지임)이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약간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는 진화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큰 유연성과 적응성·생존력을 가졌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문화에 어떤 의례적인 요소가 있었는지의 여부도 관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가 시체를 매장했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 완전한 형태의 매장·무덤·매장물·오커(호모 에렉투스 이후의 인류가 뼈를 색칠하는 데 사용했던 물질) 등이 발견된 적은 없다.
진화론적 의미
일부 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조상일 것이라는 견해에 반대한다.
L. S. B. 리키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은 더 발전된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그 연대가 중복되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이 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리키의 주장은 주로 단층분석과 연대학에 기초를 둔 것이었지만 부분적으로는 화석에서 발견되는 해부학적인 특징에 대한 분석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결과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기 호모 에렉투스와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중첩에 대한 단층론적인 논의는 더이상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며, 형태학적인 차이에 근거하여 중기 및 후기 플라이스토세에 살던 사람속 개체군들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가설을 거부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대신에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인류의 크기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간의 경과에 따른 신체크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합리적인 조상-후손의 순서를 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도 이 배열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호모 에렉투스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초기 호모 사피엔스형으로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이것이 인류의 진화에 대한 연구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차지하며, 구세계 전역에서 발견된 인류의 화석이 자세히 조사된 뒤에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이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인구집단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뒤에 일어난 특정 지역의 빠른 진화라는 시나리오에 반대되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의 점진적인 변화라는 모델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히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존에 고생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1가지 종은 같은 계통을 유지하면서 다음 종으로 점진적인 진화를 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연속적인 진화과정에 있는 종은 연대학적 종으로 불린다. 객관적인 해부학적·기능적 기준에 의해 연대학적 종 사이의 경계를 정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경계를 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한 순간에 추측으로 '선을 긋는' 일이 남는다.
따라서 고생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의 마지막 생존자와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 간에는 최종 분석 단계에서 어느 정도 임의로 그 경계를 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관계에 대한 점진주의적인 견해는 화석 기록에 대한 1가지 해석이 될 수 있을 뿐 다른 식의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계통 점진진화).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종이란 한 계통 안에서 임의로 규정된 단편이 아니라 매우 영속적인 존재이다.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종은 오랜 기간 동안 진화적인 정체(즉 형태학적인 변화가 아주 적거나 거의 없는 것)를 보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 종이 진화하는 과정중에는 지질학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인 수준에서보다는 제한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신속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관계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불확실하다. 즉 호모 사피엔스가 더 원시적인 형태의 호모 에렉투스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했는지, 또는 중기 홍적세말에 신속하고 짧은 진화가 이루어졌는지의 여부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계단식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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