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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즉 라틴 가톨릭 교회가 AD 1세기부터 계속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방 가톨릭 교회는 대체로 1439년 교회 당국이 동방·서방 그리스도교를 연합하려다 실패한 페라라-피렌체 공의회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공의회의 연합 노력은 실패했지만 동방·서방 그리스도교의 재연합을 궁극적 목표로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극했고, 재연합 주창자들은 예수회·도미니쿠스회·프란체스코회·카푸친회 등과 같은 수도회의 선교활동 덕택에 성공의 몇 가지 요소들을 얻어내기 시작했다.
1596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연합(Brest-Litovsk Union)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주교 2명을 제외한 모든 주교가 폴란드 가톨릭 왕의 요구에 순응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동방전례교회가 효과적으로 출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이전 몇 세기 동안에는 다른 소수의 집단들이 로마 교회와 연합했지만, 이때 로마 교회와 연합한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동방 가톨릭 교회의 최대 분파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있기 전 동방 가톨릭 교회는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이탈리아계 알바니아인들, 12세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연합한 다수의 마론파 교회 신자(시리아-안티오크 전례교회의 레바논 그리스도교인)들, 12세기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맺어온 시리아-레바논 지역의 일부 아르메니아인들에 국한되었었다.
한편 다수의 네스토리우스파(5세기에 이단으로 몰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는 사람들)는 1551년에, 루테니아인(유럽 중동부 지역의 주민)들은 1595년에,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은 1698년에, 멜키트파(비잔틴 전례교회의 시리아인들)는 1724년에 각각 로마 교회와 연합했다.
재연합 과정에서 정치적 요소도 작용했지만 지역마다 민족주의적 충성이 각 지역에 있는 동방 그리스도교인들을 크게 좌우했으며 지금도 좌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방 가톨릭 교회에 속한 교회들이 수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위계질서를 권장하여 확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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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동방전례교회의 역사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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