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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랄로피테쿠스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인원, men-ape, 근인, near-men

요약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 800만 년 전의 마이오세 후기부터 160만 년 전의 홍적세 초기에 걸쳐 출현한 인류의 화석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이후의 화석인류를 서로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똑바로 서 있었다는 점에서 해부학적으로 민꼬리원숭이와는 구별된다. 이들의 뇌는 민꼬리원숭이의 뇌와 비슷한 정도로 작았지만 이빨의 생김새는 인간과 유사했다. 인류학적으로는 몸집이 작고 연약한 화석군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몇 개의 아종으로, 좀더 무겁고 체격이 큰 화석군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로 분류한다. 이밖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이티오피쿠스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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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쪽의 민꼬리원숭이'라는 뜻)는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믿어지는 화석 가운데 최초로 발견된 여러 화석에 붙여진 이름이다.

192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타웅에 있는 동굴에서 어린이의 두개골이 발견된 이래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 각지에서 이와 유사한 인류의 화석이 차례로 발견되었다(→ 타웅 두개골, 화석의 기록).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마이오세말(약 530만 년 전)과 홍적세초(약 16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화석을 가리킨다.

약 8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화석도 발견되었지만 이것들은 민꼬리원숭이의 화석으로 생각된다. 일부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인간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단일한 과정 내의 일시적인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다양한 화석간의 적응상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인류의 진화과정에는 2~3개의 서로 다른 계통이 병행하여 발생했으며, 그중 하나의 계통만이 나중에 사람속(―屬 Homo)의 종들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남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남아프리카의 트란스발에 있는 스테르크폰테인크롬드라이의 동굴에서 1936, 1938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와르트크란스와 마카판스가트 등 다른 2개의 동굴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1979년 발굴작업이 재개되어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만 총 1,000여 개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동굴 유적지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일반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로 분류된다.

일부 학자들은 스와르트크란스의 동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크라시덴스로 분류하지만 이는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반면 많은 학자들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라는 명칭 대신 1938년 처음 만들어진 파란트로푸스('인간에 가까운'이라는 뜻)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유적지인 마카판스가트에서 발견된 화석은 약 250만~325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스테르크폰테인의 화석은 약 250만~300만 년 전의 것으로 보인다. 크롬드라이에서 발견된 화석은 이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반적으로는 더 최근의 것으로 생각된다.

동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동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1959년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였다.

올두바이 호미니드(OH) 5로 명명된 이 화석은 보존상태가 좋은 두개골로, 스와르트크란스와 크롬드라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와 닮은 점이 많았다. 1964년에 탄자니아의 나트론 호 부근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거대한 턱뼈 화석이 발견되면서 동아프리카에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았음이 확인되었다.

그뒤 에티오피아의 오모 강 유역과 케냐의 투르카나 호(루돌프 호) 북동쪽과 북서쪽 기슭의 유적지에서 발굴작업이 진행되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관한 연구가 진일보되었다(쿠비포라 유해). 이 두 유적지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화석이 모두 발견되었다.

이후 발견된 동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화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로 분류된다. 서(西)투르카나에서 발견된 거의 완전한 형태의 두개골 화석(KNM-WT 17000으로 명명되었으며, 일반적으로는 '검은 두개골'이라고 함)도 실험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로 분류되었다.

1930년대에 탄자니아(당시에는 가루시)의 라에톨릴 유적지에서 2점의 위턱뼈가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 이 유적지를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발자국과 함께 인간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1972~77년에 에티오피아에 있는 대규모 유적지 하다르에서 진행된 현지작업에서도 수백여 점의 인간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특히 2가지 발견이 아주 놀라웠는데, 하나는 AL 288-1로 명명되었으나 흔히 '루시'라고 불리는 표본으로 절반 정도의 뼈가 보존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최초의 가족'이라고도 불리는 최소한 13개체의 뼈로 구성된 화석이다. 라에톨리와 하다르의 화석들을 정밀조사한 결과 이 화석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완전히 새로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화석은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보다 그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라에톨릴과 하다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은 250만~450만 년 전의 인류이다. 여기서 2가지 중요한 점이 있는데, 첫째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가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시기가 더욱 진보된 사람과 생물인 호모 하빌리스의 출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

동아프리카의 주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적지에서 수많은 화석이 발견된 사실은 남아프리카의 동굴 유적지에서 화석이 비교적 덜 발견되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의 마카판스가트에서 인류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동물의 를 세심하게 조사·연구하면서 설명이 가능해졌다.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이 동굴들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몸집이 큰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힌 뒤에 그 뼈가 동굴 속에 쌓이게 된 것이다(포식). 또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당시 인류가 골각기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뚜렷한 증거는 없다(도구, 뼈와 이빨과 뿔의 연모공작).

스와르트크란스와 스테르크폰테인에서는 돌로 된 인공물이 발견되었다.

스와르트크란스에서 발견된 인공물은 주로 조야한 석핵(石核), 박편, 규암과 석영으로 만든 스크레이퍼, 골각기 등이었다. 스테르크폰테인에서 발견된 인공물 중에는 기술적으로 더 발전된 작은 크기의 스크레이퍼와 원시적인 손도끼 등이 있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작은 석영박편 등 상당한 규모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오모 강 유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올두바이 협곡과 투르카나 호 북동쪽의 유적지에서 초기 인류의 기술수준과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

이미 약 175만 년 전에 인류는 손에 의한 조작기술을 충분히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석기를 변형시킬 수 있는 인식능력을 개발했다. 이중 가장 유명한 올두바이 공작(工作)의 뒤를 이어 그 변형이나 더욱 발전된 형태의 기술이 올두바이 협곡이나 다른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행동에 관한 추론과 진화적 관계

마이오세의 화석인류가 발견된 곳의 고(古)환경은 대부분 개방된 숲 지역으로 초기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적지와 비슷한 서식지였다.

라에톨릴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을 통해 이들 화석인이 두 발로 걸어다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하다르에서 발견된 골반의 화석을 통해 약 300만 년 전에 인류가 직립자세를 취했음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사지 뼈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골격은 기어오르기나 이족직립보행에 똑같이 적응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에 서식하던 초기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가 이러한 2가지 자세를 동시에 취했으며, 상당한 시간을 나무 위에서 생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이빨 화석에서는 특별히 음식물의 변화에 의한 적응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들이 주로 과일류·장과(漿果)·괴경(塊莖) 등 식물을 먹고 살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출현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가설은 이들이 약 500만 년 전 지구의 기후가 더 건조하게 변할 무렵에 출현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바나 지대가 더 넓게 확대되면서 일어난 제2의 기후변동은 호모 하빌리스라는 더 진화된 형태의 사람과 생물들 및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출현과 그 시기가 일치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큰어금니는 과일 껍질 같은 단단한 것도 깰 수 있을 만큼 적응해 있었다. 그리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이들은 산재해 있는 사바나의 특정 지역에서만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이빨이 덜 특수화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적응한 것이 분명한데, 이들은 문화적 발전을 촉진했고,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에 연결고리가 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계통수가 제시되었다. 이제까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조상으로 인정되었지만, 사람속과의 관계에 대한 직접성 여부(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를 경유하는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한때 조상이 되는 사람과 생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가설에 동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연구 결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사람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모두와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서로 다른 특질의 혼융을 놓고 일부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가 사람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공통조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사람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중 어느 한쪽의 특질이 더 우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 KNM-WT 17000으로 명명된 두개골이 발견되면서 이러한 논쟁은 더욱 첨예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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