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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384년(침류왕 1) 중국 동진의 마라난타가 불교를 백제 왕실에 전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불교가 들어온 이듬해에 한산에 사찰을 창건하고 10명의 승려를 득도시켜 불교를 널리 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백제는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새로운 사회통합의 원리로서 불교를 적극 권장했으며, 이것을 주도한 것은 왕실 및 지배귀족들이었다. 백제 왕실의 흥불시책은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599년(법왕 1) 12월에는 칙명을 내려 살생을 금지시키고 민가에서 기르던 매와 꿩을 놓아주도록 했으며 물고기를 잡는 도구를 불태웠다. 이듬해 정월 왕은 왕흥사를 창건하고 승려 30명의 출가를 허락했다. 백제에서는 승정을 중심으로 승정기구를 설치해 불교계를 통제했다. 일본의 승관제도는 백제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한 것이다.
384년(침류왕 1) 중국 동진의 마라난타가 불교를 백제 왕실에 전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372년(근초고왕 27)에 동진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동진에서 흥성했던 불교가 백제 왕실에 이미 알려졌을 것으로 추측되나, 불교공전에 대한 기록은 마라난타에 관한 것만 현존하므로 백제 불교초전은 동진의 마라난타에서 찾는다. 불교가 들어온 이듬해에 한산에 사찰을 창건하고 10명의 승려를 득도시켜 불교를 널리 펼 수 있는 기틀을 비로소 마련했다. 이후 백제는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새로운 사회통합의 원리로서 불교를 적극 권장했는데, 이것을 주도한 것은 왕실 및 지배귀족들이었다.
백제 왕실의 흥불시책은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392년(아신왕 1) 2월에는 왕이 "불법을 믿고 받들어서 복을 구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541년(성왕 19) 왕은 사신을 중국 양(梁)나라에 보내어 〈열반경 涅槃經〉 등의 경전과 공장 및 화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599년(법왕 1) 12월에 칙명을 내려 살생을 금지시키고 아울러 민가에서 기르던 매와 꿩을 놓아주도록 했으며 물고기를 잡는 도구를 불태웠다. 이듬해 정월에 왕은 왕흥사를 창건하고 승려 30명의 출가를 허락했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승정을 중심으로 승정기구를 설치해 불교계를 통제했다. 일본의 승관제도는 백제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한 것이다.
백제의 불교학
불교가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불교학도 발달했다. 먼저 계율학을 보면 526년(성왕 4) 겸익이 인도에서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산스크리트본 아비담장(阿毘曇藏)과 5부율문(五部律文)을 가지고 귀국했다. 5부율 가운데 가섭유부율(迦葉遺部律)을 제외한 나머지 4부율은 중국에서 이미 번역되었으나, 그것이 백제에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겸익이 승려 28명과 함께 율부(律部) 72권을 번역했다는 것으로 보아 백제의 계율은 중국과 다른 독창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때 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이 율소(律疏) 36권을 저술했으며, 왕은 서문을 짓고 새로 번역된 불전을 궁중에 보관하게 했다. 겸익에 의해 시작된 백제의 율학은 당시 국제적으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588년(위덕왕 35) 일본에서는 선신니(善信尼) 등을 파견해 3년간 불법을 배우게 했는데,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가 계율의 시조가 되었다.
590년에는 율학에 정통한 혜총(惠聰)이 일본의 집권자에게 계법(戒法)을 전해주었다. 또한 도장(道藏)은 〈성실론소 成實論疏〉 16권을 저술했는데, 이는 나중에 일본 성실종의 필독서가 되었다. 백제 말기에는 고구려 승려 보덕이 백제의 완산주 경복사(景福寺)로 이주해 열반학을 널리 유포해 후대에 열반종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불교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면서 중관(中觀)·유식(唯識) 사상도 차례로 연구되었다. 우선 중관 계통을 보면, 현광(玄光)은 중국에 유학해 천태종의 2조 혜사(慧思)에게서 〈법화경 法華經〉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에는 웅주(熊州) 옹산(瓮山)으로 들어가 절을 짓고 크게 교화하다가, 577년경에 입적했다. 그는 실천적 법화신앙을 전파했다. 무왕 때의 혜현(惠現)은 덕산 수덕사(修德寺)를 중심으로 〈법화경〉을 외우고 삼론(三論)을 연구했으며, 중국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일본에 간 관륵(觀勒)이나 혜총·도장은 삼론학(三論學)을 연구한 학자였다. 7세기 중반경에 일본에 건너간 의각(義覺)은 〈반야심경 般若心經〉을 신봉했고, 중관학과 함께 유식학도 활발히 연구되었다. 의영(義榮)은 유식 계통의 불교를 연구해 〈유가론의림 瑜伽論義林〉 5권, 〈약사본원경소 藥師本願經疏〉 1권을 저술했으며 7세기 후반에 경흥은 정통 유식학자로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그는 백제 출신이었다.
백제의 불교신앙
백제에서는 특히 미륵신앙이 성행했다. 552년(성왕 30) 일본에 처음 불교를 전할 때 미륵상을 보냈으며, 무왕 때에는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했다. 익산의 미륵사는 미륵하생신앙을 현실화한 것으로서 불국토사상 내지 전륜성왕설과 연결되어 후대에 중시되고 있다. 6세기초 중국에 유학을 갔던 발정은 그곳에서 관음신앙과 접했다. 이것으로 인해 관음신앙의 경전인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 請觀世音菩薩消伏毒海陀羅尼呪經〉이 신봉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아미타 신앙, 묘견 신앙, 제석 신앙 등이 유포되었다.
백제 불교의 일본 전파
백제는 불교를 일본에 전파했다. 538년(성왕 16)경 경론과 불상을 처음 일본에 전해준 이래 많은 승려들이 일본에 건너갔다. 554년(위덕왕 1)에 담혜 등 9명의 승려를 파견했으며, 577년에는 불교전적과 율사·선사·비구니·주금사·불공·사장 등을 보냈으며, 584년에는 불상을 보냈다. 588년에는 불사리와 승려·사공·와장·화공 등을 보냈다. 602년(무왕 3)에는 삼론학자 관륵이 건너가 역사·천문·지리·둔갑술 등을 전수했을 뿐만 아니라, 승정에 취임해 일본 승관제의 길을 열었다. 이외에도 많은 불교승려와 불교관계 기술자 및 불경·불상 등이 전파되어 초기 일본 불교의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백제의 불교미술
백제는 불교 전래와 동시에 한산에 사찰을 세웠으며, 법왕대에는 부여의 왕흥사가, 무왕대에는 익산의 미륵사가 각각 건립되었다. 그밖에도 칠악사·오함사·천왕사·도양사·백석사·정림사 등의 이름이 전한다. 석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미륵사지석탑을 비롯해 부여의 정림사지5층석탑 등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들은 양식상 목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백제의 조탑술은 외국에도 전해져 신라가 황룡사9층목탑을 만들 때는 기술자 아비지를 초청했으며, 일본에도 많은 기술자가 파견되었다. 불상으로는 서산의 마애석불을 비롯한 다수의 불상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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