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1866년 7월 3일 프로이센군은 쾨니히그레츠 근처의 자도바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했다. 국왕 빌헬름 1세는 평소에 오스트리아야말로 침략자라고 주장했으므로 오스트리아령의 일부 병합을 원했지만 비스마르크는 분할을 반대하는 태도를 굳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비스마르크는 마인 강을 경계로 하여 독일을 프로이센권과 오스트리아권으로 나누자고 제의했는데 니콜스부르크 평화협정(1866. 7. 26)에서는 이 방식을 취하지 않고 오스트리아를 독일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자도바 전투 당일 프로이센에서는 총선거가 있었다. 급진자유주의자의 진보당은 현저히 쇠퇴했고 마침내 당이 분열되었다. 다수파는 새로이 국가자유당을 결성했고 국내 문제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얻어내는 대신 비스마르크를 지지하기로 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오스트리아 측에 서서 참전한 나라들은 작센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로이센에 병합되었다. 또 그밖의 나라들은 프로이센이 제어하는 연방, 곧 북독일 연방에 가맹해야 했다.
프로이센 왕은 연방의 우두머리와 총사령관직을 겸했고 비스마르크는 보통선거로 선출되는 연방의회를 열었다. 군사 예산은 1871년 12월을 기한으로 승인되었는데 비스마르크는 군사비 지출을 항구적인 승인사항으로 해서 헌법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국민자유당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1874년에야 7년분을 일괄 인정하는 '7년제 군사 예산방식'에 동의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화해와 비스마르크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