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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다른 표기 언어 大藏經 동의어 일체경, 一切經

요약 불교 성전, 즉 불전의 총칭인 동시에 그 불전들을 집합한 총서.

일체경이라고도 하고 약칭하여 장경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에 수록되는 불전이란 경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붓다가 직접 설한 것으로 알려진 경(經)과 율은 물론이고, 그것들에 대한 일차적인 주석인 논과 이 논에 대한 주석인 소(疏) 등을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여러 종류의 불교 관계 문헌들을 포함한다.

즉 경전뿐 아니라 후대 불교도의 저술, 불교의 역사·전기서, 기타 불교에 관계된 주요 저술을 포함한다. 따라서 대장경은 불교 연구에 관한 자료 문헌을 총망라한 것이며, 인도·중국·한국 또는 남방 국가 등 불교가 전파된 여러 나라에 걸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방대해지게 되었다.

불전들이 대장경 또는 일체경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규모로 집합·수록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서부터이지만, 그 전통은 팔리(Pāli) 삼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정되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석가모니 설법을 종합하여 확정한 결집에서 비롯된다. 대장경은 크게 팔리 삼장, 한역대장경, 티베트 대장경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3가지 외에 몽고어나 만주어로 된 것도 있었으나 그 내용은 밝혀져 있지 않다.

팔만대장경

해인사 장경각 내부에 진열된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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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 삼장

불교에서는 경전이 성립하게 된 역사적 사건을 결집이라 한다. 제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르침을 일제히 읊는다는 뜻에서 원래 합송(合誦)이라 했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불설로 정하는 방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 결집방식은 불교 경전의 정확성과 확고한 권위를 대변한다.

전설에 의하면 인도에서 4차례의 결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중 대장경의 성립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제3차 결집이다. 제2차 결집까지는 그 내용이 암송으로 구전되었고 제3차 결집에서 경·율·논의 삼장 체재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제3차 결집은 아소카 왕 치하 마가다 국의 수도에서 목갈리푸타 티사의 주도하에 1,000인의 비구를 소집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는 경장·율장에 이어 논장의 편집을 실행함으로써 소위 '팔리 삼장'이 완비되었다. 제4차 결집은 일반적으로 〈대비바사론 大毘婆沙論〉을 편집했던 일을 가리킨다.

중국의 현장이 번역한 〈대비바사론〉의 발문에 의하면 이 결집은 불멸 400년(2세기 전반) 대월지국의 카니슈카 왕 치하에서 이루어졌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왕은 협존자와 상의하여 삼장에 통한 500인의 비구들을 소집하여 카슈미르에서 결집을 시작했는데, 삼장에 관한 전체 30만 송, 660만 언에 달하는 대주석을 완료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방불교권에서는 제3차까지만을 역사적인 결집으로 인정하여 독자적으로 제4~6차 결집을 가진 바 있다.

팔리 삼장은 팔리어로 전해진 불전의 총칭이다. 삼장의 원어 티피타카(tipitaka)는 '3개의 광주리'를 뜻하는데, 각각 경장과 율장과 논장을 집합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팔리어는 원래 서인도의 방언이었던 것이, 붓다의 입멸 후 초기 교단이 서인도로 확장됨에 따라 성전의 언어가 되었던 것 같다.

BC 3세기 무렵 아소카 왕 시대에 그의 아들로 전해지는 마힌다에 의해 불교가 스리랑카로 전해졌고 스리랑카는 팔리어를 불교 언어로 사용함으로써 이 전통이 이후 미얀마·타이·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 확산되어 소위 남방불교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팔리 삼장은 남방불교의 대장경인 셈이지만, 엄격히 말하면 현재 통용되는 대장경의 차원에는 이르지 못한다. 우선 남방불교가 원시불교의 전통을 고수하므로 경장은 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 대승 경전을 포함하지 않으며, 논장에 포함되는 문헌은 7종에 불과하다. 더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성된 많은 교리 강요서나 성전 주석서 또는 사서 등은 '장외'로 취급된다.

팔리 삼장이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유럽 학자들이 연구·출판하면서부터이다. 1881년 T. W. 리스 데이비스가 영국 런던에서 팔리 성전 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한 이래 팔리 삼장의 원전 및 영역본은 유명 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출판되었다. 현재 삼장은 출판이 완료되었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장외의 문헌도 다소 간행되었다. 팔리어는 고유의 문자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유럽에서의 원전 출판에는 로마자가 이용된다. 남방불교 국가들은 각기 자국의 문자로 삼장을 출판하였으며,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를 표기하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출판하고 있다.

한역대장경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은 한문으로 번역된 불전의 총칭이며, 중국·한국·일본의 불교도가 저술한 문헌도 포함된다.

대승불교의 흥기 이후 인도에서는 새로운 경전과 논서들이 작성되었고, 이런 문헌들을 통해 중국에는 대승불교가 전래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삼장 체재로는 불설(佛說) 또는 이와 대등한 권위로 전수되는 새로운 문헌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부파불교는 일반적으로 삼장 체재를 채용했지만, 부파불교 당시에도 잡장(雜藏)이라는 새로운 분류를 추가한 부파도 있었다.

나아가 대중부(大衆部)의 경우 다시 금주장(禁呪藏)을 더하여 5장을 채용했고, 법장부(法藏部)의 경우에는 주장(呪藏)과 보살장(菩薩藏)을 삼장에 추가하였다고 한다. 결국 대승불교가 등장한 이후에는 삼장 체재의 전통을 고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지도론 大智度論〉도 대승 경전이 소승불교에서 설하는 삼장의 분류에는 적용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인도불교를 수용한 이래 숱한 문헌들을 무질서하게 번역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인 저작의 새로운 문헌들도 다수 출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중국불교 특유의 분류법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분류하여 집합한 불전 전체를 대장경 혹은 일체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경우의 대장경이란 일군의 총서로 실제 간행된 판본이 아니라 불전들을 집대성하여 분류·정리한 문헌 목록이다. 이런 목록을 경록(經錄)이라 한다.

번역 사업이 성행하면서 번역 경전들을 바르게 전수하기 위해 작성한 목록으로 유명한 최초의 것은 전진(前秦)의 도안(道安)이 지은 〈종리중경목록 綜理衆經目錄〉이나, 이것은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전체를 8록(錄)으로 분류하여 639부 886권을 수록하였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이후 많은 목록이 작성되었는데 유명한 것으로는 승우(僧祐)의 〈출삼장기집 出三藏記集〉·〈법경록 法鏡錄〉·〈언종록 彦琮錄〉·〈정태록 靜泰錄〉, 비장방(費長房)의 〈역대삼보기 歷代三寶記〉, 도선(道宣)의 〈대당내전록 大唐內典錄〉, 지승(智昇)의 〈개원석교록 開元釋敎錄〉, 원조(圓照)의 〈정원신정석교목록 貞元新定釋敎目錄〉 등이 있다. 이밖에 간행된 대장경의 각 판본에도 목록이 작성되었는데, 이런 목록으로는 송나라 때 간행된 판본인 〈지원법보감동총록 至元法寶勘同總錄〉, 약칭 〈지원록 至元錄〉이 유명하다.

이 모든 목록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개원록〉으로 약칭되는 〈개원석교록〉이다. 여러 목록들이 작성되면서 불전의 분류도 통일되었는데, 당나라 중기에 작성된 〈개원석교록〉의 입장록(入藏錄)이라는 분류가 특히 후세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장경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위경(僞經)과 의경(疑經)을 그 기준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이 〈개원록〉에서는 1,076부 5,048권의 일체경을 대승경·대승율·대승론·소승경·소승율·소승론·성현집의 7종으로 분류하고, 성현집의 108부 541권 중에 인도 논사들의 전기 종류나 중국인의 저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포함된 중국인의 저작은 주로 전기·여행기·목록 등으로 그 수는 많지 않다. 이후 빠진 것이 보충되고 새로 번역된 것이 증보되어 한역대장경은 점점 양적으로 확대되었고, 중국인의 저작도 많이 끼어들게 되었다.

이때까지의 대장경은 거의가 사본이어서 전화(戰禍)나 재해 등으로 상실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영구보존을 위해 돌이나 목판에 새기기 시작했다. 즉 대장경을 일괄적으로 모아 보존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는 조직적인 서사(書寫), 석각(石刻), 간행 등의 형식으로 실행되어 갔다.

석각으로는 북주(北周)의 불교 억압 이후 정완(靜琬)이 개시한 허베이 성[河北省] 팡산[房山]의 석경(石經)이 특히 유명하다. 그는 말법의 도래에 대비하여 불전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605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약 30년에 걸쳐 작업에 몰두했다. 이 작업은 이후 면면히 이어져 원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사와 석각에 비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 것이 대장경의 간행이다.

목판에 대장경을 새기는 이런 간행은 송나라 태조의 발원으로 착수하여 12년에 걸쳐 태종 때(971)에 완성된 촉판대장경(蜀版大藏經) 이래 한국의 고려대장경을 거쳐 근대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판본으로 지속되었다. 이들 중 최초로 간행된 촉판대장경은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 또는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이라고도 불린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앞서 말한 지승의 목록인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불전들(1,076부 5,048권)을 모두 새긴 데 있다.

13만 매의 목판에 새겨서 천자문 순으로 배열한 480개의 함에 차례로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1125년 금나라가 침입한 뒤 사라졌다. 이어서 원나라 시대에 간행된 원판대장경(元版大藏經:1269~85)이 있고, 명나라 시대에도 2차례 간행되었다. 중국 밖에서는 거란판대장경(契丹版大藏經)과 유명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등도 간행되었다.

고려대장경

흔히 고려대장경이라 말하는 것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대장경을 가리킨다.

원래는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으로 구분되는데, 해인사대장경을 고려대장경으로 통칭하는 것은 고려대장경 중 그것만이 현재 해인사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촉판대장경 이래 완벽한 대장경이 간행된 것은 고려의 현종 때였다. 이것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고 하는데, 나라와 백성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려는 기원의 소산이었다.

이 작업은 적어도 1011(현종 2~29년)의 18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내용과 체재는 촉판대장경을 토대로 한 것이엇으나 몽골족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그 일부는 국내 및 일본의 여러 곳에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거란판대장경은 이후의 간행으로 자국 내의 불전들과 초조대장경을 토대로 삼았고, 거란의 도종(道宗)은 1063년 대장경 전질을 고려에 보내기도 하였다.

초조대장경에 만족하지 않은 고려에서는 보완 작업을 계속하던 중, 문종의 넷째아들 의천(義天)의 주도 하에 중국과 한국의 여러 선사(禪師)들이 저술한 문헌까지 총망라하는 속장경(續藏經)의 간행에 착수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국내의 고서를 수집함은 물론 송나라로 가서 3,000여 권의 문헌을 수집하였고, 요(遼)나라와 일본에서도 서적을 구입하였다.

1092년 본격젼인 간행에 착수한 이래 1,010부 4,740여 권의 문헌을 9년에 걸쳐 목판에 새겼다. 그러나 이 대장경 역시 소실되었으며, 다만 그 간행본의 상당수가 일본 도다이 사[東大寺]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내의 송광사에서도 일부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해인사대장경을 만들 때까지는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해인사대장경 판각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한편 의천이 작성한 목록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이 현존하므로 속장경에 어떤 문헌들이 수록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해인사대장경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족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간행되었다.

고종 때인 1237년에 착수하여 1251년 완성했다. 소위 '팔만대장경'이라 하듯이 완성 당시 경판의 총수는 8만 1,137매였고 현재 보관되어 있는 것은 8만 1,258매에 이르며, 1,516종의 문헌 6,815권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후대에 판각된 15종의 문헌이 추가되었다. 조선시대 초까지는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었던 것이 해인사로 옮겨져 해인사대장경으로 불리게 되었고, 옮긴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異論)이 있으나 1398년(태조 7)에 옮겼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해인사대장경은 첫째,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여러 차례의 교열을 거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문헌의 종류[部]나 양[卷]에 있어서는 이보다 상회하는 다른 나라의 대장경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중국 찬술의 논서[註疏]나 잡서를 포함시켰거나 그 종류와 양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 착오에 기인하는 바가 있다. 둘째, 해인사대장경은 최초의 대장경판인 송나라 촉판대장경을 토대로 하면서 거란판대장경을 비롯한 당시의 권위있는 모든 대장경과 대조하여 엄밀하게 교정하였으므로, 지금은 사라진 촉판대장경과 거란판대장경의 내용을 아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셋째, 독자적으로 수집한 귀중한 문헌이 수록되어 있다. 즉 이전의 다른 판본에는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20종 가량의 불전이나 각종 목록 및 사서(辭書) 종류 등, 이 대장경이 수록하지 않았더라면 영구히 알려질 수 없을 뻔한 귀중한 문헌들이 실려 있다. 현재 해인사대장경은 1976년 동국대학교에서 색인 1권을 포함한 48권의 축소판으로 영인하였다.

대정신수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은 20세기 초(1924~34) 일본에서 활자판으로 간행된 대장경이다. 이에 앞서 일본에서도 몇 차례의 대장경판 간행이 있었는데, 19세기 말부터 활자판에 의한 간행이 본격화되었다.

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한 최초의 대장경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간행된(1880~85) 대일본교정축쇄대장경이다. 이것은 고려대장경을 모범으로 삼고 중국과 일본의 불전으로 증보하여 1,916부 8,534권을 수록하였다. 이어서 7,082권을 수록한 대일본교정장경, 7,140여 권을 수록한 대일본속장경이 간행되었다.

활자판 간행 대장경으로는 가장 우수한 대정신수대장경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으면서도 독자적인 분류로 불전을 배열했다. 그리고 송·원·명의 중국 대장경과 자국에 소장된 사본들을 함께 대조하였으며, 중국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사본으로부터 많은 문헌을 선택하고 중국과 일본의 문헌들로 증보하였다.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 일본 찬술부 29권, 둔황 사본 1권, 도상부 12권, 목록 3권의 총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85권까지에 수록된 문헌은 3,053부(중복을 제외하면 2,920부) 11,970권에 이른다. 제55권까지의 재용은 지금까지 전해져온 대장경에 상당하며 2,265부 9,041권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의 배열은 경전의 역사적 발전 순서를 고려하고 내용에 의거한 새로운 분류에 따랐다.

도상부 12권은 불교 미술을 촬영하여 수록한 것으로 이 방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목록 3권은 각종 대장경 목록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목록을 망라한 것으로, 이를 통해 각종 대장경의 내용과 유명 사원들이 소장한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다.

티베트 대장경

티베트 대장경은 티베트어로 번역된 불전의 집성으로, 흔히 서장대장경(西藏大藏經)으로 통한다.

7세기 초에 고유의 문자가 성립되었던 티베트에서는 779년부터 역경(譯經) 사업이 시작되었고, 824년 티베트 대장경의 현존하는 목록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덴칼마 목록 Ldan-dkar-ma〉이 작성되었다. 여기에 당시까지 번역되었거나 번역중인 대승과 소승 및 현교(顯敎)와 밀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의 제목을 23항 734부로 분류하여 기록했다.

그러나 분류 방식은 현존하는 티베트 대장경이나 한역대장경과는 현저히 다르며, 티베트와 중국 양쪽의 현존하는 번역 문헌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문헌명도 기록되어 있다. 843년에 시작된 왕조 분열에 의해 역경은 중단되었으나, 11세기 이후 밀교 관계의 경전과 논서들이 번역되면서 4차례의 대장경 간행이 있었다. 티베트 대장경은 몽골 등에도 영향을 끼쳐 1310년 30여 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티베트어로부터 몽골어로 번역·간행한 바 있고, 또한 1772년부터 약 20년간에 걸쳐 만주어로도 번역되어 완간된 바도 있다.

티베트 대장경이 성립된 데에는 〈덴칼마 목록〉과 같은 목록집 외에도 〈번역명의집 飜譯名義集〉과 같은 번역 용어집이 크게 공헌했다.

후대의 번역에서는 〈번역명의집〉에 의해 번역이 개선되거나 번역용어가 통일되었다. 현재의 티베트 대장경은 카규르(Bkaḥ-ḥgyur 甘殊爾)와 텐규르(Bstan-ḥgyur 丹殊爾)로 양분되어 있다. 전자를 불설부(佛說部), 후자를 논소부(論疏部)라고 한다. 경장·율장·논장의 삼장과 비교하면 경장은 카규르에 포함되고 논장은 텐규르에 포함된다.

티베트 대장경은 율장을 분리하여 율장의 근본문헌은 카규르에, 이의 주석은 텐규르에 포함시키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문헌들의 배열은 판본에 따라 다르나 델게(sdedge)판을 기준으로 하면 카규르은 100함 1,108부, 텐규르는 213함 3,461부로 구성되어 있다. 티베트 대장경이 처음으로 목판에 인쇄된 것은 13세기 무렵인데, 이것을 '날탕(Snar-thaṅ) 고판(古版)'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후 1410년과 1602년에도 다시 새겨졌고 1730년에는 달라이 라마의 명에 의해 대규모로 개정되었는데, 이것이 정본(定本)으로 취급되었으며 '날탕 신판(新版)'이라고 불린다. 같은 시기에 리탕(Li-thaṅ)판 및 그밖의 판본에 의거하여 델게판이 완성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명나라 시대에(1480) 중국 최초의 티베트 대장경인 영락판(永樂版)이 완성되었고, 이어서 만력판(萬曆版)과 청나라의 강희판(康熙版)이 등장했다.

1684년에 시작하여 1700년 완성한 이 강희판을 흔히 북경판(北京版)이라고 부른다. 이밖에도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여러 판본이 간행되었다. 1920년에는 달라이 라마 13세의 칙령으로 라사(Lha-sa)판의 간행이 시작되었으나, 1934년 달라이 라마 13세의 서거로 간행사업은 중지되어 카규르에 그치고 말았다.

티베트 대장경은 한역대장경과 비교하면 첫째, 한역과 공통된 문헌은 551부에 불과하고 나머지 중 3,000부 이상이 밀교 관계의 것이다.

둘째, 한역은 의미를 밝히는 데 치중하나 티베트역은 산스크리트 원문에 충실하다. 셋째, 번역을 점차 고쳐나가 과거의 것을 버리고 이역본(異譯本)을 남기지 않았다. 넷째, 티베트인의 저작을 대장경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경장, 고려대장경, 논장, 팔리 율장,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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