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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기업

다른 표기 언어 multinational corporation , 多國籍企業 동의어 초국적기업, transnational corporation, 세계기업, world enterprise

요약 동시에 둘 이상의 국가에서 법인을 등록하고 경영활동을 벌이는 기업.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이라고도 함.

다국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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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다국적기업은 어느 한 나라에 본사를 두고, 최소한 하나 이상의 다른 나라에 자회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본사는 100% 또는 부분적으로 소유한 자회사를 운영한다. 현지의 자회사들은 중앙 본사의 지시를 받는다.

다국적기업을 설립할 경우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한 이유는 생산규모 확대로 비용이 절감되어 수직적·수평적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그결과 독점력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국적기업은 일반적으로 전문기술자, 숙련공, 현실적응력이 있는 전략 등을 대상국가간에 쉽게 이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경제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타국을 지배하는 수단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국내의 취약한 경제적 토대로 인해 수출이 대부분 1차산품 위주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보다 쉽게 다국적기업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거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대상국이 되면 독점적 관행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보다 전통적인 경제성장의 길을 침해당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다국적기업

다국적기업과 한국경제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진출하게 된 배경은 국제분업구조와 자본수출형태의 변화에 따른 결과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적 특징인 자본수출은 새로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자본수출이 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 블럭 내부에서 화폐자본·증권투자를 중심으로 한 간접투자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후에는 직접적 생산과정의 국제화, 즉 생산자본의 국제화가 일반화되었다. 전후 초기에는 유럽 부흥을 위한 원조나 신흥개발도상국에 대해 주로 식민지적 지배의 유지를 꾀하는 군사·정치적 원조형태의 국가자본수출이 주축을 이루었다.

개발도상국이 어느 정도의 산업기반을 이룩한 다음에는 다시 차관을 중심으로 한 간접투자로 자본수출의 방향이 바뀌었고, 공업화가 진척된 이후에는 저임금을 이용하기 위한 직접투자가 등장했다. 그런데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해외에 대한 직접투자는 판로확보를 위해 선진국간의 자본수출이 지배적이었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대체로 넓은 내수시장을 개발하기 위한 남아메리카 지역과 석유 등 원자재 획득을 위한 중동지역 정도에 한정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산업 내 국제분업'이 보다 중요해지면서 신흥공업국, 특히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에 대한 직접투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본수출의 형태변화는 국제분업구조의 재편을 전제로 했다. 즉 전후 식민지체제의 붕괴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미국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국제분업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식민지에서의 원료생산과 수출, 즉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완제품 생산과 수출'이라는 분업구조로부터 '신식민지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의 생산과 수출, 즉 선진국의 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제품의 생산과 수출'이라는 산업간 분업에 의한 새로운 국제분업구조가 창출되었다.

특히 1970년대초 제1차 석유파동에 이어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를 거치면서 선진국은 에너지 다소비형, 공해유발형, 노동집약형 등의 중화학공업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과 기술집약적 산업을 특화시키는 형태로 국제분업체계가 본격적으로 재편되었다. 더욱이 1970년대 이후 과학기술혁명의 새로운 전개로 상품생산의 공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산업 내 분업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과거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담당하던 중화학공업 내부에서 보다 노동집약적인 생산공정은 신흥공업국에 이전하고 기계와 부품을 제공한 후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생산한 제품 또는 반제품을 다시 수입하는 형태였다. 기업 내 국제분업은 현대자본주의에서 가장 세련된 잉여가치 획득방법으로 생산과 이전가격 조작을 통해 유통부문에서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한 반제품·부품 가공생산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으며, 특히 합작투자는 국내 합작기업의 내수시장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에 미국·유럽공동체(EC)·일본 간의 불균등 발전이 심화됨에 따라 전통적 중화학공업 부문에서 경쟁력이 둔화된 미국은 국제경쟁력 유지를 위해 1960년대까지 선진국 특히 EC에 집중되었던 직접투자를 1970년대에는 개발도상국으로 전환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현대 독점자본의 생산과 자본의 집적수준이 높아지고 기업 내부의 세계분업이 성장한 결과, 국제거래 가운데 계열기업 내 국제거래의 비율이 약 50%에 달할 정도로 생산과정의 세계적 분산과 수직분업이 발전되었다.

한국에 다국적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변화라는 국제적 요인과, 지금까지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파생된 구조적 모순이라는 국내적 요인이 있다. 즉 8·15해방 후 진행된 종속적·독점적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배태된 제반 모순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에 대한 다국적기업의 직접투자가 급증했다.

8·15해방 후 세계자본주의에 재편된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의 원천을 해외자본에 줄곧 의존해왔다.

즉 1950년대에는 미국에 의해 제공된 원조가 자본조달의 주된 수단이 되었고(1961년까지 총 31억 4,000만 달러의 원조가 제공됨), 1960년대초에 대외원조가 삭감됨에 따라 원조경제는 차관을 중심으로 그 의존양식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경공업 중심의 차관기업이 부실화되고 무역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원리금 상환부담이 가중됨으로써 1970년대초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내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정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자본조달방식은 외자에 의존하면서도 원리금상환의 부담이 없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치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외자도입은 상업차관이 여전히 양·질적인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중화학공업화가 완성된 이후에도 한국의 무역구조는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자본재와 중화학공업제품의 원료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이를 가공한 다음 수출하는 형식의 재생산구조가 지속되었다.

특히 대일수입·대미수출특화의 가공무역형 구조가 더욱 굳어졌다. 이는 국내 분업·사업 연관이 취약하고(특히 기계 소재부분의 취약), 전후방 산업효과도 낮은 불균형 경제구조의 기초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특혜를 노린 과잉·중복투자에 세계적인 불황까지 겹쳐 국제수지는 극도로 악화되어 1985년말 외채가 468억 달러에 달하게 됨으로써 심각한 구조적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러한 국내 경제구조의 모순과 위기의 결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다국적기업의 직접투자 중심의 외자조달방식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980년대 외채위기 이후 원리금 상환부담이 적고 기술이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직접투자를 보다 선호하여 직접투자 도입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한국 경제는 개방경제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하기 시작, 1988년 직접투자의 규모는 도착기준으로 8억 달러 수준을 넘어섰고, 1980년대초의 5% 미만에서 1980년말에는 30%를 능가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커졌다.

이제 직접·합작 투자가 새로운 자본조달원으로 등장함에 따라 한국 경제에서 다국적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를 1970년대와 1980년대로 나눠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970년대

이 시기의 외자도입은 상업차관이 여전히 양적·질적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970년대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는 1960년대말 차관기업의 부실화로 규정된다. 이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에 자본 및 기술을 공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1970년대 초반(1972~76) 외국인 투자의 업종별·산업별 분포를 보면, 제조업이 79.3%를 차지하는 반면 서비스업 등 사회간접자본의 비중은 17.9%에 머물렀다. 제조업 중에서는 전기·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8%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노동집약적 업종인 섬유·의류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화의 추진 결과, 섬유·잡화 등의 노동집약적 제품에 대한 투자는 급속히 감소했다. 그 결과 1980년 외국인투자에서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0.2%로 감소했고, 대신 석유화학·전기·전자·수송용 기기부문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한편 1970년대의 외국인 직접투자의 나라별 분포를 보면,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고, 다음은 미국이었다.

1972~76년에 일본이 71%, 미국이 15.3%를 차지함으로써 미국·일본이 전체의 86%에 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는 임금상승, 외채증대, 국내 과잉중복투자의 만연 등 한국 경제의 위기를 계기로 일본의 중소사양산업이 대폭적으로 철수함으로써 일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자본은 주로 일본의 노동집약적인 사양산업과 공해산업으로서 주로 저임금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고, 도입된 자본도 주로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기업은 국내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중간재는 거의 일본 본국에서 도입한 반면, 제품의 판매는 현지판매가 주류를 이루고 본국이나 제3국에 대한 수출은 미미했다. 이에 비해 미국자본은 미국 내의 다국적기업에 의한 기간(基幹) 생산부문에 대한 투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여건 약화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했다.

그리고 미국 다국적기업의 소재보전 및 가치보전과정도 일본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즉 다국적기업의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거래 및 자회사와 자회사 간의 무역이 대단히 높았다.

1980년대

한국은 1985년을 계기로 선진국으로부터 각종 경제규제를 받아 외채누적에 따라 본격적인 개방경제체제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83년 이후 몇 차례의 외자도입법을 개정하여 외국인투자제도를 대폭적으로 완화했다. 1980년대 외국인 직접투자를 나라별로 보면, 미국과 일본의 비중이 여전히 높다. 1985년 전까지의 추세를 보면 일본의 비중이 꾸준히 감소하는 대신 미국의 비중은 높아졌다. 즉 1981년에 미국과 일본의 비중이 각각 47.1%와 32.5%를 차지하던 것이 1985년에 이르면 미국의 비중이 51%까지 상승한다. 그 대신 일본의 비중은 29%까지 하락한다.

그런데 1985년 이후 엔고-저달러 체제의 성립을 계기로 외국인투자가 전체적인 규모에서 1980년대초에 비해 엄청난 규모로 증가함과 동시에 일본의 비중이 다시 증가했다. 1989년에는 일본의 비중이 49.2%에 달했고, 유럽 선진국들의 외국인투자도 급격히 증가하여 1988~89년 16~17%에 이르렀다. 그런데 미국의 다국적기업은 전통적인 중화학공업 부문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게 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기업 내 국제분업을 가속적으로 추진하여 1980년대 들어서는 이전보다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부문 내지 공정부문을 한국에 이전했다.

이는 주로 전기·전자·자동차 산업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에 필요한 소재나 부품은 대부분 본국의 모회사로부터 수입하고, 그 제품도 미국으로 수출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의 직접투자는 중소사양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 규모가 급속히 늘어났고 그것도 주로 한국의 수출특화산업부문, 특히 전기·전자·수송용 기기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생산된 상품은 주로 현지시장과 일본 본국으로 판매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국내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중간재는 일본 및 현지로부터의 도입비중이 더 높다.

앞으로는 현지시장에서의 원재료 도입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0년대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일본 독점자본이 저부가가치제품에 대해서는 해외생산으로 충당하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별 분포를 살펴보면 1970년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1980년대 중반(1985)까지 농수산 및 광업 부문은 대단히 미미한 반면 제조업부문에 대한 투자는 1985년 71%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리고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도 상당히 증가하여 28.6%에 달했다. 제조업 중에서는 화학·전기·전자·기계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어 제조업 전체의 2/3를 차지했다. 1970년대에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섬유·의복이 1980년초에는 3.1%로 급격히 저하되었다. 1986년 이후 업종별 외국인투자의 특징은 제조업부문에서 전기·전자 이외에 자동차를 포함한 수송용기기부문이 급속히 증가한다는 점과 금융·서비스업 부문에 대한 투자의 증대이다.

1989년을 기준으로 제조업부문에 대한 투자는 전체에서 62.1%로 1980년대 초에 비해 대폭 감소한 데 반해, 서비스업은 37.6%로 급증했다. 특히 보험·금융업 부문에 대한 투자증가는 주목할 만하다.

현재 다국적은행의 지점수는 1970~80년대에 급속히 증가하여 1988년말에는 59개소에 이르렀다. 외국인은행의 총자산 규모도 급격히 증가하여 일반은행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70년 1.4%에서 1985년에는 16.7%에 달해 그 비율이 계속 증가했다. 이로 인해 대금과 대출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외화예금의 경우 외국인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45%나 되었다. 이들 다국적은행은 막강한 자금력, 다양한 금융상품, 정부의 각종 특혜조치로 국내은행에 비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확립된 우리나라의 재벌은 산업과 금융부문에서의 기반강화로 경제를 총괄적으로 지배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함에 따라 국제분업 관련 속에서 국내 중소자본은 국내 독점자본의 하청생산을 담당하고, 국내 독점자본도 또한 다국적기업의 하청생산을 담당하는 다국적기업의 국제적 하청생산기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분업구조의 창출은 금융적·기술적 종속을 심화시키고 아울러 재생산적 종속을 더욱 구조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축적과정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경제적 종속은 강화되면서도 재벌은 국가의 각종 특혜 속에서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경제, 외국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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