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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테스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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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세 이탈리아의 가문.

라벤나 남쪽 지방 리미니를 다스렸고 그 지역의 구엘프(교황파)를 이끌었다. 원래는 아펜니노 산맥 오지의 봉건 영주였으나 13세기에 말라테스타 다 베루키오(1312 죽음)가 1295년 기벨린(황제파) 지도자들을 쫓아내고 리미니 영주가 되었을 때부터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말라테스타 다 베루키오의 아들 잔치오토(1304 죽음)가 아내 프란체스카 다 폴렌타(라벤나 영주의 딸)와 자기 동생 파올로를 간통 혐의로 죽인 일화는 유명하며 단테는 이 사건을 〈신곡〉에서 다루었다. 그뒤 이 가문은 남쪽으로 160㎞ 떨어져 있는 아스콜리까지 세력을 넓혔지만 1353년 이곳으로 파견된 교황 특사 추기경 알보르노스는 많은 점령지를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리미니와 그 근처 몇몇 도시에서는 말라테스타 가문이 교황 대리로 행세해도 좋다고 허락했다(1355)(→ 구엘프와 기벨린).

14~15세기에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 전쟁에 참여했고 카를로 말라테스타(1429 죽음)는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죽은 뒤 잠시 밀라노를 다스렸으며 동생 판돌포(1427 죽음)는 브레시아(1404)와 베르가모(1408)를 손에 넣었으나 1421년에는 두 지역을 포기해야만 했다. 교회의 대분열 말기에 카를로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와 힘을 합쳤고 1416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그레고리오가 공식적으로 교황직에서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그의 조카이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군주의 본보기로 자주 거론되는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1417~68)는 군인 출신으로 작가·예술가들의 후원자로 유명했다. 대분열이 끝나고(1417) 교황의 권력이 점차 회복됨에 따라 이 가문의 세력도 약해졌다. 1461년 교황 비오 2세는 시지스몬도에 대항해 성전을 벌여 이 집안이 차지한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았다.

시지스몬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로베르토(1482 죽음)가 리미니를 되찾았으나(1469) 리미니는 점차 베네치아의 세력권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 가문은 지지를 잃었다. 1500년 체사레 보르자가 리미니에 쳐들어왔을 때 말라테스타 가문 사람들은 도망갔으며 그뒤 1503, 1522, 1527~28년 3차례에 걸쳐 계속 되돌아오려인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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