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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0년경은 블레이크가 세상살이에 실패한 시기이다. 일거리를 얻기가 힘들었고, 이무렵부터는 만들어낸 판화도 창의성이 없는 것이 많았다. 1809년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려는 마지막 시도로 16점의 유화와 수채화를 전시했다.
이 전시회를 위해 〈Descriptive Catalogue〉를 정성들여 썼으나 참석한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이같은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 1819년 화가 존 리넬이라는 관대한 새 후원자를 만나 새뮤얼 파머를 비롯한 젊은 화가들을 소개받았다. 말년에 블레이크는 이 화가들의 핵심인물이 되어 그와 같이 종교적 진지함을 공유한 회원들에게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예루살렘〉 뒤에 쓴 가장 주목할 만한 시는 〈영원한 복음 The Everlasting Gospel〉(1818?) 속에 들어 있다. 이 시집은 예수의 인물됨과 가르침을 과감하게 재해석한 미완성작이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말년에 주로 미술작업에 몰두했다. 1821년 린넬의 위탁을 받고 〈욥기〉에서 영감을 얻어 22점의 수채화 연작을 그렸다. 이 가운데 몇 점은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축에 든다. 린넬은 단테의 〈신곡 Divine Comedy〉 삽화도 그려달라고 했는데, 이 작업은 1825년에 시작했으나 결국 끝내지 못했다. 이 책의 삽화로 그린 102점의 수채화는 화려한 색깔이 특징이다.
블레이크는 60대에 와서야 비로소 평생 원했던,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업에 대한 추종자와 조력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결과 말년에 기교가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삽화들을 그릴 수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침대에 누워 자신의 책들에 색칠을 했으며, 스트랜드가에 있는 방 안에서 70세로 숨을 거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이크는 묘비도 없이 버닐필즈의 한 묘소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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