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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04. 6, 오스만 제국 아마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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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51. 2. 3, 에디르네 |
국적 | 오스만 |
요약
오스만 제국의 술탄(1421~51 재위).
Amurath Ⅱ라고도 씀.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의 세력을 확대했으며 아나톨리아에서는 자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비잔티움 제국). 그는 통치 초기에 비잔티움 황제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와 아나톨리아의 많은 투르크멘 공국의 지원을 받는 몇몇 술탄위(位) 요구자들을 물리쳐야만 했다.
1425년까지 정적들을 거의 제거하고 아나톨리아 서부의 투르크멘 공국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권을 재확립했으며 다시 비잔티움에 공물을 바치게 했다. 1430년에는 발칸 반도로 관심을 돌려 5년간의 싸움 끝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던 북부 그리스의 살로니카(지금의 테살로니키)를 점령했다. 오스만 제국군은 처음에는 헝가리·세르비아·카라만 연합군에 잘 대항했지만 1441년 이후 독일·폴란드·알바니아 군이 연합군에 가세하게 되자 오스만 제국은 니시와 소피아를 잃고(1443) 잘로와즈에서는 크게 패했다(1444). 1444년 6월 12일 에디르네에서 강화조약에 서명한 뒤 무라드는 12세 된 아들 메메드 2세에게 양위했다(→ 에디르네 조약).
유럽 열강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지원하에 곧 강화협정을 깨뜨리고 침략했다. 무라드는 오스만 군대를 이끌고 1444년 11월 바르나에서 그리스도교군을 무찔렀다. 외부의 위협에 궁정 귀족들의 압력까지 받자 무라드는 1446년 다시 오스만 제국의 통치권을 쥐게 되었다.
1448년 10월 17일 제2차 코소보 전투에서 헝가리인들을 물리쳤다(→ 바르나 전투). 아나톨리아에서는 티무르 왕조의 샤 로흐의 서진정책(西進政策) 때문에 신중한 정책을 폈다. 샤 로흐는 자신을 투르크멘 공국의 수호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초룸·아마시아 지역과 아나톨리아 서부에 대한 종주권을 확보했으나, 발칸의 그리스도교도 통치자들과 동맹관계를 맺어 오스만 제국에 위협 요인이 되었던 카라만 공국에게만은 계속 자치권을 행사하게 두었다. 무라드의 재위중 대(大)와지르(재상)는 주로 찬다를리 가문 출신들이었다. 재너서리 부대(정예군)는 더욱 두각을 나타냈고 발칸 반도 변방의 세습 투르크 지배자들은 자주 오스만 술탄과 관계없이 독자행동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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