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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테나에게는 남편과 자녀가 없다. 전쟁의 여신이므로 다른 여신들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궁궐의 신이므로 신성을 침해받지 않았다. 유혈의 욕망을 상징하는 아레스와 달리 아테나는 전쟁의 지적이고 문명화된 측면과 정의, 기술의 덕성을 상징한다. 아테나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공포·투쟁·방어·공격 등이다. 왕의 수호신으로서 전쟁뿐 아니라 훌륭한 조언과 실제적인 통찰력의 여신이었다.
미케네 시대 이후 아테나의 영역은 궁궐에서 도시의 성채로 바뀌었다. 주로 그녀의 이름을 딴 아테네와 연관되는데, 그녀의 탄생과정과 아테네의 종주권을 놓고 싸운 포세이돈과의 결투가 파르테논 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다.
아테나는 보통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동일시된다.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동일하다.
본질적으로 도시적이며 문명적인 성격을 지녀, 전원적인 성격의 아르테미스와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아마도 헬레니즘 시대 이전의 여신이었을 것이며, 뒤에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신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리스는 미노아와는 달리 군사경제가 발달했기 때문에 아테나는 초기의 가정적인 모습을 지니면서도 전쟁의 여신이 된 것이다(미노아 문명).
아테나가 여러 그리스 도시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와 연결되는 것은 왕궁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녀에게는 남편도 자녀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원래부터 처녀로 묘사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이른 시기부터 처녀성은 그녀의 속성으로 여겨졌으며, 이것은 그녀의 별명 아테나 팔라스나 아테나 파르테노스('처녀신 아테나')를 해석하는 바탕이 되었다. 전쟁의 여신이었으므로 아프로디테와 같은 다른 여신들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궁궐의 신이었으므로 신성(神性)을 침해받지 않았다.
〈일리아스 Iliad〉에서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으로서 그리스의 영웅들 편에 서서 사기를 높이고 싸움을 도왔는데, 그녀의 도움이란 곧 군사상의 용맹성을 의미했다. 또한 〈일리아스〉에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아테나에게 전쟁을 벌일 영역을 정해주었다고 되어 있다. 아테나가 도덕이나 군사적인 면에서 아레스보다 우월한 것은, 아레스가 단순히 유혈의 욕망을 상징하는 데 비해 아테나는 전쟁의 지적이고 문명화된 측면과 정의 및 기술의 덕성을 상징한다는 사실에서 우선적으로 기인한다.
아테나의 우월성은 또한 그녀의 역할들이 더 다양하고 중요할 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조상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아레스보다는 아테나를 민족적인 입장에서 더 높이 평가한 데서 비롯된다. 〈일리아스〉에서 아테나는 영웅과 군인의 이상을 나타내는 신이었으며, 특히 접전에서의 출중함, 승리와 영광의 화신이었다. 그녀가 전쟁에 참가할 때 입는 갑옷인 아이기스(aegis)에 나타나 있는 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그녀의 속성들은 공포·투쟁·방어·공격 등이다.
〈오디세이아 Odyssey〉에서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수호신으로 나오며, 그뒤의 신화들에서는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를 돕는 역할로 그려져 있다. 왕들의 수호신으로서, 전쟁뿐 아니라 훌륭한 조언, 신중한 자제, 실제적인 통찰력의 여신이기도 했다.
미케네 시대 이후 아테나의 영역은 궁궐에서 도시의 성채로 바뀌었다. 여러 지방에서 숭배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그녀의 이름을 딴 아테네와 연관된다. 그녀가 거기에서 도시의 수호여신인 아테나 폴리아스('아테네 도시의 수호자')로 등장하게 된 것은 고대 도시국가가 군주제에서 민주제로 바뀜에 따른 것이었다.
그녀는 아테네 시의 상징으로 유명해진 올빼미를 위시하여 새들과 연관이 있었으며 뱀과도 관계가 깊었다. 그녀의 탄생과정과 아테네 시의 종주권을 놓고 싸운 포세이돈과의 결투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에 새겨져 있다. 헤시오도스는 〈신통기 神統記 Theogony〉에서 아테나가 어떻게 어머니 없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는지를 이야기했고, 핀다로스는 이에 덧붙여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쳐서 아테나가 태어났다고 했다.
아테나의 탄생축제인 판아테나이아(Panathenaea)는 식물의 성장과 결부되었다.
프로카리스테리아(Procharisteria)도 봄이 옴에 따라 땅에서 여신이 솟아오르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아테나가 식물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도시를 위한 그녀의 일반적 활동의 부산물일 뿐이다. 아테나는 일반적으로 공예 및 숙달된 일상적 작업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특히 방사(紡絲)와 방직(紡織)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지혜와 정의를 상징하게 된 것도 기술의 후원자로서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테나는 보통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페이디아스와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나의 이미지가 문화적으로 확산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피디아스는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금과 상아로 된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를 비롯하여 3개의 뛰어난 아테나 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에우메니데스 Eumenides〉에서 아테나는 아테네의 장로회의 아레오파고스를 세웠고, 교착상태에 빠진 재판에서 피고 오레스테스를 위해 재판의 표결이 동수일 때는 무죄라는 선례를 남기는 것으로 그려진다(〈오레스테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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