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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아프리카 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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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174,315명 (2024년 추계) |
수도 | 비사우 |
면적 | 36,125.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기니 비사우 공화국 (Republic of Guinea Bissau) |
기후 | 열대우림성기후 |
민족 구성 | 발란테족(30%), 훌라족(20%), 만딩고족 |
언어 | 포르투갈어 |
정부/의회형태 |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종교 | 토착종교(65%), 이슬람교(30%), 그리스도교 |
화폐 | 세파프랑 (XOF)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번호 | 245 |
GDP | USD 1,347,000,000 (2017) |
전압 | 220V / 50Hz |
도메인 | .gw |
요약 서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1974년까지는 포르투갈령 기니로 불렸다. 농업이 GN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지만 전국토의 10%만이 경작가능하다. 국민총생산 증가율이 인구증가율을 밑돌고 있으며, 1인당 GNP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열악한 보건위생으로 유아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은 약 43세밖에 되지 않는다. 교육을 등한시한 포르투갈 식민정책의 결과로 성인의 약 70%가 문맹자이다. 면적 36,125.0㎢, 인구 2,174,315(2024 추계).
목차
접기-
한국과의 관계
- ┗ 외교
- ┗ 경제·통상·주요 협정
- ┗ 문화 교류·교민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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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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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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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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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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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도는 비사우이다. 대서양 해안에서 남서쪽에 떨어져 있는 비자고스(비사고스) 제도도 이 나라의 영토에 속하며, 북쪽으로는 세네갈, 동쪽과 남쪽으로는 기니와 접해 있다.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83년 기니비사우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973년 설립된 주세네갈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기니비사우의 영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1985년 비에이라 대통령이 내한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2년 기준 한국의 기니비사우 수출액은 1,562만 달러, 수입액은 1,261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목은 의료용품, 유기화학품, 인쇄서적 및 신문 등이며 수입품목은 어류 및 갑각류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 경제과학기술협정(1988년) 등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기니비사우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8명이며,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기니비사우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12명이다.
자연환경
기니비사우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크게 3지역, 즉 해안 저지대, 내륙 평원지대, 북동부의 고지대로 나눌 수 있다. 해안 저지대에는 광대한 맹그로브 습지와 리아스식 해안(또는 익곡)이 발달되어 있으며, 내륙지대 북동쪽으로 거의 전국토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평균강우량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해안지대가 2,500㎜ 이상이며, 내륙지대는 1,800∼2,000㎜이다. 이 지역에서는 쌀이나 사탕수수 같은 열대작물들이 재배된다. 내륙 평원지대는 대략 북서쪽의 세네갈 국경과 게바 강(높낮이가 고른 기니비사우 국토를 구불구불 흐르는 여러 강 중의 하나) 사이에 걸쳐 있으며, 숲이 울창하고 해안지대만큼이나 기온이 높아 연평균기온이 26∼27℃에 이르며, 강우량은 1,500∼1,800㎜이다.
북동부의 고지대에는 외곽지역에 솟아올라 있는 기니의 푸타잘롱 고원(높이 180m), 기니비사우 중심부에 있는 바파타 고원, 북동쪽에 위치한 가부 고원 등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 일대의 강우량은 1,300㎜ 이하로 떨어지며, 건기(11∼4월)가 남동부지역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지역은 사실상 세네갈과 기니의 사바나 지대 연장선상에 있어,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수수·기장·목화 같은 작물들을 재배하기에 유리하다.
기니비사우에서는 물가에 사는 야생동물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악어·뱀·사다새(펠리칸)·홍학 등이 많다. 사바나 지역이기 때문에 가젤·표범·하이에나 등도 많다. 보크사이트와 인산염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나 아직 개발되지는 않고 있다.
국민
기니비사우의 인구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 추이는 1990년 2.4%에서 2000년 1.9%, 2010년 2.5%, 2020년 2.45%로 완만한 증가폭을 그려왔다. 2024년 기준 인구수는 217만 4,315명이며 인구밀도는 76명/㎢이다. 연인구증가율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국민 대다수가 농촌생활을 하고 있으며, 인구의 2/5 이상이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
기니비사우에서는 니제르콩고어족에서 파생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4개의 주요종족, 즉 발란타브라사족·풀라니족·말링케족·만디아코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란타브라사족은 애니미즘을 신봉하고 있으며, 국가개념이 없이 가족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풀라니족은 본래 이슬람교를 믿는 목축민으로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다. 만디아코족은 원예업이 주업이며, 말링케족은 농업과 상업에 종사한다.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지만 각 부족은 부족 고유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이는 또 다시 여러 방언으로 나누어진다. 국민 대부분이 토착종교를 믿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중요한 소수 종교이다. 그리스도교는 10%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
기니비사우에는 미약하나마 농업경제가 발달되어 있다. 국민총생산(GNP) 증가율이 인구증가율을 밑돌고 있으며, 1인당 GNP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농업이 GN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인구의 4/5 정도가 이에 종사한다. 전국토의 10%만이 경작 가능하다. 국토의 일부가 사헬(사하라 사막 주변의 초원지대)로 강우량이 불규칙한 만큼 작물생산 또한 불규칙하며, 따라서 관개사업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사유지를 어느 정도 허가하고는 있으나, 토지의 대부분이 국유화되어 있어 집단농장 형태로 경작되고 있다. 땅콩과 코코넛은 주요한 환금작물로서 총수출소득액의 약 2/5를 차지한다. 캐슈너트도 수출된다. 주요내수작물로는 쌀, 카사바, 요리용 바나나, 고구마, 사탕수수 및 기타 채소류와 멜론이 있다. 곡물류 생산은 국내수요에도 미치지 못해 일정량의 수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기니비사우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국가 대행기관만이 판매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상당량의 땅콩이 세네갈을 통해 밀수출되고 있다.
국토의 46% 정도가 목초지로, 경작에 부적당하다. 목축업은 주로 발란타브라사족과 이슬람교도 유목민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다. 주요가축은 소·염소·돼지이며 우유 생산이 저조해 낙농제품의 수입이 불가피하다. 전국토의 약 38%가 숲이며, 비실롬(bissilom)이라 불리는 단단한 목재가 수출되고는 있으나 벌목된 목재의 대부분이 연료로 이용된다. 어업은 소련·알제리·프랑스·기니 기업 간에 합작으로 발전되었으며, 국내수요를 충족시킴은 물론 총수출의 약 1/10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고는 하나, 실제 채굴되는 광물은 극히 적다. 현지의 벽돌 및 타일공장에 보급되는 점토가 채굴되는 유일한 광물이다. 주요산업은 야자유와 야자열매, 코프라(야자나무 열매의 배젖을 말린 것), 껍질 벗긴 땅콩, 땅콩 기름, 냉동생선과 생선통조림과 관련된 식품가공업이다. 직물·의류·맥주·청량음료·럼주와 관련된 제조업도 행해지고 있다. 전기 에너지는 수입 화석연료를 이용한 화력발전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정부는 경제 전분야를 관리 감독한다. 어려운 국영산업의 운영상태는 1970년대 후반 및 1980년대초에 있었던 사헬 지역의 가뭄과 메뚜기 재해, 밀수출로 인한 피해 등으로 더욱 악화되어 기니비사우 정부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대외원조를 받아오는 주요상대국은 포르투갈,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유럽연합(EU) 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며, 이들로부터 들여온 차관액수가 국가 총예산의 약 2/3에 달한다.
기니비사우에는 철도시설이 전혀 없으며, 포장도로는 전국 도로의 1/10에도 못미친다. 인구밀집지역에서는 내륙수로가 항해수단으로 이용되며, 이는 국내수송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항구는 비사우이며 근교의 비사랑카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수출은 수입의 1/5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수출품목은 주로 농산물과 어류이다. 이들은 대부분 루마니아·포르투갈·중국·프랑스로 수출된다. 주요수입품은 식량·음료·직물·의류·석유제품·수송장비·기계·예비부품이며, 포르투갈·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프랑스·독일·네덜란드에서 들여온다.
정치와 사회
기니비사우는 1984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좌익성향을 띤 '아프리카 기니-카보베르데 독립당'(PAIGC)이 지배하는 일당제 국가이다.
입법기관인 국가인민의회는 1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접선거로 구성된 8인 지역의회가 의원 전체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은 당국가평의회로, 인민의회 의원 가운데에서 선출된 15인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0년대 중반 기니비사우를 통치한 정치적 인물은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 준장으로, 그는 국가평의회 의장 및 정부의 수반, 군총사령관을 역임했고 각료회의를 통해 기니비사우를 통치했다. PAIGC는 1980년 기니비사우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양국 관계가 단절될 때까지 기니비사우와 카보베르데 양국 정부를 지배했다. 1980년의 쿠데타 직후 카보베르데는 독자적인 정당을 설립했다.
국민보건위생 상태는 전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많은 주민이 아직도 결핵·백일해·장티푸스·세균성이질·말라리아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열악한 보건 상태는 기니비사우의 높은 유아사망률과 약 43세밖에 안되는 평균수명이 가장 잘 대변해준다. 학교교육은 시설과 정규교사의 부족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교육을 등한시한 포르투갈 식민정책의 결과로, 현재 기니비사우 성인의 약 70%가 문맹자이다. 국내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No Pintcha)은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역사
1,000여 년 전에 기니비사우 해안에는 철기를 사용하는 농경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관개와 건지농법을 이용한 벼농사에 특히 뛰어났으며, 수단 서부의 인근지역에 소금을 공급해주는 주요공급원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말리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가부라는 속국이 되었다. 가부는 1546년 이후에 실질적인 자치왕국이 되어, 1867년까지 존속했다.
기니 해안에 최초로 상륙한 외국인은 포르투갈인들로, 그 시기는 1440년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포르투갈인들은 기니에서 카보베르데 제도에 이르는 지역 일대에서 노예를 수입했는데, 그들의 노예 무역은 신세계 개척으로 노예 인력수요가 늘어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기니 일대의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선포했으나, 기니비사우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은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기니비사우 경제는 노예매매업을 제외하고는 정체되어 있었으며, 부족간에 전쟁도 잦았다. 포르투갈인들은 노예 무역이 끝나면서부터 새로운 이권을 찾아 내륙지대에 파고들었고, 1879년 기니비사우는 카보베르데와 분리되어 통치되기 시작했다. 내륙지대에 대한 포르투갈인들의 정복사업은 때로는 느린 속도로 때로는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이 정복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1915년에 종결되었으며, 토착민들의 산발적인 저항이 1936년까지 계속되었다. 포르투갈의 군사·행정 거점들에 대한 기니비사우 토착민들의 공격은 1961년 PAIGC 소속 게릴라들의 습격에서 비롯되었다. 10년 이상의 전쟁 끝에 1974년 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1977년에는 카보베르데와의 합병 노력이 실패로 끝났고, 1980년에는 기니 출신의 비에이라 준장이 주도한 쿠데타가 성공, 기니비사우 혁명평의회가 수립되었다. 당시 혁명평의회는 카보베르데 흑인들을 평의회 구성에서 제외시켰다. 기니비사우에 입헌정체(立憲政體)가 다시 수립된 것은 1984년 5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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