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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원시사회가 해체된 후 중세 봉건제사회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되는 서양 사회의 특징.
개방적인 지리조건을 갖추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경부터 도시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도시문명의 성장 결과 문자와 청동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다수의 도시국가가 성립하여 국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체제를 갖추었다. 대표적인 도시국가 우르에서는 귀족과 성직자·평민·노예로 사회계층이 나뉘어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국제적인 교역으로 화폐경제가 일찍부터 발달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정치적 지배자가 사제를 겸하는 신정정치가 행해졌다. 특히 BC 18세기에 바빌로니아의 유명한 왕이었던 함무라비가 반포한 법전은 최초의 성문법전이라는 점에서뿐 아니라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유명하다(→ 함무라비 법전).
이집트 문명은 고대문명 중 가장 오래 지속된 경우에 속한다.
BC 3000년경에 최초 왕조가 성립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피라미드의 벽화와 기록을 비롯한 파피루스, 로제타석(石) 등의 연구를 통해 많은 사실이 알려져 있다. 여기서도 국왕인 파라오는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나일 강의 정기적인 범람은 천문학과 역법, 기하학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고 영혼불멸의 사상으로 인해 미라가 만들어졌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관개사업이 농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넓은 지역을 통합하는 강력한 권력의 출현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완전한 계급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전제군주가 주민 일반을 예속시켜 지배하게 되었고, 피지배층의 인격적 독립성은 지극히 미미했다. 고대사회를 노예제사회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들 지역의 피지배층이 전형적 의미의 노예가 아니라 하더라도 총체적으로 노예와 같은 처지에 있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노예제가 하나의 경제제도로 자리잡고, 그에 입각한 생산활동이 해당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던 경우는 그리스·로마가 대표적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를 전형적인 노예제사회라고 한다. 그리스인은 BC 1000년경까지는 씨족생활을 했으나 BC 9, 8세기에 자유시민에 의해 운영되는 도시국가인 폴리스가 성립했다.
대표적인 도시국가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있었다. 여기서는 지중해를 무대로 한 교환 화폐경제의 발달을 배경으로 노예를 부림으로써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다.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자연과학과 철학, 시민에 의한 민주정 등은 모두 노예노동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후 로마가 지중해지역 전체를 석권하고 세계제국으로 발전하면서부터는 주변 지역으로부터 공급되는 다량의 노예가 농업노동에 투입되었다. 이때는 대규모 노예노동에 입각한 대토지경영인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 대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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