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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려대장경이라 말하는 것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대장경을 가리킨다.
원래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으로 구분되는데, 해인사대장경을 고려대장경으로 통칭하는 것은 고려대장경 중 그것만이 현재 해인사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촉판대장경 이래 완벽한 대장경이 간행된 것은 고려의 현종 때였다. 이것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고 하는데, 나라와 백성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려는 기원의 소산이었다.
이 작업은 적어도 1011(현종 2~29년)의 18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내용과 체재는 촉판대장경을 토대로 한 것이엇으나 몽골족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그 일부는 국내 및 일본의 여러 곳에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거란판대장경은 이후의 간행으로 자국 내의 불전들과 초조대장경을 토대로 삼았고, 거란의 도종(道宗)은 1063년 대장경 전질을 고려에 보내기도 하였다.
초조대장경에 만족하지 않은 고려에서는 보완 작업을 계속하던 중, 문종의 넷째아들 의천(義天)의 주도 하에 중국과 한국의 여러 선사(禪師)들이 저술한 문헌까지 총망라하는 속장경(續藏經)의 간행에 착수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국내의 고서를 수집함은 물론 송나라로 가서 3,000여 권의 문헌을 수집하였고, 요(遼)나라와 일본에서도 서적을 구입하였다.
1092년 본격젼인 간행에 착수한 이래 1,010부 4,740여 권의 문헌을 9년에 걸쳐 목판에 새겼다. 그러나 이 대장경 역시 소실되었으며, 다만 그 간행본의 상당수가 일본 도다이 사[東大寺]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내의 송광사에서도 일부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해인사대장경을 만들 때까지는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해인사대장경 판각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한편 의천이 작성한 목록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이 현존하므로 속장경에 어떤 문헌들이 수록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해인사대장경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족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간행되었다.
고종 때인 1237년에 착수하여 1251년 완성했다. 소위 '팔만대장경'이라 하듯이 완성 당시 경판의 총수는 8만 1,137매였고 현재 보관되어 있는 것은 8만 1,258매에 이르며, 1,516종의 문헌 6,815권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후대에 판각된 15종의 문헌이 추가되었다. 조선시대 초까지는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었던 것이 해인사로 옮겨져 해인사대장경으로 불리게 되었고, 옮긴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異論)이 있으나 1398년(태조 7)에 옮겼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해인사대장경은 첫째,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여러 차례의 교열을 거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문헌의 종류[部]나 양[卷]에 있어서는 이보다 상회하는 다른 나라의 대장경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중국 찬술의 논서[註疏]나 잡서를 포함시켰거나 그 종류와 양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 착오에 기인하는 바가 있다. 둘째, 해인사대장경은 최초의 대장경판인 송나라 촉판대장경을 토대로 하면서 거란판대장경을 비롯한 당시의 권위있는 모든 대장경과 대조하여 엄밀하게 교정하였으므로, 지금은 사라진 촉판대장경과 거란판대장경의 내용을 아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셋째, 독자적으로 수집한 귀중한 문헌이 수록되어 있다. 즉 이전의 다른 판본에는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20종 가량의 불전이나 각종 목록 및 사서(辭書) 종류 등, 이 대장경이 수록하지 않았더라면 영구히 알려질 수 없을 뻔한 귀중한 문헌들이 실려 있다. 현재 해인사대장경은 1976년 동국대학교에서 색인 1권을 포함한 48권의 축소판으로 영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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