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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제직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주로 성찬식의 집전과 관련하여 발전했는데, 2세기말에 이르러서 성직자들을 사제라고 불렀다.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고 교구 교회들이 세워짐에 따라 교구 사제가 성찬식의 주요 집전자가 되었다.
이처럼 성찬식을 집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됨에 따라 사제는 고해를 듣고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하느님에게 인간을 대변하는 역할보다는 인간들에게 하느님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때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미사의 희생 교리와, 그와 관련된 사제직의 개념을 거부했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제직을 강조했다. 결국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에서는 목사가 사제를 대신했다.
사제 유형의 그리스도교 성직자직, 즉 사제직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주로 성찬식의 집전과 관련하여 발전했다. 2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성직자들을 사제라고 불렀다.
사제의 직무는 일차적으로 주교에게 주어진 것이었지만, 사제도 사제적 기능을 나누어 가졌고, 주교가 없을 때는 주교의 대리자로서 일정한 기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고 교구 교회들이 세워짐에 따라 교구 사제가 성찬식의 주요집전자가 되었다. 이처럼 성찬식을 집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됨에 따라 사제는 고해를 듣고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하느님에게 인간을 대변하는 역할보다는 인간들에게 하느님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성찬 신학의 발전은 사제의 역할에 관한 〈구약성서〉의 예를 벗어날 만큼 사제의 초자연적 권능과 자질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때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미사의 희생 교리와, 그와 관련된 사제직의 개념을 거부했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제직을 강조했다. 결국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에서는 목사가 사제를 대신했다. 영국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는 성찬식을 집전할 수 있는 사제와, 성찬식을 집전할 자격이 없는 부제를 구별하기 위해 〈성공회 기도서 The Book of Common Prayer〉에서 사제라는 칭호를 그대로 사용했다. 목사는 영국 교회의 가톨릭 유산이 강조되고 사제가 다시 공통의 용어가 된 19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성직자(clergyman)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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