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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와 음악·무용
신라시대의 문학은 크게 설화문학과 시가문학으로 나누어진다. 설화문학에는 왕자 우로나 박제상 등과 관련되는 사화들이 유명하며, 시가문학에는 민요·향가 등 다양한 편이다.
민요풍을 띠는 시가로서는 서동요와 풍요가 있다. 이같은 시가문학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향가로 발전했는데, 통일기에 들어가면 이는 크게 융성했다. 시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음악은 종교적 성격이 농후했다.
6세기 중엽 대가야 출신의 우륵에 의해 가야금이 전래되면서 신라의 음악은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우륵은 신라에서 몇몇 제자를 양성했는데, 총 185개의 가야금 악곡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백결선생은 방아타령[碓樂] 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가야금 계통일 것으로 짐작된다. 춤은 음악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신라시대의 음악은 악기와 노래에 춤이 가미된 일종의 종합예술이었다. 초기에는 풍작을 기원하는 축제 때에 징과 북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요란스러운 군무가 성했는데, 가야금이 전래됨에 따라 한층 더 세련되어갔다.
미술
삼국시대 신라의 미술은 크게 건축·조각·공예·회화 등 몇 분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중 건축에 속하는 것으로는 왕릉과 사찰·탑파 등이 있는데, 통일 이전 왕릉은 대개 평지에 구덩식 돌무지덧널무덤[竪穴式積石木槨墳]을 만들었다. 통일 이전에도 적지 않은 사찰이 건립되었으나, 현재에는 모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최근 본격적으로 행해진 황룡사 터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 이전 사찰의 가람 배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탑파 역시 통일 이전의 것은 남아 있지 않으나, 선덕여왕 때의 황룡사 9층탑에서 볼 수 있듯이 목탑이 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각분야에서는 불상과 각종 석조물이 있다. 통일 이전의 불상으로는 분황사탑에 조각된 인왕상을 비롯한 몇몇 석불이 주목된다. 또한 국보로 지정된 보관을 쓴 각기 2점의 금동미륵반가상은 국적이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조각가로는 승려 양지가 유명한데, 그는 많은 불상과 기와를 만들었다.
공예작품은 크게 금속공예품·도기·토기로 나누어진다. 연맹왕국시대의 왕릉에서 많은 공예품이 나왔는데, 이들 가운데 금관을 비롯한 각종 순금제품·은제품·구리제품 등은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또한 도기 및 토기제품도 기종·기형 등이 모두 다양하며 우수한 편이다.
회화에 있어서는 왕릉의 구조상 널방[玄室]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고구려나 백제에서처럼 벽화를 남길 수 없었다. 다만 천마총에서 마구의 다래[障泥]에 그려진 천마도가 출토되었고, 그밖에 기마인물도와 서조도가 발견되어 통일 이전 신라의 그림이 패기에 찬 수준 높은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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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삼국통일 이전 신라의 문학과 예술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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