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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

다른 표기 언어 高麗大藏經

요약 현재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1236년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다. 현재의 판본은 1,516종에 6,815권, 경판의 수는 8만 1,258매이다. 이 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체재와 내용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장경은 불교도의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각 나라 고유의 언어로 번역·보관되었다.
일본의 쓰시마섬과 국내에 일부 남아 있는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완성하였다. 이후 의천이 1092년부터 9년에 걸쳐 속장경을 새겼는데 병화로 소실되었다.

고려대장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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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후대 불교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불교가 동양의 여러 나라로 전래되면서 그 나라 고유의 언어로 번역·보관되었다.

최초의 한문대장경은 중국 송(宋)나라 때 완성된 송판대장경(宋版大藏經:官版大藏經)이며, 그 이후 2번째로 대장경이 완간된 것은 고려 제8대 현종(顯宗) 때이다.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이를 부처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시작한 대장경 조조는 만 18년이 소요되었다. 이것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하는데 송나라 관판대장경의 내용과 체재를 토대로 하여 복각하였다.

그뒤 초조본의 보완작업은 계속되었고, 그 판본은 처음에는 강화도 선원사(禪源社)에 나중에는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봉안·보존되어왔으나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그러나 인본(印本)의 일부가 일본의 쓰시마섬[對馬島]과 국내에 남아 있어서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뒤 이 초조대장경을 보완하는 작업이 계속되었으며, 속장경(續藏經)은 제11대 문종의 넷째아들인 의천(義天)의 주도하에 간행되었다.

의천은 1085년(선종 2)에 송나라로 가서 14개월 동안 3,000여 권에 달하는 불교 장서를 수집하였다. 정통 경장(經藏)·율장(律藏)뿐 아니라 중국 등에서 유통되던 권위있는 논서들을 총괄하였다. 귀국 직후 의천은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1092년부터 속장경 조조사업을 시작하여서 그때까지 수집한 1,010부, 4,740여 권의 불전을 9년에 걸쳐 경판으로 새겼다.

그러나 이 속장경도 언제 병화로 일실되었으며 어디에 봉안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의천이 지은 불경목록집인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을 통해서 속장경 안에 어떠한 문헌들이 들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속장경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再雕大藏經)을 만들 때까지 그 판각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었다. 현재 속장경 판본의 일부는 전라남도 송광사(松廣寺)와 일본 도다이 사[東大寺]에 남아 있다.

현재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1236년(고종 23)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조조되었다. 일을 주관한 곳은 대장도감(大藏都監)이었고, 1251년 9월에 완성되었다.

현재의 판본은 1,516종에 6,815권, 경판의 수는 8만 1,258매이다. 이 가운데에는 명백히 후세에 판각된 15종의 문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유판(補遺版)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조선 초기까지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언제 해인사로 옮겼는지는 불분명하다. 현재까지는 1398년(태조 7)에 옮겼으리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2,000명의 군인들이 호송하고,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승려들이 독경(讀經)했다고 한다.

해인사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체재와 내용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관함의 순서는 천자문의 순서대로 배열되었으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다. 특히 높게 평가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 때문이다. 첫째, 최초의 한문대장경인 송나라 관판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자료이며, 또 없어져 버린 거란판대장경(契丹版大藏經)의 내용도 짐작할 수 있다. 그 예로 〈대승법계무차별론 大乘法界無差別論〉 1권은 어느 대장경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으나, 오직 고려대장경에만 수록되어 있다.

둘째, 사전류의 저술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법원주림 法苑珠林〉·〈일체경음의 一切經音義〉·〈속일체경음의〉 등 주요한 전적(典籍)과 〈대승보살정법경 大乘菩薩正法經〉·〈제법집요경 諸法集要經〉 등 중요한 대승경론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고려대장경은 전후 5차례에 걸쳐 간행·유포된 역사적 기록이 있다.

① 고려 말엽에 이색(李穡)이 대장경 1부를 인출하였다.

이것은 여주 신륵사에 봉안되어 있다.

② 조선 초기까지 왜구의 침략이 빈번하였는데, 그들은 언제나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요구하였다. 1389년부터 1509년까지 사이에만 전후 83차례에 걸쳐 청구한 그들의 요구를 대부분 거절하였지만 간혹 인본(印本)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③ 1410년(태종 10) 경기도·황해도·충청도 등의 관찰사에게 명하여 도내에서 생산되는 인경지(印經紙) 267묶음을 해인사로 보내 인경(印經)하였다.

이때 일에 동원된 승려는 200여명이었다고 한다.

④ 세조는 신미(信眉)·수미(守眉)·학열(學悅) 등으로 하여금 해인사대장경 50부를 인출하여 각 도의 명산거찰에 나누어 봉안토록 하였다.

⑤ 조선말 용악(聳岳)이 1898년 4부를 인출하였는데, 통도사·해인사·송광사 등에 각각 1부씩을 봉안하였다.

통상 법보(法寶) 종찰로 손꼽히는 해인사는 이 대장경과 관련된 의례를 지금도 실시하고 있다. 고

려 중반부터 장경도량(藏經道場)이라는 법회가 실시되었는데, 당시에는 매년 봄·가을에 6일과 7일씩 거의 정기적으로 집행하였다. 근래에는 1년에 1번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도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장경,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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