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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헝가리군에 대해 투르크군이 승리한 전투(1444. 11. 10).
이를 통해 투르크의 지배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기 위한 유럽 세력들의 노력이 종결되고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 자신의 지배를 확립해 세력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1440년대 초반 헝가리의 국왕 울라슬로 1세(폴란드의 부아디수아프 3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한 투르크의 위협을 줄이고 세르비아를 디외르디 브론코비치 왕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무라드 술탄에 대항하는 전쟁을 지원했다. 후냐디가 지휘하는 헝가리군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지원을 받았으며 왈라키아의 야노슈 블라드뿐 아니라 디외르디 왕자와도 연합했다.
이들 연합군은 무라드에게 10년간 평화협정을 맺도록 했는데(1444. 6) 이에 따라 울라슬로는 세르비아를 종속국으로 되찾는 대신 도나우 강을 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그럼에도 울라슬로는 교황의 사절 줄리아노 체사리니의 영향을 받은 무라드 술탄이 소아시아에 몰두해 있는 점을 이용해 협정을 깨고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후냐디도 마지못해 전쟁에 참가했으나 디외르디 왕자는 울라슬로의 십자군과 연합하기를 거부했다. 왈라키아의 파견부대만으로 보강된 헝가리군은 바르나로 진군해 11월 10일 그곳에서 무라드와 격돌했다.
헝가리군은 초반에 우세를 보였으나 투르크군이 결국 울라슬로를 죽였으며 그리스도교 군대는 거의 전멸되고 후냐디는 달아났다. 폴란드는 이 전투로 3년 동안 국왕의 자리가 비어 있게 되었다. 투르크는 중부 유럽 열강들의 간섭을 더이상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배권을 한때 십자군과 연합했던 펠로폰네소스의 그리스 통치자들에까지 확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투르크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고(1453) 결국 세르비아까지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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