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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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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의 초기 주민인 트와족과 풀라족은 BC 8000∼2000년의 선사시대부터 거주해왔다. 1∼4세기에 반투어족이 이 지역에 들어와 초기의 정치국가를 세웠으며, 1480년에 마라비 동맹이 생겨났다. 말라위 중부와 남부 대부분을 포함하는 이 동맹은 17세기에 인근지역의 여러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1600년경 응곤데족(族)이 말라위 북부에 왕국을 세웠으며 18세기에는 니아사 호 동쪽 연안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치쿨라마이엠베국을 건설했다. 18∼19세기 말라위에서는 노예무역이 번성했다. 1830∼60년 스와힐리어계 종족이 이 지역에 들어와 야오족과 함께 세력권을 형성했으며, 이들 모두 노예무역에 관계했다. 1860년대에 노예무역과 더불어 이슬람교가 전개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같은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를 들여왔다. 1880∼90년대에 '남아프리카 네덜란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웠다.

영국은 1891년 '니아살란드 보호령'을 설정하여 이 지역의 식민통치권을 갖게 되었으며, 1893년에 '영국령 중앙 아프리카'가 되었다가 1907년에 니아살란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국 식민통치기에 유럽인들의 환금작물 경작법이 소개되었으며, 도로 및 철도가 건설되었다.

영국은 말라위 사람들의 복지 향상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아프리카 고유의 경작법이 개발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인근 국가로 일자리를 찾아 말라위를 떠났다. 1951∼53년에 남·북 로디지아와 니아살란드 식민지들이 연방을 이루었다가 1963년에 해체되었다. 이듬해 말라위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고, 1966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1970년대의 10년 동안 반다 대통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판하지 않고 주위의 아프리카 흑인국가들을 종종 비판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말라위 경제는 1970년대의 상당 기간 동안 번영을 누렸는데, 그것은 주로 외국의 원조와 자본투자에 힘입어서였다. 1970년대초 말라위는 모잠비크에서 피신해온 반정부 폭도들의 피신처가 되기도 했다. 1978년 6월 29일, 독립 후 첫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1980년대초에도 반다는 대통령으로서 권좌를 유지했으며, 말라위의 노동자 약 2만 명이 고용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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