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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BC 500년경 인간의 생명은 남자와 여자의 몸에서 나온 체액, 또는 정액의 혼합에 의해 시작된다고 추측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중에 정액을 정제된 혈액으로 보고 혈액이 곧 유전의 요소라고 주장했다. 1651년경 윌리엄 하비는 그리스 학자들이 주장했던 개념을 논박했으며 사슴의 배가 발생 초기에는 작은 공 모양이다가 발생이 조금 더 진행된 후에는 사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작은 공이 바로 작은 난세포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17세기말에는 난소라고 하는 여성의 기관이 난세포의 원천이며 정자는 남성의 유전물질을 전달한다고 주장되었다.
19세기초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획득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으며, 1865년경 G. 멘델은 완두의 유전현상을 보고했다(→ 라마르크 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전자의 DNA 구성성분이 고름에서 분리되었고 연어의 정자에서 역시 상당량의 DNA가 발견되었다.
19세기말 독일의 의사인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생식세포가 체세포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보였고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이전의 가설을 반박했다. 유전에서 볼 수 있는 갑작스런 변화인 돌연변이에 대한 개념은 20세기초에 도입되었다. 뒤이어 미국과 영국에서, 곤충의 염색체에 의한 성 결정과 완두 염색체의 유전자 연관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1908년 영국의 수학자 하디와 독일의 물리학자 바인베르크는 이른바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을 공식화하여 집단유전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1909년 영국에서 기형의 원인인 유전자-유도효소 결핍증을 발견한 것에 힘입어 생화학적 유전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유전학자 허먼 J. 멀러는 1927년 X선을 사용하여 초파리의 돌연변이를 유도했다. 조지 W. 비들과 E. 테이텀은 빵곰팡이속의 붉은빵곰팡이(N. crassa)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대부분의 유전자들이 효소의 합성을 지시하는 기능을 하고 이것이 곧 유전형질을 발현하는 것임을 증명했다.
1944년 DNA가 유전물질임이 밝혀졌고, 1953년 J. 윗슨과 F. 크릭은 자가복제에 적합한 DNA 구조를 보고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는 유전자로부터 효소(단백질) 합성부위로 유전 정보가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발견했는데, 그들의 연구는 DNA를 단백질로 해석하는 유전암호의 발견을 가져왔다. 1983년 바버라 매클린턱은 돌연변이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의 일부인 운동성 있는 유전물질(전이유전인자)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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